토토는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고 책상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1학년 때 토토는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 토토는 폐전철로 연결된 도모에 학교라는 곳에 들어간다. 도모에 학교에는 고바야시 교장선생님이 계셨다. 토토와 고바야시 교장선생님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네 시간 동안이나 마주 앉아 이야기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교장선생님은 지루해하지 않고 토토가 얘기하는 내내 열심히 들어주셨다.
위 이야기는《창가의 토토》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토토는 도모에 학교에서 잘 적응하고 밝은 아이가 된다. 토토가 일반 학교에서는 적응하지 못하다가 이 도모에 학교에서 잘 적응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고바야시 교장선생님의 경청에 있다고 생각한다. 토토는 난생처음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준 사람을 만났다. 이렇게 경청은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한다.
나도 학교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여럿 만났다. 이 아이들은 토토처럼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거나 소리를 내서 방해하기도 한다. 나는 고바야시 교장선생님만큼은 못하더라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준다. 그러면 아이는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나를 친근한 사람으로 여긴다. 주로 내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 공감과 끄덕거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눈을 마주치는 것이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와서 나에게 말을 걸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아이를 바라봐준다. 그리고 아이가 하는 말에 동조해주면서 “응~”, “정말?”, “짜증 났겠다.” 등의 말과 함께 공감을 해준다. 그렇게 몇 달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아이들은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그렇게 마음을 열면 마음속 고민이나 좋아하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까지 모두 나에게 이야기한다. 그만큼 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얘기하는 동안 하품을 하거나 지루한 표정을 짓지 않는 것, 상대방이 얘기하는 내내 몸을 앞으로 내민 채 열심히 들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경청’이다. 인간관계를 잘하고 대화를 잘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하나 같이 먼저 필요한 것이 잘 들어주는 것이라 말한다.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고 팔짱을 끼는 것보다는 두 손을 모으는 것이 좋다. 이런 태도는 상대방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다는 표현이고, 상대방을 말하기 좋게 만들어주는 태도이다. 서로의 긴장을 풀고 여유롭게 들어주는 게 관계의 시작인 것이다. 아이와도 마찬가지이다. 엄마가 일방적으로 말한다거나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좋은 관계로 발전되기가 쉽지 않다. 많은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지적하거나 엄마들의 말을 하기에 바쁘다. 잠시라도 눈을 마주치면 아이가 해야 할 일이나 공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아이들은 내색하지 않을지라도 엄마의 말을 듣고 있으면 짜증 나기 마련이다. 아마 엄마들도 이 느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엄마한테도 어렸을 때 이런 지적이나 잔소리를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에서 돌아오면 엄마와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자.
“공부 열심히 했어?”
“오늘 숙제는 뭐야?”
이런 질문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아이라면 엄마의 이 질문에 뭐라 대답하고 싶은지 생각해보자. 한 번쯤은 아이가 오늘 무슨 재미있는 일을 했는지 물어봐주면 어떨까. 소파에 앉아 온 가족이 아무 대화 없이 TV나 스마트폰만 가만히 쳐다보지 말고, 아이와 마주 앉아 아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해 보자.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 이야기나 연예인 이야기, 만화 영화 캐릭터도 좋고, 드라마 이야기도 좋다. 이야기할 때만큼은 공부 얘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본적으로 대화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아이의 말을 적극적으로 들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차근차근 마음을 열었을 때, 깊이 있는 이야기도 할 수 있고 공부와 꿈, 목표에 관한 이야기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섣불리 대화를 해보겠다고 다짜고짜
“네 꿈에 대해서 말해봐.”
“너 좋아하는 친구 있니? 그 친구에 대해서 좀 말해봐.”
라고 묻는다면 아이는 대답을 거부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이와의 대화는 아이가 좋아하는 사소한 것부터 많이 들어주고 마음을 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선생님,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엄마들이 자기 마음을 잘 몰라준단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조금 더 엄마와 아이가 깊은 관계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언제나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친구라고 해서 아이가 만만해하는 엄마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엄마가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친구가 되길 바란다. 함께 대화하면서 밥을 먹고, 운동도 하며 여행도 가는 그런 삶을 말한다. 친구와 대화할 때 공부 얘기를 하거나 성적 얘기를 하면 친구가 화를 낼 것이 분명하다. 아이와 대화할 때도 그렇다. 매일 공부 얘기만 한다면 아이와 대화가 되지 않을 것이다. 편하게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
“○○아, 오늘 엄마가 백화점 갔었는데, 거기서 네가 입으면 진짜 잘 어울릴 것 같은 블라우스가 있더라. 언제 같이 가서 입어보자.”
이렇게 엄마가 아이와 꾸준히 사소한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아이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자기의 고민거리, 문제들도 꺼내놓기 시작할 것이다.
실제로 초등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우리나라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누구에게 이야기하는지를 물었다. 가장 많은 아이들이 ‘내 고민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가장 많이 고민을 이야기하는 대상은 바로 ‘친구’였다. 부모님과 교사는 굉장히 적은 표를 얻었다. 거의 아이들은 부모님과 교사들에게 자기 고민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었다. 이는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곳이 없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보면 아이들의 고민을 올려놓은 경우를 많이 목격한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되는 점은 그 대답들 중에 악한 마음을 갖고 장난스러운 답변을 하는 경우도 있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가 고민을 올리면 그 고민을 공감해주고 들어준다는 것보다는 형식적인 답변에 그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아이들의 고민은 해결해주려 하기보다는 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 아이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위로가 되고 스스로 해결할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신감이 없어하거나 문제를 일으킨다면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토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고바야시 교장선생님처럼 엄마가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다면 아이는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를 믿으며 살아갈 것이다. 어떤 이야기든 좋다. 오늘 먹은 밥 이야기, 재미있게 놀았던 이야기 등 아이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들어주자. 엄마와 아이가 서로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고 엄마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때 엄마는 아이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서 들어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