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다

by 구름나무

흔들리고 싶을 때가 있다.

오래전 지리산 어느 시인은 바람도 아닌 것에 흔들리기 싫어서 도시를 떠났다지. 도시를 떠나 강원도 산골에 올 무렵 그 말이 좋아 자주 읊어댔다. 바람도 아닌 것에 흔들리기 싫어서 나도 도시를 떠나는 거라고, 흥겹게 감정이입을 했던가. 하지만 그럴 정도로 도시의 무엇에 흔들렸다고까지 할 건 없었다. 다만 나무와 돌, 풀, 비탈길, 바람 그런 것들이 좋아서 옮겨왔을 뿐이다.


실상 나는 흔들리는 것에 그다지 거부감이 없다. 흔들린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기애에 가깝다. 내재된 욕망이라고도 볼 수 있다. 흔들리고 싶기에 흔들리는 것이다. 동생과 나를 보자면 나는 웬만하면 흔들리겠다는 편이고, 동생은 엔간해선 흔들릴 생각이 없다. 물론 흔드는 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 상황은 바뀔 수 있다. 지리산 시인의 말도 가만 생각해보자면 초점은 '흔들리지 말자'가 아닌, '흔들리고 싶다'가 아까. 나무와 나무 사이 불어 가는, 그런 바람이라면 흔들리고 싶다는.


엔간하면 흔들리지 않는다는 동생을 엔간하지 않게 흔든 것이 있었다. 히 흔들린다고 표현할 때는 대체로 마음의 상황인 것인데, 동생을 흔든 건 실제로 흔들리고 싶다는 물리적 상황, 그러니까 그네를 타고 싶다는 것이었다. 흔치 않은 그 상황이 발생한 건 지난 늦가을이었다. 아침마다 걷는 마을 길. 도로가에 있는 반장님 집 앞을 지나다가 "오! 그네잖아." 동생이 멈추어 섰다. 울타리 대신 둘러진 나무들 사이로 저만치 안마당에 정말 그네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 그네였다. 지붕이 있는 나무 그네는 근사했다. 산골에 집을 짓고 나서 우리가 마당에 놓고 싶어 한 바로 꼭, 그런 그네였다.

"반장님이 만드셨나 봐."

"와, 정말 솜씨 좋다."

둘은 걸음을 떼지 못하고 소곤거렸다. 그 뒤 반장님 집 앞을 지나칠 때마다 동생은 그네에 끈끈한 눈길을 보내곤 했다. 농한기인 겨울, 어느 날인가는 반장님 댁 마당에 목재가 잔뜩 부려져 있었다. 그네를 만들기 위한 자재인 듯했다. 목공을 좋아하는 반장님. 솜씨도 좋고 공구도 전문가 수준으로 갖추고 있 분이다. 년 전엔 나무 우체통을 여러 개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면서 우리에게까지 나눠 주다. 어디를 다녀오든 진입로 울타리 앞에 세워 둔 그 우체통을 보는 순간 우리는 복해졌다. 마치 화에 나올 법한 '숲 속의 집', 그 계로 들어가게 해 주는 것 같은 아주 예쁜 빨간 우체통.


반장님이 선물해 준 우체통. 이곳에서 삼백 여 미터 굽이진 경사로를 올라야 집이 나온다.

장님 그네는 하나 둘 늘어났다. 아무래도 취미를 넘어 판매도 할 것인가 보았다. 반장님 댁 앞을 지날 때마다 우리는 그네 보는 재미에 걸음을 늦췄다. 새로운 그네가 보일 때면 품평을 하느라 한참 멈추어 있기도 했다. 처음 만들어진 그네 말고도, 통나무로 만든 다란 이인용 그네가 두 개였고, 담한 일인용 그네 개였다.

“난 내 그네가 가장 마음에 들어.”

