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숲의 시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나무 Jul 30. 2024

호우 특보

    호우가 쏟아진 새벽 3시 돌연 집안 불빛이 사라졌다. 냉장고도 숨을 죽였고 어떤 불빛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딘가 누전이 생겨 차단기가 내려간 모양이었다. 그렇잖아도 심상치 않은 비바람 소리에 깨어 긴장하고 있이었다. 깜한 어둠과 마주하여  한껏 민감해졌다. 바람은 든 걸 휘감아 올리겠다는 듯 기괴한 음향을 내지르며 솟구쳤고, 비 까마득 허공에서 두박질 모든 표면을 두드려 댔다. 아무래도 둘은 한편이 아닌 모양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침대 옆 탁자를 더듬어 스마트폰을 켜는 것이었다. 굴에 빛이 닿았다. 유튜브, 다음, 티빙, 브런치, 카카오톡 같은 친숙한 앱들 눈앞에 있었다. 업 종료 후에도 불을 켜 놓은 한밤의 상점들 같았다. 실내를 밝힐 정도는 아니었지만 위안이 되었다. 두드 문을 열고 싶은 걸 참았다. 전기가 차단되면 지하수와 와이파이도 끊어진다. 바일이터를  수 있겠지만 충전이 반 정도 남은 상태라 아껴야 했다. 스마트 빛을 앞세우고 부엌 가 워머용 초 찾았다. 동전만 한 초에 불을 켰다. 깜깜한 우주에 동그마한 불빛이 생겼다. 빛이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흩어지던 것들이 모아, 뇌는 한정된 정보 전달에 안정을 찾았다. 부엌창 촛불을 들고 있는 여자가 비쳤다. 들과 달리 친숙한 모습이 아니었다. 살아갈수록 겉모습이 낯설어진다.  나를 생각에서만 만났구나. 밖 너머 시커먼 것들이 어른거렸다. 벼 나무들이 세찬 빗속에 몸을 휘젓는 광경.


  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진다. 야행성 비는 '하층제트기류'가 원인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하층제트기류는 뜨겁고 습한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는 현상으로, 더운 공기가 상승하는 낮엔 내륙에 진입하지 못하다가 기온이 낮아지는 밤에 폭우가 되어 쏟아지는 거라고 했다. 행정안전부와 산림청에서 호우와 폭염 경보에 강풍주의보까지 문자를 보내오고 있다. 군청에서 국지성 호우에 대비하라는 문자 보냈다. 한반도 기후 온대성 기후에서 아열대성 기후 변고 있다더니 체감이 되었다. 국지성 호우 현상이 진 것도 이 같은 기후 변화 때문이라 했다.  불안정한 우기를 제5의 계절이라 따로 지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생물들은 고달파졌다.


  날이 밝기 전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옆집 동생이 손전등을 들고 나타났다. 전기 차단 원인을 보자는 것이다. 이서 골살이를 10년 넘게 했다. 이젠 어디가 문제일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테라스 바닥 아래 설치해 놓은 지하수 지상모터 살펴보았다. 그곳에 물이 차 있었다. 누전 원인이 바로 그것인 모양이었다. 모터가 물에 잠기는 사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원인이 뭘까. 엎드려 물을 퍼 내며 생각했다. 알 수 없었다. 처마 끝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빗소리에 생각이 모아지지 않았다. 날이 밝을 무렵 비가 좀 약해졌다. 원인이 뭘까. 마당에 나가 테라스 앞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한 해 전 테라스 지붕공사를 할 때 처마 빗물받이를 제거한 때문인 듯했다. 빗물받이가 없으니 처마에서 떨어지는 비가 마당에 그대로 쏟아졌다. 집중 호우 때 마당이 미처 흡수 못한 빗물이 테라스 아래로 유입 모양이었다.  짐작이 맞았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마당 멀리 갈 수 있도록 임시조를 해 놓았더니 더 이상 모터에 물이 차오르지 않았다. 기는 그날 오후 차단기를 올리는 것으로 복되었다. 지하수는 이틀 뒤에나 쓸 수 있었다. 모터를 구입하고 새로 연결하느라 전문가 도움이 필요했다. 그동안 생활용수는 처마로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 사용했고 먹 물은 읍내 마트에서 생수를 사다 썼다. 천지에 물이 흐르는데 물을 아껴 썼다. 예전 비가 그립다. 두루두루 내리 비가.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밤 호랑지빠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