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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타는 여여사 Oct 20. 2020

고양이와 전셋집

일상 이야기

깜짝이야! 자동차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았는데, 앞바퀴 쪽에서 검은 물체가 튀어나왔다. 지하 주차장이라 조명이 어두웠지만 놀라서 튀어나가는 뒷모습을 보니 가끔 마주치던 고양이였다. 한쪽 벽면으로 가서 웅크리고 앉았다가 슬쩍 고개를 들더니 나를 째려보았다. 째려봤다는 것은 내 감정이고, 실제 고양이의 눈빛이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하긴, 그놈도 나만큼 놀랐을 듯하다. 새벽 시간이라 곤하게 자고 있었을 테니까. 기온이 점점 내려가는 계절이니 앞으로 자동차 엔진 아래에서 저놈을 자주 마주칠 듯하다. 생각이 나면 자동차 보닛을 통통 거려 밑에 고양이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지만, 대개는 자동차 시동을 켜기 바쁘다. 그러다 보면 놀라서 후다닥 뛰쳐나가는 고양이를 보게 된다. 앞으로 자동차 밑에서 저놈을 자주 보게 되겠군.    

  

가끔 서운할 때도 있다. 라이트 불빛을 켰을 때 맞은편 자동차 밑에서 고양이를 발견했을 경우다. 내 차보다 훨씬 고급 승용차면 은근 무시당하는 느낌까지 든다. 다 같은 자동차인데, 저놈이 차로 사람을 차별하나 싶다.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거다. 그냥 따뜻해서 밑으로 들어갔는데 하필 고급 승용차였겠지. 내 차 밑은 그날따라 차가웠겠지. 아니면 하루하루 자는 장소를 바꾸는 습성이 있나 보네. 오늘은 이 차 밑에서, 내일은 저 차 밑에서. 그렇게 고양이는 하룻밤 잠잘 곳을 찾아 자동차 밑을 돌아다녔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전셋집이 적당한지 집안을 구경하기 위해 복도에서 길게 줄을 서야 하고, 집이 적당해서 계약을 하려고 해도 대기자가 많아서 가위바위보로 제비뽑기를 해야 한다는 뉴스 기사를 접했다. 지하 주차장의 고양이는 돈 한 푼 내지 않고 이 차 밑으로 갔다가 저 차 밑으로 가는데, 사람들은 돈을 싸안고 있어도 전셋집 구하기가 힘든 세상이다. 새임대차보호법이 발표되고 나서부터 전세 대란이 심화됐다고 하는데, 국가의 부동산 정책이 잘못된 건지, 재산권을 지키려는 집주인의 이기심 때문인지는 사실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당장 전셋집을 구해야 할 상황이면 절박한 마음에 나도 줄을 섰을 테고, 국가에서 정한 5% 상한선에 분통이 터지는 위치라면 누구처럼 피켓 시위까지 할 수 있으니까. 고양이보다 나는 가져야 할 게 많고, 지켜야 할 게 많아서 사람들과 경쟁을 해야 할 때가 더 많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을 지키려는 인간의 마음을 탓할 수도 없고, 계약갱신청구권을 내세워서 끝도 없이 오르는 주거비용을 줄이려는 인간의 마음을 탓할 수도 없다. 사람은 고양이가 아니지 않은가. 고양이처럼 입맛에 맞춰 매일 집을 바꾸기도 어렵고, 돈을 내지 않고 집을 얻는 건 불가능하니까. 고양이와 사람이 조금씩 배려하면서 살고 있듯이 사람과 사람도 조금씩 양보하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언제 나오려는지 모르겠다. 자동차 밑에 고양이한테도 통통 미리 신호를 줘서 도망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사람한테는 긴 줄을 세우고 제비뽑기를 시키는 세상살이가 참 야박하다. 고양이와 사람 사이에는 법이 필요 없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법이 필요해서 그런가. 고양이한테 집은 추위를 피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만 사람한테 집은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 이외에도 재산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지기 때문에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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