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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준 May 29. 2024

고졸 흙수저는 어떻게
억대 연봉자가 될 수 있었나

《성과로 말하는 사람들》 서평

대학에 갈 수 없었다. 가난했기 때문이다. 홀어머니는 경제력이 없으셨다. 나는 당장 돈을 벌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돈을 쓰기만 했지, 벌어본 경험은 별로 없었다. 사회성이 있는 편도 아니었다. 친구도 별로 없었고, 학교는 항상 지겨웠다. 그 지겨움을 견디느라 수업시간에는 늘 뒷자리에서 교과서를 커버 삼아 책을 읽었다. 귀가해서는 밤늦게까지 게임만 했다. 나는 어떤 계획도 준비도 없었고, 사회로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성과로 말하는 사람들》을 읽었을 때, 막막하고 힘들었던 20대 시절이 떠올랐다. 이 책은 세계적인 멘토들의 다양한 아티클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 특히 피터 드러커의 글은 내가 힘들었던 그 시절에 흔들리지 않고 방향을 잡게 해 준 귀한 글이었다. 성과는 항상 강점을 통해 발현된다. 그러므로 약점에 시간을 쓰는 것은 강점이 발현될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과 같다. 이 생각은 내가 과거에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를 읽으며 마음에 새겼던 신조였다.


“그러므로 거듭 강조한다. 자신을 바꾸려 하지 마라. 어차피 성공할 가능성도 없다. 하지만 성과를 내는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의미가 있고 결과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성과를 낼 수 없거나 성과가 저조할 일은 맡지 않도록 노력하라.” 

- 피터 드러커 


돈을 벌기 위해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피터 드러커의 말을 떠올렸다. 돈을 벌기 위해서 나 자신을 바꾸지 않기로 했다. 독서와 게임을 좋아하는 나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회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나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기로 결정하고 기세 좋게 구직 사이트를 열어젖혔다. 그리고 바로 쪼그라들었다. 다른 구직자들에 비해 내 스펙이 초라함을 넘어 처참했기 때문이다. 알아보니 아무리 신입이라도 게임 관련 학과, 아니면 최소한 학원 정도는 나와야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학원에 갈 돈도 없었고, 당장 먹고살 걱정을 해야 했다. 게다가 나는 고졸이었다. 글솜씨를 발휘해 자소서를 열심히 써보았지만 어떤 회사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놀라울만큼,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서류조차 통과 못하는 현실을 수십 번 마주하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구직자들처럼 스펙으로 승부를 겨루는 것은 무스펙인 내 입장에서 무모한 짓이었다. 어떻게든 내가 게임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입증해 보여야 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생각난 것이 모딩이었다. 모딩은 플레이어가 게임의 내용을 개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딩이 허용된 게임들은 관련 커뮤니티가 크게 활성화되어있었다. 당시에 유명한 모드로는 ‘워크래프트 3’의 ‘카오스’가 있었는데, 나는 좀 더 매니악한 ‘로마 토탈워'라는 게임에 빠져있었고, ‘로마 토탈워'에 만화 ‘베르세르크’의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는 모드로 커뮤니티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나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로의 구직은 멈추기로 했다. 대신 내가 만든 모드의 스크립트 코드를 포트폴리오로 해서 게임 기획자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하루새에 여러 곳에서 연락을 받았고, 어느 온라인 게임회사에 퀘스트 스크립터로 금방 입사할 수 있었다. 만일 내가 강점에 집중하지 않고 스스로를 바꾸려 했다면, 내가 당장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하지 않고 남들의 스펙을 따라잡으려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도 취직을 하기는 했겠지만 그 길은 훨씬 험난하고 어려웠을 것이다. 강점에 집중한 덕택에 강원도 촌놈에 고졸이었던 나는, 별로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서울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성과로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라는 내용이 있다. 피터 드러커는 이를 다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으로 구체화한다. “이 상황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의 강점과 성과를 거두는 방식, 가치관을 고려할 때 어떻게 해야 가장 큰 기여를 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어떤 성과를 달성해야 하는가?”


강점과 성과를 연결하는 이 질문들은 내가 첫 직장을 구했을 때는 물론이고, 커리어 전반에서 항상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내 주었다. 반면 강점이 아닌 다른 것에 기대어 성과를 내려했을 때는 항상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그중 가장 커다란 실패는 아마도 창업이었을 것이다. 나는 강점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이나 ‘내가 되고 싶은 것’에 초점을 맞추어 스타트업을 창업했었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강점들은 타인들에게 의지를 했었다.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고, 약 5년여의 시간과 큰 비용을 치르고 난 후에야 ‘비즈니스상 필요한 강점이 내게 없다면 절대로 창업하지 않겠다.’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강점은 단순히 보유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강점을 꾸준히 계발하지 않는다면, 강점은 그저 강점이었던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리더십 개발 분야의 최고 권위자 존 H. 젱어는 《성과로 말하는 사람들》에서 강점 계발의 방법으로 비선형적 개발을 추천했다. 강점 자체의 성장에 집중하는 선형적 개발은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한다. 마치 프로 운동선수처럼 크로스 트레이닝을 해야 강점을 효과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숙련된 마라토너는 달리기만 해서는 더 이상 기록을 단축시킬 수 없다. 웨이트 트레이닝, 인터벌 트레이닝, 수영, 자전거, 요가 등으로 크로스 트레이닝을 해야 시너지를 통해 강점을 강화하고 신기록을 경신할 수 있는 것이다.

