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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nn Shim Oct 30. 2019

답답이 머무를 때

지금 내가 있는 곳


오랜만에 찾은 바다는 도시에서의 건조함을 해갈해주었다. 해안가를 걷자 나의 발을 감싸는 파도가 기분이 좋았다. 이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오랜만이던가.  잊고 있었다. 나에게 생명을 준 최초의 것에 대한 은혜를. 이들의 존재 자체가 나의 근원이었다는 감사를.  


나는 이 은혜를 갚기 위해, 감사를 드리기 위해 바다를 향해 한 걸음 더 걸어갔다. 바다는 기분이 좋다는 듯이 파도를 보내 내 발목을 감싸주었다. 이 무한한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나에게는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어느 새 허리까지 올라오는 물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해초에, 돌멩이 사이로 미끄러져 새끼 발톱에 상처가 난 것 같았지만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돌아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바다가 베푼 은혜를 어떻게 배반할 수 있으리. 게다가 나에겐 아직 상반신이 온전히 남아있지 않았던가. 


그때 큰 파도가 덥쳐 왔다. 숨이 막히고 기침이 나왔고 어딘가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지만 나는 도저히 나갈 수 없었다. 은혜를 배반하면 안 된다는 덕목을 이런 식으로든 저런 식으로든 배워왔던 터였고 나는 그 배움을 받은 지식인으로서 감히 왔던 길을 되돌아올 수 없었다.  


분명 파도가 발목을 살짝 더 적셨을 때보다 몸을 더 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바다가 처음 나에게 보여준 고마운 마음을 더이상 느낄 수 없었고 나는 온전히 더 나아가지 않는다면 이 바다에게 상처만 줄 것 이라는 강박만을 손에 움켜쥔 체로 앞으로 더 나아가지도 뒤로 벗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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