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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기어때 젊은이 Nov 09. 2018

나는 우리 회사 대표님을 ‘레드!’라 부른다

여기어때 영어 호칭 도입 20개월, 무엇이 바뀌었을까


 우리나라 사람이 서양 문화권에 가면 호칭에서 혼란이 온다. 학교에서 스승을 '선생님(teacher)'이라 부르지 못 하고, 직장에서는 팀장님 이름을 부르는 게 무례한 것처럼 느껴진다. 


 한 사회 구성원이 사용하는 언어는 문화와 사회적 관계를 반영해 발전한다. ‘개인’을 중요시하는 서구 문화권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수평적 호칭체계다. 그러나 사회적 계층, 신분을 생각하는 동양 문화권에서 하급자가 상급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통상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과장님”, “대리님”, “이사님” 

 우리나라 직장의 호칭 문화는 위아래를 구분하는 목적 외에도,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미국에서 직급은 조직공헌도에 따른 금전적 보상 기준이다. 직장 동료를 직급으로 부르는 일도 없다. 반면, 수직적인 계급문화가 배어 있는 한국에서 ‘직급’은 조직 내 서열과 지위, 처우, 사회적 신분을 구분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하급자는 상사를 부르는 매 순간 조직에서의 서열과 위치를 되새기는 셈이다. 



모두가 Yes 할 때 No라고 외치는 문화

 한국의 전통적인 인적자원 관리체제는 안정적인 피라미드 구조로 운영된다. 이는 거대 기업의 구성원이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데 효과적인 운영 체제다. 그러나 외부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해야 하는 IT기업이나 창의성이 요구되는 광고·마케팅, 디자인 분야는 수직적 직급체계가 업무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수직적 소통 문화에서는 상급자와 반대되는 의견이 나오기 쉽지 않다. 반면, 자유로운 소통 환경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오간다.


 “‘직급’을 구성원 간 자유로운 소통을 방해하는 ‘장애’로 봤어요. 기존 직급제에서 하급자는 상급자 생각에 반하는 의견을 내기 힘들고, 상급자는 다양한 의견을 듣지 못 하니 결국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거죠.”

- 조현기 위드이노베이션 교육문화팀장 -


 또, 직급은 개별 구성원이 업무를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된다. 회사에 기여하는 방향, 맡은 과업을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일해야 하지만, 직급에 연연하다 보면 ‘할 일’을 하급자에게 미루거나 승진과 연관된 업무에만 집중한다. 


 직급을 없애 의사소통이 원활한 민첩한 기업을 만들자!

 

 감투를 벗고 각자 역할과 책임에 집중하도록 환경을 조성하자는 의견이 모였다. 업무 보고 간 위계는 유지하되, 직급을 폐지하고 각자의 역할(Role)과 책임(Responsibilities)을 강조하기로 했다.



'님’ 호칭과 영어 이름의 차이

  “직급이 없으면 구성원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먼저, 기존 직급을 폐지했던 기업 사례를 분석했다. 직급 없이 구성원을 부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①‘~프로님’, ‘~담당님’ 등 통일된 호칭을 부여하는 방법 ②한글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르는 방법, 그리고 ③영어 이름이나 닉네임처럼 새로운 호칭으로 부르는 방법이다. 


 처음 검토한 방안은 구성원 이름에 ‘님’을 붙이는 것이었다. ‘님’ 호칭 문화는 CJ와 SK, 네이버 등 기업이 도입해 정착시켰고 영어 호칭에 비해 임직원이 느끼는 변화가 작아 내부 반발이 크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직급을 폐지한 기업들. 반대로 포스코, KT, 한화는 ‘매니저’ 호칭 제도를 시행하다가, 다시 직급체제로 회귀했다.


 그러나 님 호칭은 반쪽짜리 변화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상급자의 경우, 하급자를 칭할 때 '○○ 씨’, ‘□대리’, ‘△과장’ 등 이름이나 직급만 부르다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르면 호칭에 큰 변화가 생긴다. 그러나 하급자가 상급자를 부를 때는 ‘부장님’, ‘팀장님’에서 ‘○○님’으로, 직급이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 체감상 변화가 없다. 상급자와 하급자 모두에게 수평적 소통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님’ 없이 영어 이름만 부르는 제도를 적용했다. 


 “직급을 폐지함과 동시에,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면 구성원 문화적 충격이 클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죠. 온전하게 수평적인 소통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경영진 의지가 있어 가능했어요.”  

- 조현기 교육문화팀장 -  



"'대표님’ 대신 ‘RED’라 불러주세요."

