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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Feb 03. 2024

맛있는 단풍잎돼지풀

단풍잎돼지풀 쓰임새

  단풍잎돼지풀을 아시는지. 단풍잎돼지풀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단풍잎돼지풀 곁을 지나친 적은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 흔한 풀이다. 풀이라기엔 나무처럼 키가 커서 눈높이를 넘어간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북미에서 온 귀화식물이라고 나와 있다. 원산지에선 키가 5미터 이상도 자란다는데, 우리나라에선 3미터 정도까지 자란다고 한다. 역시 제 고향에선 기세를 더 펼 수 있나 보다. 그래도 제 나라를 떠나 먼 타국까지 와서 자리 잡은 생물이 대개 그러하듯 생명력이 막강하다. 큰 키와 튼실한 체구로 햇볕과 양분을 차지하니 주변 식물들이 잘 자라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생태교란 식물로 지정되었다. 더구나 가을에 씨를 맺을 때면 콩가루 같은 노란 꽃가루를 대량 바람에 날려 존재감을 확실히 인식시킨다. 그 꽃가루가 호흡기를 자극하고 알러지를 유발하기도 해서 인체 유해식물로도 분류되었다.

     

  토종식물 번식을 방해하고 인체에도 해로운 작용을 하는 건 사실이지만 단풍잎돼지풀이 나쁜 건 아니다. 생명력 강한 저 나름의 기질대로 사방 어느 환경에 당도해도 꿋꿋이 싹을 틔워 살아갈 뿐이다. 연구 결과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함유한 성분을 보면, 오히려 사람에게 좋은 폴리페놀을 다량 지니고 있다고 한다. 독성도 거의 없어 약용으로도 쓰이고 식용도 가능하다. 

    

  오래전 내가 동생과 함께 산골에 집을 지어 들어왔을 때, 길 따라 껑충하게 마른 풀이 마구 서 있었는데 그게 단풍잎돼지풀이었다. 그땐 이름을 몰라 수수깡풀이라고 불렀다. 길게 자란 통통한 줄기 속에 하얀 섬유질 심이 꽉 차 있어 수수깡과 흡사했던 것이다. 불을 지피면 아주 잘 탈 것 같았다. 그때 계절이 겨울이라 장작난로를 지폈는데 생각대로 훌륭한 불쏘시개가 되어주었다. 난로 바닥에 마른 단풍잎돼지풀을 한 줌 깔고 장작을 얹어 불을 피우면 실패하지 않았다. 겨울마다 그렇게 단풍잎돼지풀을 불쏘시개로 썼다.


겨울철 단풍잎돼지풀. 전선에 닿을 정도로 키가 크다.
봄철(5월경) 단풍잎돼지풀. 이맘때가 나물하기 좋다.


  이름을 알게 된 건 몇 년 뒤였다. 봄에 동그란 어린잎 두 장이 마주보기로 돋아나도 그게 불쏘시개로 쓰던 풀의 떡잎인 것을 몰랐다. 콩나물처럼 돋은 연초록 어린잎은 똘망하니 어여뻤다. 따스한 봄볕에 여기저기 새잎들이 마구 돋아나 쑥쑥 한 뼘 정도 자랄 때면, 단풍잎돼지풀은 이미 무릎 위만큼 껑충하니 커졌다. 줄기에서 단풍잎 모양 푸른 잎들이 뻗어 나와 주변에 그늘을 드리울 때야 아, 이게 겨울에 불 때던 수수깡풀이구나 연결이 되었다. 산골 초기 몇 년은 인터넷 선도 들어오지 않아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지니고 있던 식물도감이나 산야초 책을 뒤적거려 봐도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산골 생활 사 년 만에 어렵사리 인터넷이 연결된 뒤에야 원활한 검색을 할 수 있었다. 돼지풀과 비슷한데 잎이 단풍잎을 닮아 '단풍잎돼지풀'. 진짜 이름을 알게 되어 속이 시원했다. 어린잎은 데쳐서 나물로 먹을 수 있다는 정보도 있었다. 봄나물이 대개 그렇듯 독성이야 얼마간 있지만 유월 전에 딴 어린잎은 안전하고, 독성이 있다 해도 열을 가해 익히는 과정에 분해되어 괜찮다고 했다. 흔히 먹는 쑥이며 다른 나물류도 유월 이후엔 독성이 강해지고 맛도 달라져 채취하지 않는 게 좋다. 

    

  지난봄엔 처음으로 단풍잎돼지풀을 먹어보았다. 오월경 무릎 정도로 키가 커졌을 때 단풍잎처럼 생긴 푸른 잎을 몇 줌 따서 끓는 물에 데쳤다. 국물을 맛보았다. 맛이 구수하여 나쁘지 않았다. 데친 단풍잎돼지풀은 초록색이 더욱 짙어졌다. 들기름과 소금만으로 간을 해서 먹어보았다. 살짝 데쳤건만 잎은 아주 부드러웠고 맛이 꽤 좋았다. 어쩐지 낯선 맛이 아니었다. 익힌 호박잎과 비슷한 맛과 질감이었다. 처음엔 조금만 먹어보았고 다음엔 양을 좀 늘렸다. 생소한 음식은 그렇게 접근하는 게 좋다. 나물로만 먹어보다 차츰 다양하게 활용했다. 된장찌개에 넣으니 정말 호박잎 된장찌개와 흡사했다.

     

   단풍잎돼지풀만의 특징은 색이었다. 열을 가해 익힌 뒤엔 색이 아주 짙어졌다. 진초록 물이 마치 염료처럼 짙어져, 색 고운 음식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았다. 데친 단풍잎돼지풀을 믹서에 갈아 밀전병도 만들고 초록 수제비도 만들어 먹었다. 맛은 물론 보기에도 좋은 별식이 되었다. 저장 식품으로도 괜찮았다. 오월쯤 잎이 연할 때 따서 데친 뒤, 냉동 용기(냉동밥 용기)에 넣어 냉동실에 차곡차곡 쟁여 두니 꺼내 쓰기 좋았다. 초록이 그리운 겨울에 만나는 진초록 잎이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전엔 해동해 둔 단풍잎돼지풀을 믹서에 갈아 빵을 만들었다. 아직 마당에 하얀 눈이 덮인 겨울날 초록빛 고운 반죽을 만지고 있으니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단풍잎돼지풀 꽃말이 행복한 연애라고 한다. 번식력이 좋아 자손을 많이 퍼뜨리는 것에서 지어진 모양이었다. 그 왕성한 생육으로 인해 인간 세상에서 괄시도 받지만, 불쏘시개나 나물로 취할 땐 고마운 식물이기도 하다.     



단풍잎돼지풀 전병


단풍잎돼지풀 베이글


단풍잎돼지풀 빵. 빵을 자르면 속은 진초록이다.


불쏘시개로 쓰기 위해  전지가위로 단풍잎돼지풀을 자르고 있다


손수레에 한가득 싣고 집으로... 뭔가 옛 풍경 같습니다^^


불이 잘 붙는 단풍잎돼지풀. 태운 재는 텃밭 거름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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