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타는 여여사 Oct 28. 2020

쓰레기 똥꿈

일상 이야기

응급신호가 와서 화장실로 급히 뛰어갔는데, 문 앞에 사용 금지 문구가 붙어 있다. 건물 전체에 역류가 발생해서 지하 1층이나 지하 2층 화장실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아니... 14층 건물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지하층의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지하 몇 층까지 줄을 서야 하나.  

    

코로나-19 이후 건물 입구에는 발열 체크 기계가 설치되었고, 지하층과 지상층의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 따로 운행된다. 구시렁대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까지 갔다가 다시 지하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갈아탔다.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 바깥까지 사람들이 줄을 섰다. 지하 2층은 더 음습해서 가기 싫다는 앞에 선 여자들의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 봐서 지하 1층으로 곧장 달려온 건 잘한 선택이었군.   

    

시원하게 볼일을 본 후 1층으로 갔다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게 무슨 난리인지. 층별로 다르긴 하지만 한 층에 여자 화장실 칸이 2~3개 정도 있으니, 오늘 하루는 28~42개 정도의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결론이네. 하루만 고생하고 내일은 편하게 화장실을 이용하면 좋으련만.      

 

나의 바람 때문인지, 사람들의 빗발치는 민원 때문인지 다행히 역류 현상은 하루 만에 잡힌 듯했다. 대신 화장실 문 앞에는 변기에 음식물을 버리지 말아 달라는 안내 문구가 붙었다. 라면 국물까지도 버리지 말아 달란다. 라면 국물은 왜 안 되지? 건더기는 젓가락으로 건져 먹고 남은 국물 정도는 변기에 휙 버리고 물을 내렸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였나? 그러고 보니 친구 집 화장실에 먹다 남은 치킨 무를 버린 적도 있었다. 아차! 싶어서 검색을 해봤다. 혹시나 변기를 막은 주범으로 몰려서 잡혀가면 안 되잖아.  

    

어머나, 세상에! 라면 국물은 양반이라고 해야 하나, 족발 뼈나 치킨 무, 물티슈를 버리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여성 용품이나 속옷까지 버린다는데, 이걸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다. 라면 국물에는 기름기가 있어서 배관에 붙거나 기름이 굳어져서 배관이 막힐 수가 있단다. 그렇긴 하네. 변기에 버릴 수 있는 건 똥오줌이나 물에 녹는 휴지 정도란다. 그러니까 변기에는 물에 녹을 수 있는 것만 넣어야 하는 거였다.  

    

혼자 사는 사람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게 고역 중 하나다. 쓰레기 봉지에 모아둘 수도 없고, 바로 버리려고 하면 쓰레기 봉지 값이 아깝기도 하다. 컵라면에 물을 조금만 부어야겠네. 사무실에서 종량제 쓰레기 봉지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니, 좀 짜긴 하겠지만 남은 국물까지 쭉 마시려면 어쩔 수가 없겠군. 친구 집에 가서도 치킨 무를 다 씹어 먹어야겠네. 친구는 벌레를 극도로 싫어해서 남은 음식물을 변기에 버리곤 했는데, 이제는 음식을 다 먹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냉동시키거나 둘 중 하나의 방법을 하라고 일러야겠다. 

     

음식물을 아주아주 잘게 분쇄해서 변기에 버리는 방법도 있다는데, 누가 이렇게까지 할까 싶다. 그냥 변기에는 내 몸에서 배출되는 것만 넣자. 머리카락은? 내 몸 안에서 배출되는 게 아니니 변기에 버리면 안 된다. 변기에 마구잡이로 버리게 되면 오늘 나처럼,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갈아타면서까지 지하층의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을지도 모르잖아. 


버려야 할 쓰레기는 버려야 할 장소에 제대로 버려야 뒤탈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변기에 역류가 생겨서 내 몸이 둥둥 뜨는 꿈을 꾸게 될지도 모른다. 똥꿈이라고 좋아하지 말자. 이건 쓰레기 똥꿈이 될 수 있으니. 

      

매거진의 이전글 열정 기계의 부품을 교체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