 제도 도입보다 중요한 건 안정적인 제도 정착. 대표가 먼저 모범을 보였다. 


 “레드는 구성원을 만나면 먼저, 영어 이름인 ‘레드(Red)’로 불러 달라고 말했어요. 임원들과 함께 하는 아침 미팅이나 회식 자리에서도 늘 강조하셨죠. 특히 영남과 호남지사는 본사와 떨어져 있어 문화 전파가 더딜까 우려했는데, 레드는 지사장들과 회식 자리에서 내내 영어 이름을 부르셨다고 해요. 덕분에 지방 지사도 본사와 속도를 맞출 수 있었어요."

 - 문지형 위드이노베이션 CCO, 커뮤니케이션실 총괄 -


▲여기어때 젊은이(구성원)의 독특한 영어 이름


 또한 리더들에게 책임을 강조했다. 직급으로부터 나오는 권위가 아닌, 진정한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끌도록 리더십 원칙을 수립했다. 더불어, 각 부서 수장을 대상으로 리더십 교육을 진행했다. 구성원에게는 각자의 책임과 역할에 집중하게끔 담당업무를 명확히 하고 명함에 직급 대신 직책을 명시했다. 리더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구성원 노력으로 영어 호칭 제도는 2017년 3월 도입 이후 한 달 만에 온전히 자리 잡았다.



생각은 자유롭게, 어깨는 무겁게

 영어 호칭 제도 도입 만 20개월. 얼마나 달라졌을까. 


 “영어 이름에 ‘님’을 붙이거나 부서장에게 ‘팀장님’이라고 하지 않고, 원래 취지대로 영어 이름만 부르고 있어요. 또, 직급에 의한 리더십이 아닌, 실력에 기반한 리더십이 발휘되는 조직으로 전환됐다고 봐요.”

- 조현기 교육문화팀장 -


▲한 구인·구직 사이트의 조사 결과. 직장인의 절반 이상이 직급을 간소화하거나, 폐지하길 원했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정보 공유와 아이디어, 의견 교환은 이전보다 풍성해지고 신속해졌다. 덕분에 리더는 직원 의견을 하나하나 묻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며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

“다른 회사에서는 팀장 의견에 토를 다는 게 암묵적으로 금기시됐죠. 지금은 서로 영어 이름으로 동등하게 부르니,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의견을 낼 때 자신감을 갖고 말하게 됐어요.”  

- UX디자인팀 L (입사 1년 차) -


 자율성을 보장하는 대신, 일에 대한 책임은 엄중하게 진다.

 “다른 회사에 비해 각자의 역량을 펼칠 기회가 많아요. 그만큼 책임을 필요로 하죠. 상명하복이 당연시되는 조직에서는 팀장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지만, 우린 업무 담당자가 PM이고 책임자예요.”

-서비스 개발실 P (입사 1년 차) -


▲젊은이들의 명패. 영어 이름과 담당 업무가 적혀 있다.


 직군에 따라 곤란한 상황도 있었다. 영업, 마케팅, 홍보 등 외부 접촉이 많은 부서는 본인을 소개할 때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인사팀은 내부호칭과 대외호칭을 분리해 사용하도록 내규를 정비했다. 


 팀장이나 사업부장 등 직책이 있는 경우 대외적으로 직책명을 사용하게 하고, 직책이 없는 팀원은 이름에 ‘님’을 붙인다. 영업, 홍보 직군은 업의 특성을 고려해 외부 커뮤니케이션 시 ‘매니저’라는 호칭을 허용했다. 


 직급을 대체할 보상책도 손질했다. 일반 기업은 성과에 따라 연봉과 승진으로 보상하지만, 직급이 없는 조직은 인재 영입 시 애로사항이 있다. 매년 급여조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성과에 따른 보상체계를 갖춰 구성원의 반발을 최소화했다.


 보완할 점은 남아 있다. 영어 호칭 제도를 뒷받침하고 더욱 민첩한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후속 조치를 마련 중이다. 


 “직급폐지와 영어 호칭이 우리 회사에 좋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해야 할 과제가 남았습니다. 명확한 R&R, 성과 판단 기준과 평가 방법, 그리고 합리적인 보상과 대우 등 더 민첩한 고성과 조직으로 변화시키는 과제들을 추진해 영어 호칭의 성과가 무색해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조현기 교육문화팀장 –



[참고문헌]

오혜경, 「기업조직의 호칭파괴와 직급폐지」,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4 

류우진, 「TV 드라마 <미생>을 활용한 한국 직장 호칭 문화 교육 방안 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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