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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타는 여여사 Oct 09. 2020

꽃게 틈바구니 속에서

회사 이야기

수산 시장은 입구부터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마치 목욕탕에 들어온 듯이 소리가 마구 섞여서 귀를 때린다. 잘 들리는 소리도 있다. 수조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상인들의 고함 소리, 돈을 깎으려고 흥정하는 소리, 물건을 더 얹으려고 실랑이하는 소리, 걸을 때마다 찰방거리는 바닥의 작은 물웅덩이 소리까지. 여하튼 시끄럽다.  

    

생물들이 발산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도 있다. ‘서산 꽃게’라고 적힌 수조 안은 꽃게들로 난장판이다. 겹겹이 쌓인 꽃게 탑 속에서 숨이라도 제대로 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압사당하지 않고 살아 있는 것으로 보아 꽃게 껍데기의 방어력은 대단하다. 수면에서 뽀글거리는 기포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거품인지, 밑바닥에 깔린 꽃게의 한숨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게멍’ 때리고 있다가 좀 의문이 든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움직이지 않고 바닥 쪽에 납작 엎드려 있는 꽃게도 많지만, 그중 일부는 다른 꽃게를 발판 삼아 오르거나 수조 벽을 타고 올라가려고 버둥거린다. 올라가려는 꽃게를 뒤따라 오르던 다른 꽃게가 잡을 때는 엎치락뒤치락 난리도 아니다. 그러다가 서로의 몸통이나 집게발에 걸려 다시 미끄러지기도 한다. 아예 멀찌감치 떨어진 수조의 끝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꽃게도 보인다. 눈치가 빠른지 순식간에 수조 벽을 타고 오르더니 옆 수조로 넘어간다. 곧 주인장의 손에 덥석 잡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떨어지는 게 아쉽긴 하다.        

  


다소 불편하지만 탈출을 전혀 꿈꾸지 않는 꽃게

계속 실패하지만 그럼에도 탈출하려고 시도하는 꽃게

탈출하려는 꽃게를 가지 못하게 발을 잡는 꽃게

탈출에 성공한 꽃게(결국 주인장한테 잡혀서 다시 수조 속으로 떨어지지만...)     



같이 간 지인들이 제철 생선과 해산물을 고르고 값을 흥정하는 동안 멍하게 수조 속 꽃게들의 행동을 지켜본다. 수조 안이 딱 회사 같다. 뒤통수치고 떠난 후배가 떠올라 혈압이 오른다. 두 눈 벌겋게 울면서 퇴사한 동기가 생각날 때는 가슴이 먹먹하다. 감정 표현 없이 기계적으로 생활하는 개 같은 선배가 스칠 때는 입맛까지 떨어진다. 갇힌 수조인지조차 모르고 각자 열심히만 살았네.  

      

몇 마리의 꽃게들은 푹 쪄져서 식탁 위에 펼쳐졌다. 배를 까고 누워 있는 꽃게들 모습에서는 그 성향을 알아채기 어렵다. 잠자다가 잡혀왔는지, 탈출하려다가 눈에 먼저 띄었는지, 남들보다 덩치가 조금 커 보여서 선택됐는지 알 수 없다. 그저 게살만 뜯어먹는다. 성향이 어떠하든 맛은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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