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타는 여여사 Oct 08. 2020

사기당한 마음

일상 이야기

평소 연락이 없던 지인으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빌려줄 돈이 없다고 했지만, 끈질기고 애절하게 부탁했다. 일주일만 있으면 다른 곳에서 돈이 생기니 바로 갚겠다면서 여러 번 사정 이야기를 했다. 얼마나 급하면 나한테까지 연락을 했을까 싶어서 마이너스 통장의 돈을 빼서 보내줬다. 일주일만 있으면 갚겠다던 그 돈을 한 달이 지나도, 6개월이 지나도, 1년이 지나도 그놈은 갚지 않았다. 아는 놈한테 보이스피싱 제대로 당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달라진다고, 돈을 빌려간 놈은 빌려달라고 전화했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처음에는 며칠만 있으면 돈이 들어오니, 들어오는 대로 나한테 제일 먼저 갚겠다고 핑계를 대다가 점점 전화를 받지 않았다. 돈 빌려준 사람이 전화하는 횟수는 늘어갔는데 돈 빌려간 놈이 전화받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문자를 해도 씹기 일쑤고, 어쩌다가 연락이 닿으면 좀 기다리라고만 했다. 돈 빌려간 놈이 오히려 더 당당해졌다.      


돈이란 게 빌려줄 때는 앉아서 주고, 받을 때는 서서 굽신거려야 한다. 그래서 돈거래는 하는 게 아니다.      


엄마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후회막심이다. 나쁜 새끼. 그 돈 먹고 떨어져라.      


처음에는 나를 자책하게 된다. 바보같이 사람을 믿어서 이 꼴을 당하는 것 같고, 마이너스 통장의 돈까지 빌려주는 멍청한 짓까지 하고 보니 자다가도 이불 킥을 한다. SNS에 노출되는 돈 빌려간 놈은 나보다 더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못 먹어본 음식도 먹고, 내가 안 가본 데도 가고, 세상 편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나한테 돈도 갚지 않고 잘 먹고 잘 사는 데 대한 분노가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빌린 사람이 갚는 게 당연한 건데 왜 계속 매달려서 애원해야 하는지 내 모습이 어느 순간 찌질해 보인다. 돈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잘해주더니, 돈을 갚으라고 하니까 사람이 달라진 것에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 오른다. 가만두지 않겠다고 복수의 칼날을 간다. 상대방을 부셔버리고 싶은 충동도 느끼고, 악만 남아서 진심 어린 사과까지 받아야겠다고 다짐한다. 1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1000만 원이든 돈의 액수가 중요해지지 않는 순간이 온다.       


사람 마음이 다 거기서 거기다. 최근 논란이 된 유명 유튜버 사건에서 돈을 빌려준 후임의 마음도 이와 유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과정이야 어쨌든 두 사람 사이에는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유튜버의 멋진 사나이 이미지는 좀 깎였겠지만, 그건 본인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돈에 상대방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본인의 마음까지 넣는다. 돈을 빌리는 사람은 당장 필요한 돈의 액수만 눈에 들어온다. 지지부진 돈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돈을 빌려준 사람은 돈도 잃고 마음도 다친다. 돈을 갚는다고 해서 다친 마음이 바로 치료되는 것이 아니다. 돈 빌려가서 안 갚는 놈들은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네 놈이 갖고 간 게 돈만 아니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팔베개와 팔 저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