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 '그 누구도 아닌(L'Orpheline)' 리뷰
한 사람을 단 몇 가지의 키워드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누군가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해도, 실제로 내가 그에 대해 아는 바는 100으로 치면 10에도 못 미칠 때가 대부분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입체적인 인물이라서, 때로는 많은 사람에게 인정 받는 선한 사람이다가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악역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아르노 데 팔리에르 감독의 영화 <그 누구도 아닌(L'Orpheline)>을 보면서 딱 그런 생각을 했다.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어떤 이의 과거가 지금으로써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양을 하고 있을 때, 그 삶의 주인은 과연 어떤 생각으로 살아갈까. 이것 또한 나의 수많은 얼굴 중 하나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아무도 발견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저만치 묻어둔 채, 애써 그 얼굴은 나의 것이 아니라며 자기 최면을 반복하게 될까.
영화 <그 누구도 아닌>은 파리의 작은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던 '르네'라는 여성이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찾아온 과거 동료의 고발로 감옥에 가게 되면서, 시작되는 과거 회상으로 주된 이야기가 전개된다. 독특한 것은 1명의 여성을 각 나이대에 맞춰 4명의 배우가 연기한다는 점인데, 이야기 전개나 연출 방식이 친절하지는 않아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리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30대의 르네 역은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주연을 맡았던 '아델 에넬'이, 20대 초반의 산드라 역은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로 국내에 잘 알려진 '아델 엑사르쇼폴로스'가 맡아 개봉 전부터 한국 관객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영화의 시점은 평화롭게 교사로 일하며 남편과 임신을 고대하던 '르네'의 인생에서, 죄를 저지르고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20대 '산드라'의 인생으로, 그리고 미성년에 매춘과 방황을 일삼았던 10대 '카린(본명)'의 인생, 숨바꼭질하던 친구들의 죽음을 목격했던 꼬맹이 '키키'의 인생까지 쭉 거슬러 내려간다. 현재를 살고 있는 '르네'가 치러야 할 죗값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는 4명의 배우가 보여주는 각각의 삶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삶의 매 순간 불행의 냄새를 따라다니는 것마냥 잘못된 선택을 저지르는 주인공이 지닌 특유의 외롭고 방황하는 감정 상태를 4명의 배우는 매우 탁월한 연기력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불우한 어린 시절부터 매춘과 도둑질, 방황을 반복하던 여성이 30대가 넘어 아이를 가진 채 다시 과거에 발목 잡힌다는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한국은 물론, 프랑스 관객들로부터도 많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여성의 삶을 딸, 매춘부, 어머니와 같은 스테레오타입에 지나치게 한정시켜 표현했다는 점, 주인공을 구성하는 4명의 여성 모두 극중 등장하는 다른 남성인물에게 필요 이상으로 의존적인 캐릭터로만 그려졌다는 점 등이 한데 모여 여성혐오적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또한 한 여성의 삶을 묘사하기 위한 각종 비극적 요소가 불필하고 인위적으로 포함되어 있어, 자칫 '불행 포르노'처럼 읽히기도 한다. 캐스팅으로 많은 주목을 받은 데 비하면 다소 아쉬운 지점이다.
이 영화의 연출이 전반적으로 여성혐오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은 동의한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감독이 보여준 '르네'의 3가지 불우한 과거는 모두 하나의 결말을 향해서 달려가기 위한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감옥에서 도저히 아이를 낳을 순 없다는 남편을 따라 국경을 넘다가 말도 안 통하는 타국에서 아이를 르네는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또 다시 내가 아닌 타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 안에서 스스로 탄생시킨 아이를 지켜 보다가, 그는 지역 경찰서로 자수하러 간다.
이는 '그 누구도 아닌' 타인에 의해 휘둘리는 삶을 살아왔던 주인공 인생에서 스스로가 내린 가장 올바른 첫 번째 결정이었을 것이다. 남편의 말을 따라 르네가 아닌 또 다른 이의 삶으로 도망친다면, 당장은 괜찮아도 언젠가 과거에 발목 잡혀 진짜 내 삶은 물론 자식의 인생까지도 망칠 수 있다는 걸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아닌' 것 같은 내 인생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르네는 다시 최악의 결정을 내렸다.
영화 <그 누구도 아닌>은 유튜브, 네이버 영화 등에서 관람할 수 있다. 4인 4색 배우들이 등장하는 독특한 연출로 다양한 배우들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니, 관객 평이 나쁘더라도 한 번 쯤은 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