동생은 맨 처음 보았던 그네에게 매불망 마음을 쏟 급기야 ‘내 그네’라고 부르기에 이르렀다. 느 날 동생 '내 그네'는 채색을 하고 있었다. 붕은 붉은 갈색, 기둥은 옥색, 의자는 나무색. 생이 좋아하는 색 조합이었다. 혹시 판매 예정으로 색을 입힌 건가 싶었다.

"내 그네가 팔리면 어쩌지."

동생은 괜히 조바심을 내었다. 봄바람이 몹시 불던 날 리는 반장님 앞을 지나고 있었다. 산등선을 따라 나무숲을 우우 흔들며 달려온 바람이 길바닥 먼지를 와락 훑어 올렸다. 옷자락과 머리칼이 마구 흩트려지는 참으로 정신 사나운 날씨 속에서도 동생은 그네를 흘깃거렸다. 나는 우뚝 멈추어 섰다.

"그네 우리가 사자."

내 말에 동생 걸음을 멈추었다. 만히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 설마 진심은 아니겠지, 하는 의혹이 담겨 있었다. 계절에 걸쳐 그네 구경을 하며 즐겼지만 그네를 사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비용을 들이지 않는 생활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그에 따른 갈등은 없었다. 약간의 불편은 있을 지라도 그것이 불만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소박한 생활 덕분에 누리는 것이 더 많다고 여기기도 했다. 비록 '내 그네'라고 부를 정도로 동생이 특정 물건에 애정을 쏟았다 해도, 그건 그냥 바라보는 것으로 좋을 뿐, 갖고 싶어 애를 태우거나 상심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엇에도 예외는 있다. 필수품이 아니라 해도 오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라면 적당 타협을 거쳐 구매를 하기도 한다. 동생의 경우 그런 예외는 거의 자신이 돌보는 고양이 관련 물품이다. 내 경우는 그게 또 동생이다.


"정말?"

동생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내 의중을 살폈다. '그 정도 흔들렸으면 됐어. 가질 자격이 충분해.' 그런 인상적인 한 마디를 던지고 싶었지만, 나는 그냥 싱긋 웃어 보였다. 좋지? 내 말에 동생이 전히 고개 끄덕였다. 가엔 배시시 웃음이 물려 있었다. 못한 용한 반응이었다. 정신없이 달려드는 바람소리까지 저앉힐 듯 초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야단스런 반응보다 더 열렬한 것임을. 결단을 내린 이상 더 이상 지체할 까닭이 없었다. 곧바로 휴대폰을 꺼 전화를 걸었다. 반장님은 마침 목공실에 있었다.

"들어와요."

화를 마치기도 전 작업실 입구로 나온 반장님은 손짓까지 보태며 우리를 불렀다. 온갖 도구가 갖춰진 목공실 구경은 이미 여러 번 했다.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주저하는 우리에게 '아, 일단 들어와 봐요.' 반장님은 차 권유했다. 반장님과 알고 지낸 지 어언 9년째다. 오직 우리의 관심사는 그네뿐이지만 반장님 마음을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다. 누가 방문하든, 방문의 목적이 무엇이든, 지금 흠뻑 빠져 있는 새로운 작품을 보여주고 싶 게 창작자의 마음인 것이다. 작업실에 들어가자마자 반장님은 작업 중이던 탁자부터 보여주었다.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짜맞춤 기법으로 만들고 있다 했다.

"아, 못 없이 나무와 나무를 끼워 완성하는군요."

나는 반장님 흥을 맞춰 주었다.

"맞아요. 이게 우리 전통기법이에요."

