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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타는 여여사 Oct 21. 2020

친구 많아 좋은 날

일상 이야기

며칠 동안 끙끙 앓았다. 처음에는 으슬으슬하더니 점차 근육통이 심해졌다. 순간 코로나-19에 걸린 건 아닌지 의심됐다. 무증상도 많다던데, 검사받는 게 엄청 아프다던데, 아픈 건 싫은데...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는지 불안했다. 열은 없었고 목이 따끔거리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은 코로나 생각으로 가득 찼다. 3일째 되는 날은 몸을 일으켜 가기 싫은 병원에 억지로 갔다. 병원 소독약 냄새는 참 정이 안 간다. 라벤다 향이나 민트 향으로 바꿔줄 수는 없는 건가.     


접수처에서는 이마에 체온계를 대더니 진료실로 가라고 했다. 의사는 몇 가지 사항을 묻더니 약을 처방해줬다. 주사 처방은 없냐고 물었더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했다. 단순 몸살이구나. 다행이다. 3일 치 약을 먹고 나아지지 않으면 다시 오라고 했다. 날씨가 궂을 때마다 뼈마디가 쑤신다고 했던 엄마 말이 무슨 뜻인지 몸소 체험하네. 엄마가 보고 싶네.     

 

약을 먹으면 아픈 게 멎었고, 약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몸이 쑤셨다. 망치로 내 몸 여기저기를 누군가 때리는 느낌이다. 그냥 주사 한 방 놔달라고 할 걸. 나이 먹어서 약만 가지고는 금방 안 낫는다고 한 마디라도 할 걸. 진료실을 그냥 나온 내가 바보 같아서 이불 킥을 하고 싶었지만, 마음만 그렇지 매가리가 없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새우등을 한 채 끙끙 댔다. 내일은 주사 팡팡 놔주는 병원을 찾아가리라 마음먹으면서.  

    

365일 문을 여는 병원을 찾아가서 진료를 받고 수액을 맞았다. 혈관을 타고 들어가는 수액에서 비타민 음료 향이 났다. 이 병원에서는 소독약 냄새 대신 비타민 향이 나는구나. 나쁘지 않네.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 똑똑 떨어지는 수액 방울을 보고 있으니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심심한데 엄마한테 전화나 할까, 아프다고 친구한테 메시지나 보내볼까, 다들 건강하냐고 모임방에 톡이나 해 볼까... 한쪽 팔을 주삿바늘에 맡겨놓고 한쪽 팔로 휴대폰을 하려니 그것도 귀찮아진다.     

 

『쉬엄쉬엄 해. 마음만 바쁘다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냐.』 


고요하고 조용한 주사실에서 수액 방울과 나의 소리 없는 대화가 시작된다. 수액이 내 몸을 타고 들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40분 정도였다. 그 시간 동안 나와 얘기를 나눈 친구는 비타민 수액이었고, 고요한 주사실 공기였고, 몸살 난 몸이었다. 그리고 주변에 연락하기 귀찮아서 만든 외로움이었다. 

     

나이 들면 친구 만들기도 어렵다는데 친구 많아서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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