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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걍 Jan 28. 2020

남반구의 작은 헬조선

- 미세먼지라도 좋으니, 한국으로 돌아갈래

    헬조선. 나에게 이 단어는 지하철이었다. 1, 2, 3, 7호선을 아우르는 출근길을 1년간 지속하다 보니 별별 일을 다 겪었다. 흔히들 ‘지하철 썰’로 푸는 이야기들을 실제로 겪기도 했다. 출근길에 등산스틱의 공격을 받았다거나 밀치고 가는 사람 때문에 넘어져 무릎에 피멍이 들었다거나 그런 것들. 그런 날이면 출근길 내내 단톡방에 불이 나곤 했다.  당한 자와 당한 자의 친구들이 설움을 단톡방에서 푼 것이다. 화가 나면서 격해지는 단어 속에 우리가 제일 많이 쓴 단어는 ‘개저씨’였다. 일부 몰지각한 중년 남성들에게 당한 피해가 가장 많은 탓이었다. 출국이 확정된 후 마지막 출근길, 역시나 불이 난 단톡방에서 모두가 ‘헬조선 탈출’과 ‘NO 개저씨’를 언급하며 부러움과 축하를 보냈다.  


    남반구의 작은 도시인 이곳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날이었다. 열명 남짓한 사무직원과 다수의 매장 직원이 있는 회사에서 사무직 일을 하게 되었다. 보스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좀 이례적이었다. 한국인 직원들에게 ‘야’, ‘너’, 그리고 감정이 좀 격해지면 ‘이 새끼’라고 부르는 것을 첫날부터 목격한 것도 참 이례적이었다. 한국에서도 본 적 없는 그림이었다. 이미 10년은 더 지난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꼰대 짓’이 내 앞에서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도 한국에서 11시간은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나라에서. 남반구의 작은 헬조선이 여기 있었다. 


    내 표정을 읽은 탓인지, 한국인 직원 한 명이 다가와 할 이야기가 많으니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 오늘 본 일은 평소와 같은 날일 뿐이며, 더 심한 날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걱정과 함께 밥을 삼켰다. 분위기 환기를 위해 직원들은 다른 여러 이야기를 했다. 보스는 그러해도 직원들 사이의 유대감은 정말 깊다는 이야기를 포함해서. 그러던 중, 아마 다음 달부터 3주 간의 길고 긴 휴가가 시작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도시에서 연말과 연초의 휴가는 흔한 일이라는 것이다. 다만 문제가 될 것은, 그 기간 동안은 일을 하지 않으니 급여도 없다는 것이다.  


    겨우 한 달 일을 하고서 또 다른 한 달을 일과 돈 없이 버텨야 한다니. 이미 한국에서 가져온 돈이 다 떨어질 것 같을 때에 겨우 구한 직업이었다. 사무실로 돌아가 예상되는 급여와 지출을 정리하며 주말 파트타임이라도 구해야 하는 것인가 고민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한국인 직원이 그 장면을 보더니 다가왔다.  


“걱정하지 마요. 휴가라고 다 쉬는 건 아니니까.” 


    무슨 말인지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주쯤 지났을까, 인사 담당자조차도 휴가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몰라 초조해할 때쯤, 휴가에 대한 보스의 아주 두리뭉실한 디렉션이 들려왔다. 휴가로 문을 닫지만 그렇다고 그 기간 동안 회사 운영을 멈추는 것은 아니다.  운영을 위해 남아야 할 사람들은 휴가 기간 내에도 출근을 해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어리둥절하는데, 오래 있던 직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여기 있는 모든 직원들은 회사의 운영을 위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여기 있는 직원들은 휴간 기간 내내 모두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궤변은 법을 요리조리 잘 피했고 (사실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별 수 있나.) 직원들은 휴가 시즌에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나는 시급제였기 때문에 출근에 해당하는 돈을 받았으나, 연봉제인 직원들은 ‘사실상 무급’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이 나라에서 그 시기에 휴가를 갖는 것은 법적인 권리이다.)  


