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고

by 구름나무

태풍이 오는 밤, 자정 무렵 깨어나 시 잠들지 못했다. 새벽 3시경 태풍은 제주를 거쳐 남해안으로 다가들고 있다 했다. 초속 20킬로 는 비바람에 포구 어선이 뒤집히고, 가로수가 뽑히고, 침수 피해가 잇따르고 있었다. 뉴스를 간간이 확인하다 날이 밝았다. 내가 사는 지역은 태풍 경로에서 먼 편이라 초속 20킬로 바람은 오지 않았다. 소 강한 바람을 타고 굵은 빗줄기만 일에 걸쳐 줄곧 내리고 있다. 얼마 전에도 몇 차례 폭우 내렸는데, 이제는 역대급 초강력 태풍이 오고 있다니, 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전안내 문자도 빗발치듯 들이닥쳐 긴장을 고조시켰다.


오래전 태풍 피해를 대로 입은 적이 있었다. 북한강이 저만치 흘러가는 마을에 살 때였다. 산자락에 있던 농가를 사서 7년간 살, 그 집을 떠나기 두어 달 전인 여름 끝자락, 태풍 루사가 왔다. 대형 크기에 내륙 깊이 상륙하는 태풍이라 그때도 전국이 초긴장 사태에 돌입했다. 태풍이 근접해오고 있다는 밤에 KBS1만 선명히 나오던 텔레비전으로 뉴스 속보를 틀어 놓고 있었는데,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마당에 나가보니 언가 물체가 지붕에 얹혀 있었다. 비가 마구 쏟아지는 컴컴한 밤, 시꺼먼 물체가 지붕에 얹힌 모습은 기괴했다. 전등을 비춰 살펴보니 마당 수돗가에 그늘을 드리우던 은단풍나무였다. 왕관처럼 생긴 넓적한 잎을 무수히 달고 키가 훌쩍 컸던 나무. 스 정보에 의하면 마을 사무소마다 비상대책 팀이 대기하고 있다고 했다. 면사무소에 화를 걸었더니 곧 대여섯 사람이 노란 비옷을 입고 착했다. 강한 불빛 속에서 그들은 의견을 나누며 빗물에 번들거리는 나무를 지붕에서 끌어내리 작업을 해주었다. 마구 뻗친 나뭇가지 주변에 전깃줄이 걸쳐 있어, 작업은 느리고 조심스럽게 진행되었다. 은 가지을 전동톱으로 잘라 나무를 겨우 지붕에서 내려놓고 그들은 돌아갔다. 나머지 작업은 날이 밝은 뒤 다시 와서 해 주었다. 가 컸던 만큼 나무는 여러 토막이 났다. 지붕은 기와였는데 나무가 얹혔던 곳이 파손되어 내려앉아 있었다.


사가 지나간 가을 다가들었다. 동강 낸 나무는 마당 의자가 되어주었다. 나는 집 바깥벽 창을 따라 일렬로 늘어놓은 나무토막 의자에 앉아 마당 너머 강을 자주 바라보았다. 나무가 사라진 수돗가에 칠하게 서 있는 키 큰 은단풍나무도 여전히 바라보았다. 눈으로 볼 수 없기에 더욱 선명해진 그 나무가 먼 훗날 지금의 내 집, 수래나무가 되어준 것인지도 모른다고, 이제야 생각이 닿는다. 가을이면 찌감치 다른 나무보다 먼저, 곱게도 물들 그 노랗고 붉은 나뭇잎들. 그 당시엔 파손된 지붕을 수리하느라 다소 심란했을 것인데, 세월이 훌쩍 지나서인지 그런 기억보다는 나무의자가 된 은단풍나무와 별똥별 기억만 째 선명하다. 이사를 앞두고 있던 그때, 을이 깊어지자 차가운 밤하늘에선 별똥별이 휙- 휙- 떨어졌다. 전까진 어두운 새벽 좀처럼 마당에 나가게 되질 않더니, 벽을 따라 줄줄이 나무토막이 있으니 이따금 나가 앉게 되었다.

"봤어?"

휙- 별똥별이 지나갈 때면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물었던, 참 서늘하고 아름다운 한 때.


해가 제법 떠오르도록 물안개가 자욱이 피어오르던 강가의 그 마을을 아직도 립게 떠올리는데, 태풍 루사의 일은 사실 거의 잊고 있었다.

"엄마 우리 은단풍나무 넘어진 게 루사 때였지?"

딸애가 전화로 물어 생각난 것이다. 2002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애에게 그 일은 상당히 강한 인상으로 남았던 모양이었다. 딸애는 다음날 사람들이 다시 와서 나무를 기계로 토막 내 준 것을 나보다 더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의자로 앉기 좋도록 잘라 주겠다고, 그중 한 아저씨가 했다는 말까지. 딸이 이젠 다 커서 내 보호자가 되었다.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그때처럼 나무가 집에 날아들까 봐 딸은 걱정하고 있었다. 내 집 부엌 창으로 내다보면 깎은 벼랑 끝에 키 큰 낙엽송이 몇 그루 있어 바람이 강할 땐 늘 염려가 되었다.

"괜찮을 거야."

말하는 것 말고는 대책이랄 게 없었다. 그나마 내가 자는 곳이 창에서 먼 곳이라 혹여 나무가 쓰러져 지붕을 덮쳐도 피해는 없을 것이었다.

"뉴스란 게 좀 자극적으로 부풀려지잖아."

딸을 안심시키려 덧붙였더니

"기상예보는 다소 과장되어도 돼.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최대한 예측해 방비하게 하는 게 맞는 거지. 그러다 별일 없으면 다행으로 감사할 일인 거고."

딸이 말했다.


아침 6시 무렵 태풍은 포항, 울진 부근을 지나 육지를 빠져나갔다. 실시간 뉴스엔 침수 피해 상황을 반복해서 내보내고 있었다. 뉴스로 전해 지지 않은 다른 타는 일도 많을 거였다. 오 무렵 비가 그쳐 밖으로 나가보았다. 벼랑 낙엽송은 꼿꼿하게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마당 아래 비탈길엔 떨어진 나뭇잎이며 누운 풀잎들이 널려 있었다. 평소 물이 얕았던 농로 옆 골짜기엔 물이 솟구쳐 거세게 흐르고, 며칠 묵직한 구름으로 덮였던 하늘은 어느새 가벼운 흰 구름을 피워 먼 푸름을 내 보였다.


하루가 지나 다시 날이 밝았다. 바람은 태풍이 지나간 뒤 오히려 기세등등해져 밤새 창 너머 숲을 내달렸다. 더 이상 뉴스를 보진 않았지만 힌남노는 이제 소멸해 열대 저기압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가을은 더러 태풍이 오는 계절이다. 내 생의 계절도 가을에 들어선 듯하다. 작은 태풍 몇은 이미 지나갔고, 어떤 태풍이 더 올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연로하신 부모님, 함께 나이 들어가는 가족들 건재를 항상 염려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풍이 온다 해도 사실 별다른 대책은 없다. 미리 근심을 부풀려도 소용없다. 누구나 하듯 약간의 대비를 할 뿐, 그저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지나가기를 바랄 수밖에.




태풍이 지나간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