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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타는 여여사 Oct 07. 2020

팔베개와 팔 저림

일상 이야기

달콤 쌉싸름한 연애 기간 중에 한 번쯤은 해 보셨죠?  

팔베개를 하고 있으면 두 사람 사이의 공간에는 아주 친밀한 공기가 흐릅니다. 분위기도 좋습니다. 이보다 다정할 수 없죠.        


말랑말랑하고 폭신해서 느낌이 좋고요, 편안함에 금방 잠에 빠지기도 하고요, 상대방 눈동자에 내가 비치기도 합니다. 어딘지 불편하지만 또 어딘가 매어 있는 게 좋아서 팔베개를 계속하면 행복합니다. 눈이 얼마나 크면 상대방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칠까요? 믿기 어려운 말이지만, 뭐 사랑 노래에서 구구절절 그렇게 흘러나오니 팔베개는 연인 사이에 필수템인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순간 놀랐습니다. 남녀 주인공이 다정하게 팔베개를 하고 있었죠. 남자는 팔베개를 하지 않은 손을 뻗어 여자의 눈앞에서 몇 번 흔듭니다. 여자가 잠에 빠진 걸 확인한 남자는 여자 머리를 베개로 옮기고 흔든 그 손의 검지를 자기 혀에 갖다 댄 후 다시 코로 갖다 댑니다. 다급하게 콕콕콕 침을 묻힙니다. 팔베개를 하고 있던 손이 저렸던 거죠. 저릿저릿 저렸던 겁니다. 아! 손이 저릴 수도 있는 거였군요. 팔베개에 그런 부작용이 있다니...     


성인의 머리 무게는 대략 5 kg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편차는 있습니다. 아주 가볍다고 해도 4 kg 정도니까 팔베개를 하는 동안은 내 팔 위에 4 kg 아령을 올려두는 꼴입니다. 무거운 물체가 내 팔의 신경과 혈관을 계속 누르고 있지만, 팔을 맘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잘못 움직였다가는 애정이 식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계속 저릿한 느낌이 전달됩니다. 팔 저림이 심한 경우는 근육이 위축되어 근력 손실이 발생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팔베개를 해 준 상대방 팔의 굵기가 가늘어질 수도 있다는 소리죠.      


사랑은 아픔을 동반한다더니, 팔베개로 팔 저림이 오면 상대방의 팔 굵기가 가늘어진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가하는 무게를 줄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머리 무게를 줄이는 방법이 뭘까요?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서 삭발을 하면 조금은 가벼워지겠네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잖아요? 그럼 이 방법은 패스입니다.  

2. 상대방 팔 근육을 강화시키는 방법은 어떻습니까? 머리가 팔을 계속 짓누르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혈관과 신경이 계속 압박을 받겠네요. 이 방법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3. 머리를 두는 위치를 좀 조정해 볼까요? 어깨 아래의 팔 쪽보다 가슴 쪽으로 머리를 두는 방법은 어떨까요? 그곳은 닿는 면적도 넓어서 힘이 분산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오래 다정한 관계가 지속되겠군요. 아! 대신 정수리 관리는 필수입니다.   

4. 3분 팔베개 30분 휴식은 어떻습니까? 로맨틱하지 않다고요? 그럼 패스하시죠.      



팔베개를 하는 동안 늘 생각하세요. 5 kg의 무게가 상대방 팔에 묵직하게 가해지고 있다는 사실을요. 상대방은 새털처럼 가볍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혹시 상대방이 괜찮다고 말했다면 그때는 자유를 줘야 할 시간입니다. 코에 침을 잔뜩 바르고 싶지만 지금 혼신의 힘을 다해서 꾹 참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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