    규정상 3주로 예상되었던 그의 휴가는 ‘비행기 문제’라는 간단한 이유로 한주 더 늘어나 4주가 되었고, 4주를 꽉 채우고도 며칠은 이런저런 핑계로 출근하지 않았다. 그동안 인사팀에서는 그가 막무가내로 ‘자르라’고 한 해고 사건을 법적인 다툼으로 가지 않게 처리하느라 진땀을 뺐고, 인턴십이라는 명목으로 낙하산 채용된 그의 아들이 회사 카드로 산 닥터마틴과 수영장 등록비를 비롯한 개인 지출을 문제없이 처리하느라 회계팀도 골머리를 앓았다. 그나마 1000 달러가 넘는 금액을 한 번에 결제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담당자의 말에 모두가 쓴웃음을 지었다.  


    왜 명문대를 나오고 경력이 1n연차가 되는 직원들이 이런 불법의 여지가 있는 일까지 처리하나 싶었다. 의문은 금방 해결이 되었다. 비자. 회사의 비자 지원이 없으면 그들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본국은 이미 그들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곳이었다. 그들에게는 이 도시가 생활의 터전이었다. 보스는 비자 지원을 손에 쥐고 그들에게 은밀한 많은 일을 시켰다.   


    보스가 한국으로 휴가를 간 사이 직원들의 유대감은 거진 가족의 그 무언가와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공공의 적이 있는 데다가 그가 자리에 없으니, 보스 욕을 하는 대화의 수위 선이 매일매일 위로 올라갔다. 게다가 그는 시차를 무시한 채 직원들이 퇴근 한 시간에도 전화를 걸어 막무가내 업무 지시를 내리곤 했으니, 뒷담화에 대한 직원들의 죄책감도 하루하루 사라졌다.  


하루는 중국에서 온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 정말 일반화하고 싶지 않은데, 한국인 보스는 다들 저렇게 굴어?”

“전혀. 난 한국에서도 저런 보스는 못봤어.”

“다행이다. 한국에 대한 환상이 깨질 뻔했어.” 


또 어떤 날은, 평소 시간 맞춰 기도를 올리는 독실한 무슬림 직원이 이런 말을 꺼내기도 했다. 

“만약 알라가 보스를 천국으로 데려가겠다고 하면 나는 다른 신을 믿을 거야.” 


성이 간디인 인도 직원은 ‘지옥도 보스는 안 받아 줄 것’이라고 아주 폭력적인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혼자만의 길고 긴 휴가를 지나고 보스가 처음 돌아와서 한 업무 지시는, 본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 수 없으니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10년이 넘는 경력과 이 도시에서의 5년이 넘는 IT 담당자를 불러 내어서는 자신의 휴대폰 세팅을 점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국가로 유학을 와서 장학금을 받으며 학비를 절반밖에 내지 않은 회계 담당자는 그가 휴대전화 요금을 납부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인지를 확인했다.  


세팅은 문제가 없었고, 요금은 이미 지불한 상태였다. 뭔가 착오가 있었으니, 해결해 달고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말하면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전화하지 않았다. 보스의 ‘가오’ 때문이었다. 대신 세금 신고 업무가 쌓여 매일같이 야근을 하는 회계 담당자가 전화를 붙잡고는, 휴대폰의 명의자가 아니라 본인 인증이 되지 않는 자신을 통신사에 설명하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고 있었다.  


결국 화가 난 그는 직원들을 자신의 사무실로 부른 후, 통신사 V가 얼마나 악질 기업인지 한참 연설을 했고 통신사 T로 변경할 것을 요청했다. (다시 직원들의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이 일과 아무 관련이 없이 불려 가 일장 연설을 들은 인사 담당자는, 자신이 속한 인종 커뮤니티에서 통신사 T는 “trash”로 불린다고 했다.) 오후 내내 회계 담당자는 오전과 마찬가지로 본인인증이 되지 않는 자신을 통신사에 설명하며 겨우겨우 통신사 변경을 마쳤다. ‘남반구의 작은 헬조선과 한국에도 없을 개저씨.’ 나는 회계 담당자의 옆 자리에 앉아 미세먼지가 차라리 나으니 어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미뤄뒀던 귀국 항공편의 예약을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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