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sor Oct 09. 2023

5.

S#1. 기차 플랫폼 / N


넋 나간 표정으로 플랫폼 벤치에 앉아 있는 도진(남, 20대)

그때 바람 휑하고 불어 도진의 머리칼을 헝클어트린다.

들리는 역사 내 안내방송(여자 목소리)


방송(F) 23시 58분에 광명, 서울로 향하는 KTX 076호 열차는 타는 곳 5번에 도착 예정입니다. 잠시 후 지나가는 열차는 저희역 정차하지 않고 통과할 예정이니 이용에 참고...


도진의 뒤로 열차 한 대 빠르게 지나간다.

한 두 명의 사람들 플랫폼에 모습을 드러낸다. 

다들 피곤하고 지친 표정. 추운 듯 입고 있는 옷 여미기 바쁘다.  

도진의 옆에 앉은 20대 남성. 통화 중이다.


남자    망할 기상청. 한 겨울 날씬데 무슨 완연한 가을이야. (잠시) 아... 뉴스에 나왔어? 투신? 어디서? 

도진    (놀란) 투신? 어디서요?

남자    (안 들리는 듯) 암튼 그래, 알았어. 도착해서 전화할게. 어~ (전화 끊고)


도진, 자신의 옆에 앉은 남자를 빤히 바라보는데 남자 전혀 표정 변화 없고 반응 없다.

도진, 엉덩이를 쓱 밀며 남자의 옆에 가까이 앉는다.


도진    저기요.

남자    ...(부들)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추워. 으으... 


남자, 핸드폰으로 뉴스와 SNS 보느라 정신없고.

도진, 남자의 머리를 팍 내리치는데 그대로 남자의 몸을 통과하는 도진의 손. 

놀랍지 않다는 듯 평온한 표정의 도진. 다시 한번 남자를 툭 치는데 여전히 그대로 통과한다.

도진, 깊은 한숨 내쉬고. 슬쩍 남자의 핸드폰으로 시간을 본다. 23시 56분. 


도진    하... 오늘이 마지막인데...


도진, 머리를 감싸 쥐고 앉아 있다.

그때 역무원 복장의 순영(여, 50대 후반) 호루라기 불며 다가온다.


순영    노란 선 안으로 들어가세요!


도진, 고개 들어 놀라고 기쁜 표정으로 순영을 빤히 바라본다. 

자리에서 일어나 순영에게 가는 도진.

천천히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KTX.

벤치에 앉아 있던 남자 자리에서 일어나고.

기차 문 열리고 내리는 사람들. 

밝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향해 목례하는 순영, 그 옆에 해맑게 웃으며 따라 인사하는 도진.

도진, 조심스러운 손으로 순영의 어깨를 쓰다듬는 시늉.


여자(E)    가자, 이제.


도진, 그대로 일시정지. 천천히 뒤를 돌면,

흰 한복차림의 여자(10살) 보인다.

여자의 뒤로는 새하얀 열차 한 대 정차되어 있다. 


도진    ... 아직 시간 있잖아. 2분.

여자    에휴, 딱한 놈.

도진    ...오늘이 울 엄마 마지막 근무일이야.

여자    알아. 그래서 하루 여기 있겠다고 해서 보내준 거잖아.

도진    인사만 좀 하면 안 되는 거야?

여자    되겠어?

도진    내 걱정 말고 잘 있으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때 KTX 문 닫히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순영, 떠나가는 기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서 있다.

도진, 그런 순영을 가슴 아프게 바라본다.


여자   5초.

도진    !

여자    5...


순영, 천천히 뒤돌아서는데, 그 앞에 서 있는 도진.


순영    (놀란) 도진아!

도진    엄마 고생했어.

순영    아들, 엄마도 데려가. 응?

도진    (애써 웃으며) 어딜 같이가. 엄만 살아야지.

여자    4...3...

도진    (급하게) 나 이제 가야 해. 내 걱정 말고 이제 은퇴하고 잘 지내. 알았지?

순영    (흐느끼며) 가지 마, 아들. 가지 마... 엄마 두고 어딜 가려고..!

여자    2...1...

도진    사랑해, 엄마. 나중에 만나.


그때 휙~하고 바람 불고 순식간에 순영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도진.

순영, 다리 풀린 듯 그대로 주저앉아 울기 시작한다.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도진. 


여자    가야 해. 이거 놓치면 너 그대로 악귀 된다.


도진, 순영을 애틋하게 바라보다 눈물을 쓱 닦아낸다.

여자와 도진, 새하얀 열차에 올라탄다.

천천히 플랫폼을 벗어나 사라지는 새하얀 열차.

그때 하늘에서 내리기 시작하는 함박눈.

순영,  눈물 흘리며 떨어지는 눈송이를 바라보는 모습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