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인가 동생과 나눈 대화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를 수 있으니, 설명을 하자면 텔레비전 드라마'우리들의 블루스'와'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텔레비전은 없지만 스마트폰이나 피시로, 원하는 시간과 분량을 조절해 얼마든지 시청할 수 있는 스마트한 세상. 한 지붕 아래 다른 공간에서 사는 우리 자매는 오랜 습성으로 혼밥에 곁들여가볍게 즐길 수 있는 드라마를 본다.밥도각자,드라마도 따로 시청하지만 되도록 같은 걸 맞춰본다. 사람 둘, 고양이 여섯. 존재구성이 단순한 산골 생활이라 그래야 대화거리가 풍부해진다. 고래를 좋아하는 주인공이 김밥만 먹는다는 드라마를 동생이 보기 시작할 때부터 내심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부터 김밥 타령이었다. 툭하면 먹는 김밥, 이런 말은 무색하다.동생도 우영우처럼 몇 년간 꼬박 김밥만 먹고 산 이력이 있다.
블루스를 끝내고 나도 곧 우영우를 보게 되었다. 밥 먹으며 볼 만한 내용과 영상을 갖춘 드라마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오직 김밥만 먹는 우영우는 마음이 놓였다.김밥처럼 동그랗게 편안한 이야기. 이름부터가 김밥 속 우엉을 연상하게 하는 우영우. 속이 잘 보이는 김밥처럼, 갑자기 놀라거나 밥 맛 잃을 것을 염려할 필요 없는 영상이었다. 동생이 예견한 대로 내가 우영우를 시청하면서부터 우리 주식은 거의 김밥이 되었다.아침마다 김밥 여섯 줄을 쌌다. 우영우 보는 동안은 오직 김밥만 먹게 해 주겠다, 그런 생각이었다. 김밥이라면 언제든 반기는 동생이야 말할 것 없고, 식사 담당인 나로서도 뭘 먹일까 고민할 것이 없어좋았다.
"우영우 김밥이 나는 좋아요.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인도인 별똥별."
동생은내가 김밥을 싸서 건넬때마다노래하듯 우영우 말투를 흉내 냈다. 우향우, 좌향좌 같은, 앞뒤가 같은 말을 더 생각해내기도 했다. 김밥 여섯 줄이면 둘의 하루 식사가 대충 해결되었다. 동생은 네 줄, 나는 두 줄. 나는 동생과 달리 김밥만 먹고 싶진 않아 나머지 한 끼는 다른 걸로 채웠다.
우영우 김밥이라고 특별한 재료가 필요하진 않았다.가을텃밭에 넘쳐나는 깻잎, 가지, 고추, 부추를 기본으로단무지, 버섯, 콩나물, 양배추, 달걀 정도를 추가하면 갖가지 맛이 나는 김밥을 영양 균형까지 맞춰 만들 수 있었다. 드라마 속 우영우가 먹는 김밥도 특별하진 않았다.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김밥인데,약간 특별한 점이 있다면 썰어 놓은 두께가 얇았다. 아마도 촬영 중 김밥을 많이 먹어야 하는 입장을 생각해 얇게 썬 모양이었다. 내가 만든 김밥에서도나름 특색을 찾는다면,깻잎을 아주 많이 넣는다는 것. 올해 텃밭엔 유독 깻잎이 잘 자랐다. 김밥 한 줄에 스무 장은 넘는 깻잎을수북이 넣을 수 있었다. 많아 보여도 밥 위에 깔고 다른 재료를 감싸며 꼭꼭 눌러 말면 단정한테두리가되었다. 썰었을 때보기에도 좋고, 깻잎 향이 진하게 나는 아주향긋한 김밥.
깻잎을 듬뿍 깔고 김밥을 말면 아주 고소하고 향긋하다
"오늘이 마지막이네."
우영우 마지막 회를 남겨둔 아침 나는 말했다.나는 김밥을 말고 있었고, 동생은 옆에서 구경하는 중이었다.
"아니. 나는 오늘 안 끝낼 거야."
동생이 말했다.
"뭐야. 너도 어제 15회 봤잖아. 그럼 오늘이 끝인 거지."
내가 말했다.동생은 나보다 먼저 우영우를 시작했지만 내게 보조를 맞춰 중간 즈음부터는 같은 회차를 보게 되었다. 그동안 보름 남짓 김밥을 말았다. 밥 먹을 때만 보기에, 보통 16부작 드라마를 보는 것에 그 정도가 걸렸다.추석을 앞두고 부모님 댁 다녀오던 하루만 리듬이 깨졌을 뿐이다. 아니그날조차 새벽에 김밥 두 줄을 싸서 아침으로 먹고 출발했다. 나는 이제 충분했다. 김밥 싸는 것이야 싫증 나지 않았다 해도, 먹는 건 물렸다.그런데 동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