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혼자 떡국을 먹었다. 혼밥을 즐기지만 생일이나 특별한 날엔 옆집 동생과 겸상을 한다. 그런데 새해 아침엔 너무 일찍 깨어나 날이 밝기 전 배가 고팠다. "아침에 떡국 먹으러 와."라고 전날 동생에게 말해 두었는데 할 수 없었다. 묵은해 마지막 이틀 동안 내린 눈으로 밖은 온통 새하얀 세상이 되었다. 눈을 너무 많이 보아서인가, 해가 바뀌고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따끈하게 끓인 하얀 떡국부터 생각났다.
떡국 끓일 준비는 하루 전 미리 해 두었다. 무를 채 썰고 마른 표고버섯과 떡도 물에 불려 놓았다. 전기밥통에 무채를 넣어 한 김 푹 끓인 뒤 떡을 넣어 또 푹 끓였다. 표고버섯도 넣고 달걀도 풀고. 마지막엔 잘게 썬 파와 김을 얹었다. 무채를 넣어 끓인 떡국은 처음인데, 오 맛이 괜찮았다. 무 특유의 시원하면서도 구수한 국물에 말랑한 떡의 조합. 날이 밝은 뒤 동생이 건너왔다.
"난 먼저 먹었어."
다시 떡국을 끓여 동생 아침을 차려주었다. 내 떡국보다 업그레이드된 떡국. 동생 떡국은 표고버섯과 달걀지단을 따로 채 썰어 파와 김과 함께 얌전히 고명으로 올렸다. 동생이 먹고 싶다고 했던 무채 전도 넉넉히 만들어 곁들였다.
"와, 냄새가 끝내줍니다."
동생이 기쁜 얼굴로 말했다. 함께 떡국을 먹을 줄 알았다가 혼자 먹게 되어도 전혀 실망하지 않는 동생이다.
"어제는 누가 눈을 밀어주고 간 걸까?"
떡국 먹는 동생 곁에 앉아 무채 전을 맛보며 내가 말했다. 지난 이틀 동안 내린 눈은 10센티도 넘게 쌓였다. 영상에 가까운 기온이라 눈은 쌓이면서 주저앉아 무게가 상당했다. 눈삽으로 밀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눈을 몇 삽 퍼 올리다 포기, 눈썰매를 타기로 했다. 이곳에 이사 온 초기에 산골 생활을 만끽하느라 구입한 눈썰매. 자주 즐긴 편은 아니어서 아직 멀쩡하다. 마당 아래 하얀 비탈길을 신나게 미끄러져 내려가다 커다란 눈더미에 막혀 퍽, 썰매가 눈을 뒤집어쓰며 멈췄다. 일어나 보니 길 아래로부터 눈이 밀려 올라와 눈 방어벽이 생겼다. 누군가 제설 장비를 갖춘 차량으로 눈을 밀어 놓고 간 것이었다.
"소금 아저씨겠지."
동생이 말했다. 마을에서 구죽염을 만들어 판매하는 분을 우리는 소금 아저씨라고 부르고 있다.
"아냐. 반장님 같아."
내가 말했다. 추측 가능한 인원이 거기까지다. 마을에서 제설 장비를 갖춘 사람이 그 두 사람밖에 없다. 누가 되었든 고마운 일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 굳이 외딴 기슭까지 와서 슬그머니 눈을 치워주고 가시다니. 그 마음을 생각하니 새해를 맞아 때깔 고운 복주머니를 찬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