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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타는 여여사 Apr 09. 2019

소멸하는 인간에 대한 마지막 인사

소설  <작별>, 2018년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난처한 일이 발생했다. 벤치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눈사람으로 변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난처한 일이 아닌 듯, 눈이 녹는 동안 그녀는 남은 삶을 조용히 녹인다. 

남자 친구를 기다려서 첫 만남을 회상하고 애틋하면서 덤덤한 관계를 정리한다. 눈사람으로 변한 몸 때문에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문 밖에서 사랑하는 아이와 작별 인사를 나눈다. 아이는 눈사람으로 변한 엄마 모습에 당황했지만 차츰 적응하며 담담하게, 그러나 아쉬움에 조금이라도 엄마와 오래 있고 싶어 냉동 창고에 들어가자고 제안한다. 다른 설명이 없어도 그녀와 아이는 안다. 눈 속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면 눈사람은 저절로 무너지게 될 거야. 아이를 설득시키는 그녀. 엄마의 말을 알아듣는지 묵묵히 따르는 아이. 부모님께 전화해 안부를 묻고, 남자 친구와 마지막 키스를 하고, 아이와 마지막 통화를 한 후, 무너져내리는 몸을 마지막까지 감싸며 사라진다. 




어디까지가 인간인가


그녀가 눈사람으로 변하든, 눈사람 이전의 모습으로 존재하든 남자 친구나 아들은 그녀를 이전과 똑같이 대한다. 눈사람으로 변했다고 해서 연인이었던, 엄마였던 존재가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사랑하는 여인이고, 의지하고 싶은 엄마다. 녹아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형체를 알 수 없게 몸체가 부서지면 그녀는 인간이 아닌 것인가? 작가는 이 물음을 던지면서 소설을 이끌어나간다.  인간의 형체를 띠고 있어도 인간 존엄성이 깨진 사람이 있는 반면 인간의 형체를 띠지 않아도 인간 존엄성을 유지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 살아갈 것인가? 작가는 묻는다. 당신은 단단하고 고요한 눈 덩어리 속에서 미미하게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는 왼쪽 가슴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고통이 없다면 두려움도 없지

(43쪽)


그녀는 자신을 물체처럼 생각한다. 자신의 몸에 속해 있지 않고 주변의 사물이라고 상상한다. 지하철 손잡이, 검은 차창, 낡은 가방, 지갑, 필통... 자신의 삶에 주체적이지 않은 채 주변에서 이름 붙여진 존재로 살아왔기 때문일까? 늑골이 무너지고 옆구리가 부스러져도 아무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두려움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을 마치 남의 인생처럼 말한다. 그녀에게 묻는다. 스스로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아이를 사랑한 것처럼, 1년 남짓 사귄 남자 친구를 사랑한 것처럼, 좀 더 자신을 사랑할 수는 없었는지. 생의 마지막을 무덤덤하게 고통 없이,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는 그녀의 독백이 쓸쓸하다. '인간과 사물(눈사람)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존재와 소멸의 경계를 소설의 서사적 육체를 통해서 슬프도록 아름답게 재현해 놓은 작품'이라는 선정위원의 말에 일정 부분만 공감이 된다. 나는 이 소설을 '아름답게' 읽지는 못했다. 



눈사람처럼 소멸하는 삶


그녀의 삶은 몇 가지 프레임 속에 갇혀 있다.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강하지 못해 의지하기 어려운 엄마, 아들이 늘 먼저여서 서운한 감정이 느껴지는 반쪽짜리 연인, 실직의 불안감을 안고 사는 사회적 위치... 아들에게도, 연인에게도, 직장 상사에게도 적극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삶이다. 모든 관계에서 그녀는 늘 한 발짝 뒤에 서 있다.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는다. 소설을 읽고 나면 타자로 사는 삶은 눈사람처럼 소멸하는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실처럼 가늘게 연결된 관계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한 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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