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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타는 여여사 Oct 12. 2020

이 정도 밥상 가지고 뭘

일상 이야기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해 주죠?』     


연휴에 집에 다녀왔다고 하니 상대방이 큰 의미 없이 묻는다. 나와 상대방 사이에 친밀한 연결고리가 없어 어색한 공기를 채우려는 대화지만, 그래도 질문을 받았으니 답을 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엄마가 해 주는 맛있는 게 뭐였는지 잠깐 생각하다가 어색하게 대답하고 웃음으로 얼버무린다. 상다리 부러지는 12첩 반상을 생각했던 건지, 아니면 가정식 백반을 생각했던 건지 묻고 싶지만 이내 참는다. 속내를 다 털어놓을 만큼 가깝지가 않아서다. 친구가 물었다면 편하게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평소에 먹던 그대로 차려주는 밥상이 제일 좋다고 말이다.      


어렸을 때 비하면 내 입맛은 분명 달라졌다. 외식으로 길들여진 혀끝은 자극적이고 감칠맛이 도는 음식에 먼저 반응한다. 외식이 잦은 나의 생활을 엄마도 알고 있어서인지, 조미료를 넣지 않는 덜 자극적이고 슴슴한 맛이 나는 음식을 주로 만들어 주신다. 엄마의 손맛도 나이를 먹기 때문에 음식 맛이 늘 일정하지는 않다. 엄마 음식이 최고라고 하기에는 세상에 맛난 음식이 널렸다. 어떤 날은 ‘세상에 이런 맛이!’ 생각날 정도로 간이 짜서 물을 벌컥거리면서 마시기도 한다. 엄마는 요리할 일이 별로 없으니 음식 솜씨도 계속 줄어든다고 민망해하신다. 내 입은 맛있다고 말하면서도 내 목구멍은 계속 물을 갈구한다. 아우, 짜...     


대신 집밥을 먹고 나면 속이 편하다. 헛배가 부르거나 가스가 차지 않고 든든하게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집밥이 생각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집에 갈 때면 늘 엄마를 괴롭히는데, 이런 내 말을 들은 친구는 엄마도 힘드실 테니 밖에서 그냥 사 먹으라고 했다. 엄마가 힘들 거라는 친구 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엄마는 힘들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다고 하셨다. 나는 엄마 말을 믿으려고 한다. 앞으로도 쭉...  


『이 정도 가지고 뭘... 더 맛있는 걸 해 줘야 하는데...』    

  

나를 타박했던 친구는 곧잘 요리를 한다. 내 수준에서는 전문가급이다. 특히 친구가 끓여주는 된장찌개는 내 입맛에 잘 맞다. 두부가 없으면 없는 대로, 야채가 없으면 없는 대로 맛나다. 만 원 주고 샀다는 해초 샐러드, 다이어트용으로 갓 지은 현미밥, 약간 탄 듯했지만 기름기 좔좔 흐르는 삼겹살, 나이 들어 녹색을 먹어야 한다며 내놓은 상추쌈, 후배가 줬다며 꺼낸 꽈리고추 멸치볶음, 쌈장이 없어서 급조해서 만들었다는 고추장 쌈장, 말랑한 조미 오징어채, 깨 송송 뿌려진 감자채 볶음, 뭔가 밥상이 허전해서 구웠다는 달걀 프라이까지... 오래간만에 친구 집에 가서 든든한 한 끼 밥상을 받았다. 밥 한 공기를 다 먹었더니 달걀 프라이까지 들어갈 배는 없었다. 내 양이 줄었다면서 친구는 달걀 프라이 2개를 입으로 홀랑 털어 넣었다. 갖고 간 부추김치와 깻잎장아찌는 손도 대지 못했다. 아! 물론 내가 갖고 간 음식은 엄마가 보내준 것이다.      

후식용 배는 따로 있으니 티라미슈 한 조각과 커피 한 잔까지 마신다. 턱 밑까지 차오르는 배부름을 안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댔다. 든든하게 잘 먹었다고 했더니 친구는 별것 아니라면서 엄마가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했다. 

     

『이 정도 밥상 가지고 뭘 그래. 이 정도 한 끼는 언제든 해 줄 수 있어.』    

 

나이를 먹으니 감정 기복이 생기는 건지, 친구의 손맛이 일정 경지에 도달해서인지 모르겠다. 나에겐 서툴고 낯선 일인데 친구에게는 '이 정도'의 일로 느껴지니 말이다. 친구의 밥상에서 엄마 집밥이 떠오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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