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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걍 Dec 23. 2020

작년에 쓴 유서를 발견했다

2020년 11월 20일

제목을 이렇게 뽑긴 했지만 사실 대단한 사건은 아니다. 나는 열 아홉살 때부터 종종 유서를 썼다. 살기 싫어서도 쓰고 삶이 좋아서도 썼다. 작년 7월에 쓴 유서를 마지막으로 아직까지는 또 다른 버전의 유서를 쓴 일은 없다. 그리고 오늘까지도 그때의 유서가 가장 유효하다. 



유서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유서를 써보기도 했습니다. 단 한 번도 유서를 마무리 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내일도 살아있을 것이라는 알량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완성하지 못하면 내일 하지 뭐. 그런 마음으로 매번 유서를 쓰다 말았습니다. 부디 오늘은 글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만, 설령 오늘도 마무리하지 못한다고 한들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내일도 내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알량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삶이었습니다.”


지금껏 쓴 유서들은 대개 이 문장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음 이후에 내 삶이 “좋은 것”으로 전시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것도 학습의 결과일까요?


그러나 오늘은 삶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문장으로 유서를 시작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삶을 평가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이었는지, 나쁜 것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는 좋았고 언제는 나빴던 삶이었습니다. 이 글이 정말 유서가 되는 순간이 온다면, 아마 그때는 살아있는 자들에 의해서 내 삶이 좋은 것이었는지 나쁜 것이었는지 평가되겠지요. 죽음 앞에서 나의 삶에 대한 결정과 판단을 미뤄봅니다. 내가 대하는 다른 모든 것들과 같은 방식으로요. 


일반적인 장례식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내가 늘 부탁했던 그 노래를 장례식장에 틀어주기를 바랍니다. 그 노래가 무엇인지는 저와 가까웠던 사람들에게 물어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마 가장 많이 우는 사람들 중 가장 낯선 얼굴에게 물어보면 될 것 같습니다. 종종 그 노래를 들려주며, 이 노래를 내 장례식에 틀어달라는 이야기를 했거든요. 물론 그때마다 그들은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런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만, 결국 그 노래를 틀게 되겠군요. 부디 그들이 그 노래를 기억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나와 가까이에서 나를 지겨워했던 이들에게 내 죽음조차도 끝내는 지겨운 것이 될까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이 정말 유서가 되어 당신들에게 읽히게 된다면, 나는 이것이 당신들의 지겨움에 대한 소소한 복수라며 사후세계에서 씁쓸해하고 또 즐거워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나를 지겨워하지 않기를, 생이 있는 동안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거든요.


삶은 매 순간 두려움과 환희의 연속이었습니다. 나는 두려워하며 기뻐했고, 기뻐하며 두려워했습니다. 나아가며 후퇴했고, 후퇴하며 나아갔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리는 아니었습니다. 삶의 궤적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정작 나는 끝까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또 아쉬운 것은, 좀 더 열렬히 나의 신을 사랑해보지 않은 것입니다. 원망만 실컷 하다가 결국은 그를 만나러 가게 되었군요. 그래도 자비롭고 사랑이 많은 나의 신은 고생 했다며 마중 나와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뜨겁지는 않았지만 따뜻하게 신을 사랑했습니다. 


오늘은 유서를 끝낼 수 있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하지만 내일 다시 본다면 이 유서는 내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살아있는 자들에게 죽음은 대단한 일이니까, 나는 살아있는 한 어떤 문장이든 내 죽음 앞에 어울린다고 만족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무튼, 좋은 생이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에게 판단을 유보합니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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