반장님이 기뻐하며 전통기법으로 만든 작품을 몇 개나 더 보여 주었다. 모두 탁자인데 크기만 조금씩 달랐다. 나로선 그다지 관심 가는 전통이 아닌지라 탁자에서 나는 향에 더 관심이 갔다. 무슨 향인가 묻자 향나무라고 했다. 향나무는 살짝 분홍빛이 돌았는데 굉장히 좋은 향기가 났다. 그 향이 작업실 전체에 은은히 배어 있었다. 한동안 반장님 작품들을 구경하며 설명을 들었다. 서로 관심사가 다른 가운데 말은 두서없이 오갔지만 기분 좋은 향을 맡으며 나무 작업실에 머무는 시간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 사이 동생은 작 내빼고 없었다. 멀리서만 바라보던 그네를 혼자 실컷 타보며 감상하고 있을 터였다. 작업실 투어는 계속되었지만 이젠 그만 화제를 전환해야 했다. 그네를 보러 가자고, 나는 불쑥 말했다. 전화할 때 이미 그네를 사고 싶다고 말했기에 반장님도 우리 용무는 알고 있었다. 함께 작업실을 나왔다. 동생은 예상대로 마당 그네에 앉아 마음껏 흔들리고 있었다.


반장님 목공 작업실


"하우스에 있는 것들이 최근에 만든 거니까… 그럼 천천히 구경하세요."

반장님은 우리를 남겨두고 집으로 들어갔다. 왜 그런지 그네 매에 적극적이지가 않았다. 밭 하우스에 있는 그네를 두루 구경하고 다시 마당으로 돌아왔다. 당에 놓인 그네는 모두 세 개였다. 그중 동생의 '내 그네'가 있었다. 채색을 하고 있어 단연 돋보이기도 했지만, 역시 오래 정을 들인 만큼 가장 마음에 드는 그네였다. 반장님이 집에서 나왔다. 손에 나무 도마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은행나무로 만든 나무 도마라고 했다. 생각지 못한 도마 선물에 나는 살짝 흥분해버렸다. 곡선이 아름다운, 그야말로 내가 꼭 갖고 싶어 한 그런 도마였다. 그렇잖아도 봄바람에 어지러운 날, 마음이 한없이 들떠버렸다. 그네도 얼른 우리 마당에 갖다 놓고 싶어졌다.


반장님이 선물한 은행나무 도마


"오늘 갖다 주실 수 있나요."

동생의 '내 그네'를 가리켜 보이며 가격을 알려달라고 했다. 반장님은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가격이야 뭐… , 하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기색이었으나, 사실 우리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게 그것이었으니, 어째 일이 수월히 풀릴 것 같지 않았다. 격 협상엔 더 이상 응해 주지 않고, 에 가서 그네 놓을 자리를 보고 전화를 달라 했다. 결국 도마만 얻어 그냥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운반이야 트럭이 있으니 어려울 게 없겠는데 혹시 다른 까닭이 있나, 이래저래 추측해보다 마음만 복잡해졌다.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렸다 다시 전화를 했다. 동생은 한시라도 빨리 그네를 마당에 들이고 싶어 했고, 나는 그네보단 뭔가 아리송한 이 사태를 어서 끝내고 일상의 평온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반장님과 통화를 하고 난 뒤에도 평온을 찾진 못했다. 그네는 내일이나 모래 갖다 주겠다고 하는데, 끝내 가격은 말해 주질 않았다. 그 뒤 이틀 동안 그네는 오지 않았다. 나는 점점 여유를 잃었다. 네가 과연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으니 언제고 밖에서 들려 올 트럭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전화기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가격도 알 수 없어 봉투에 미리 예상 금액을 담아 놓았다. 인터넷 검색창에 '마당 이인용 그네 가격'을 검색해 나름 정한 액수는 오십만 원이었다. 지하수 시설 고장에 대비해 비상용으로 지니고 있던 현금이 마침 그만큼 있었다. 혹시 부족하다면 인터넷 뱅킹으로 해결할 생각이었다. 삼라만상을 뒤엎는 봄바람이 요란을 떨 때엔 영락없이 비탈길을 오르는 트럭 소리가 들려와 몇 번이나 창가로 달려가기도 했다. 삼일 째 아침 산책길엔 반장님네 마당을 기웃대며 살펴보았다. 리 그네는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있었다. 무슨 사정으로 배달을 못 오시나, 얹힌 듯 속이 불편해져 집에 와서 드러누웠다. 날은 흐려 을씨년스러운 것이 질척거리고 추웠다. 다시 전화를 하기 망설여졌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순 없잖아." 동생이 채근을 했다. 전화를 걸어보았다. "아, 그게요" 하고 말문을 연 반장님은 느긋했다. 그네 지붕에 방수칠을 한 번 더 입서 가져가려는데 날이 흐려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매하는 입장에서 상품을 좀 더 보완해서 갖다 주고 싶은 것이라고 이해가 되자 괜히 조바심을 낸 게 쓱해졌다. 느긋하면서도 꼼꼼한 반장님 성품이야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그네 가격은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언제 올 지도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제 처분만 바랄 뿐이었다.