복서는 강점 강화를 위해 줄넘기를 한다


나는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라 자기 계발에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다만 크로스 트레이닝을 할 기회를 운 좋게 잘 만났던 것 같다. 취미가 독서와 게임이라는 것은 대단한 기회였다. 역사와 관련된 게임을 하면 관련 역사책을 읽었고, 경제 게임을 할 때는 경제서를, 경영 게임을 할 때는 경영서를 읽었다. 그렇게 쌓인 간접 경험과 지식들은 내가 게임 기획자로 일을 할 때 풍성한 레퍼런스가 되어 주었다. 나는 기획자라는 직업도 게임으로 국한시키지 않았다. 게임은 콘텐츠일 뿐, 기획자라면 어떤 콘텐츠라도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서, 다른 방면의 디자인서나 기획서도 틈틈이 읽으며 기획을 넘어 사업에 이르기까지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


고문으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게임 기획자로 일했던 과거가 큰 도움이 되었다. 관심이 없다면 잘 모르겠지만 게임은 의외로 다양한 분야가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문학, 철학, 미술, 심리학, 물리학 등 오만가지 학문이 최신 IT 기술로 응집되어 가상현실화 된 것이 게임이다. 때문에 다방면의 지식을 섭렵하면 깊이 있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 그뿐인가? 기획자는 개발자들과 협업할 수 있는 수준의 개발 지식도 갖춰야 한다. 그중에서도 데이터 베이스를 활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게임 플레이에 방해가 되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UI를 만들려면 UX에 대한 지식도 갖추어야 한다. 팔리는 게임을 만들려면 마케팅도 잘 알아야 한다.


이렇게 게임 업계에서 산전수전을 겪다가, 창업을 했다가 망해서 일반 회사에 들어가 보니,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 실무자들은 업무 도구는 디지털이었지만, 일하는 방식은 아날로그였다. 자동화하면 수백 배 빠르게 할 수 있는 일들을 한 땀 한 땀 수동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기술 친화적인 실무자들은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데이터 개념이 부족하다 보니, 여러 다양한 툴을 쓰면서 일회성으로 일을 처리할 뿐, 데이터 사일로의 문제는 뒷전이었다. 실무 기반으로 데이터 모델을 만들고 자체 솔루션을 구축하거나, 외부 솔루션을 도입해 커스터마이징 하는 등 디지털 기반의 시스템 구축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었다. 물론 솔루션 단계까지 생각하는 것은 일개 사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회사 차원에서 이해도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더 이상 실무자로는 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게임 업계와 창업을 거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크로스 트레이닝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단일 기능의 실무를 맡기에는 일을 어떻게 하느냐의 측면에서 동료들과의 편차가 너무 컸다. 해서 관리자로 일을 하다가 내가 다른 관리자들에 조언을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고문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한 회사의 고문으로, 그러다 이중 근로자로 두 회사의 고문으로, 그러다 사업자를 내고 여러 회사의 고문으로 일하면서 내 수입은 평범한 고졸 노동자가 생각하기 어려울 수준으로 크게 늘어났다.


억대 연봉자를 목표로 삼은 적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강점에만 집중하며 물 흐르듯 앞으로 나아갔다. 강점 외의 영역에 신경을 쓰기에는 나는 너무 게으른 사람이었다. 물론 강점이 아닌 욕심에 치우쳐 망한 적도 있었지만, 그 경험 덕에 나는 더더욱 강점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얼마나 스스로를 소진시키고 희생시키며 성공을 일구어 냈는지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러지 않고 설렁설렁 게으르게 해도 충분히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성공을 일구어 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성과로 말하는 사람들》은 강점 기반의 계발 외에도 개인의 성과와 리더십 관련한 인사이트가 넘치는 아티클들로 가득한 책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 《아토믹 해빗》의 제임스 클리어,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유명한 안데르스 에릭손, ‘마음 챙김’으로 유명한 엘렌 랭어 등 세계적인 멘토들의 유용한 지혜가 담겨있어서 한 권을 읽으면 십여 권을 훑어 읽는 효과가 있다. 자기 커리어를 향상할 근본적인 방법을 찾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드린다. 이 책은 당신이 어떤 방법으로 스스로를 성장시킬지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좋은 시작점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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