반장님 푸른 트럭이 우리 비탈길을 올라온 건 삼일 뒤였다. 드디어 오는구나, 반갑게 뛰어나갔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트럭 짐칸은 텅 비어 있었다. 운전석에서 반장님이 내려섰다.

"어, 그네는 안 와요?"

나와 함께 마당에 나온 동생이 물었다.

"먼저 자리를 좀 보려고요."

반장님이 말하며 스틸 줄자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네 놓을 자리를 묻더니 바닥상태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줄자를 길게 늘여 사방 길이를 재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네요."

아이고, 그래서 그네는 언제쯤 갖고 오실 건가요. 조급증을 누르고 나는 말없이 기다렸다.

"그럼 이제 그네 오나요?"

참지 못하고 동생이 물었다.

"내일 갖다 드릴게요."

오메, 환장하겄네. 닷없는 웃음이 뱃속을 내달렸다. 나는 내색 않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차라리 이 사태가 재미있어지고 있었다.

"왜 내일인데요?"

동생이 또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의자에 오일스테인 한 겹 더 입힐까 싶어서요. 아무래도 앉는 부분이니까."

눈치를 보니 지붕 말고도 기둥과 의자까지 색을 더 입힌 모양이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보강을 하시려나.

"그런 건 우리가 해도 돼요. 제발 그냥 갖다 주세요. 더 못 기다리겠어요."

동생이 밀어붙였다.

"잇, 참 내. 알았어요, 하하."

언제나 태도가 깍듯한 반장님으로선 물게 허물없는 말투였다.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가격 협상을 했다. 돈 얘기만 나오면 비실비실 물러서는 반장님.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트럭에 올라 타 시동을 거는 것이 아닌가.

"아, 얼마냐고요. 말하기 전엔 못 가세요."

용감한 동생이 또 나섰다.

"그게, 그러니까… 그럼 삼십 주세요."

그러고는 다 트럭은 꽁무니를 뺐다.


그날 오후 그리하여 마침내 네가 도착했다. 그네는 산 아래 앵두나무와 배나무 앞에 자리를 잡았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나는 준비해 두었던 종이가방을 반장님께 드렸다. 믹스 커피를 좋아하는 반장님. 얼마 전 언니가 택배로 보내 준 알리카페가 마침 있어 그것과 함께 내가 구운 블루베리 머핀을 담은 종이가방이었다. 그네 값을 넣은 봉투도 물론 그 속에 찔러두었다. 금액은 반장님이 부른 것에 십만 원을 더했다. 삼십은 자재값도 안 될 것 같았고, 오십은 반장님이 허용치 않을 것 같았다.


반장님이 떠나고 우리는 그네에 앉아 그간의 노고를 마음껏 풀었다. 인체 곡선을 살려 제작한 의자는 종일이라도 앉아 있고 싶도록 편안했다.

"그네를 타면 왜 기분 좋은 줄 알아?"

동생이 말다.

"왜?"

"떠 있기 때문이야. 마치 오래전 편안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같잖아. 기억할 순 없지만 우리는 부유하는 존재였던 거야."

말을 하며 동생이 연신 발을 굴렸다. 바람이 온갖 생명을 흔들어 터뜨리는 봄날. 우리도 흔들흔들, 기분 좋게 흔들렸다.



반장님 마당에서 그네를 타보는 동생


드디어 우리 집에 도착한 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