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리 Oct 20. 2019

내 프랑스 남자 친구의 여자 사람 친구 -②

여사친~여사친 불길한 노래


다니엘은 자기 친구를 초대한다면서 그이가 오늘 올지 안 올지도 모르겠고, 메뉴도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으니 네가 생각해 줬으면 좋다고 말한 주제에 내가 김밥이랑 국물 낼까?라고 물었더니 "으잉 프랑스에서는 국물을 그런 식으로 먹지 않아"라며 눈을 희번덕거렸다. 뽑아 달라는 뜻인가. 이 신인류는 내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아멜리가 안 오면 (해둔 음식은) 그냥 우리가 먹으면 되지, 아멜리가 안 올 수도 있다는 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거야?"라고 묻기까지. 나는 이 시점부터, 나중에 다니엘이 알게 되면 우리 신뢰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구글에 "프랑스" "시간 약속" "무례" "무례의 정의" 따위를 조합해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상춘은 어이없어 웃으며,
"예끼, 미친 사람......"
(현진건, 까막잡기, 1924)

얘가 그냥 미친놈인지 아니면 프랑스 사람들이 종종 이러는지 알아둘 필요가 절실했다.-다니엘이 초기에 내 분노에 꽤나 방어적으로 나온 탓에 대화에는 큰 진전이 없었다-. 그 후로는 나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 그러니까 아시아계 사람이면서 프랑스 배우자 혹은 파트너와 살고 있는 회사 동료를 찾는 것은 물론이고 나의 이 혼란과 갈 곳 없는 분노를 잠재우는 데 도움을 줄 사람들을 애타게 찾았다. 혹시 내가 순간의 불타는 감정에 모든 걸 내버리고 남은 평생 후회할 선택을 한 건 아니겠지?, 사람은 20년을 같이 살아도 모르는 건데 애초에 내 그릇으로 못 품을 사람을 품느라고 시간 낭비하는 건 아니겠지? 등의 생각들 때문에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절대 틀려서는 안 될 선택에 실패한 기분마저 들었고, 다니엘의 방어적인 반응은 내 불안을 부채질했다. 특히 내가 해외에 단신으로 나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있다는 상황의 특수성은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마저 이 문제를 의논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었다. 비단 이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할 때 가장 자주 했던 말이 있는데, "(문화 차이 때문에) 다니엘이 한국 온 다음에 미움받을까 봐 싸워도 1/10밖에 하소연을 못한다고!!"였다. 안 그래도 내 친구들이랑 다니엘은 언어 문제나 지리적 위치 때문에 자주 어울리지 못하는데, 나와 다니엘이 문화 차이 때문에 싸웠을 때 친구들한테 일일이 하소연을 하면-친구들 또한 문화 차이로 인해 그 문제를 이해 못할 것이고- 다니엘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나 우리가 싸웠을 때 했던 못된 말들 아니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내 소중한 사람들과 어울리기 껄끄러워진다니 그런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단신으로 해외에 나와 사는데 지금 내 상황을 이해하고 내가 하는 말을 적당히 걸러 들으면서 상대해줄 사람이 마법같이 생겨날까?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회사 사람들한테 할 말 못 할 말 다 해가면서 하소연을 하느니 차라리 접시 물에 코를 박고 말지. 그래서 일단 다니엘과 쌈박질을 해도 예전에 했던 것처럼 친구에게 팽 달려가 길길이 날뛸 수는 없었다. 다니엘과 대화로 풀긴 해도 남은 앙금은 내가 알아서 처리해야 했고, 다른 것보다 이 망할 '여사친 문제'가 완벽한 이해와 해결까지 1년 넘는 시간을 소요하면서 대단히 큰 기력을 소모했다.*특별히 다니엘이 대단한 잘못을 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 1년이라는 시간을 '왜 이걸 이해 못하지?', '왜 저렇게까지 화를 내지'라는 투의 감정싸움을 하면서 보냈다. 문화 차이고 뭐고 지금 내가 격렬하게 피가 거꾸로 솟는데 친구들한테 낱낱이 고해 가면서 속풀이를 하는 순간 내 남자 친구는 견공 자제 그 이하가 되고 마는 딜레마. 미칠 노릇이었다. 

 이제 와서 말해 봐야 아무 소용없지만, 가장 괴로웠던 건 다니엘이 '체리는 왜 저렇게 화를 낼까, 우리가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 뿌리에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보다는 '체리는 꽤나 질투가 많구나.'에 더 집중했다는 점이었다. 이 점은 채 견딜 수 없는 좌절감과 외로움을 유발했고, '이건 아니지, 내가 아무리 쟤를 사랑해도 그릇도 작은 내가 이딴 굴욕을 품고 코스모폴리탄 나부랭이가 되는 건 무리다. 어쩌면 이별이 답이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다. 특히 나의 질투는 변변히 선보인 적마저 없었기 때문에 극단적인 생각에 빠져들기는 더 쉬운 상태였다. 


내가 다니엘에게 지켜줄 것을 부탁한 것은 두 가지였다.
1. 여자 사람 친구네 집에서 단둘이 있을 때 자정 넘기지 말 것
2. 여자 사람 친구랑 단둘이 혹은 여자 사람 친구들이랑 너랑 같이 여행 가는 건 정말 싫다. 하지 말라.

그렇다. 우리 문화권에서는 굳이 명문화 할 필요도 없을 만큼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으로 취급받는 것뿐이었다.  

다니엘의 반응은 
1. 엄... 노력은 해볼게 (늦을 때는 2시쯤에 들어오긴 했지만 12시나 2시나 싶어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2. 어차피 그런 친구들 많지도 않고 갈 일 없겠지만 알겠어 안 갈게. 

였다. 1번이 완벽히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저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다니엘이 아멜리랑 정말 친한 것도 알고. 게다가 다니엘 일이 늦게 끝나는데 자정에 딱 맞춰서 집에 오려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도 할 수 있는 게 정말 한정되기 때문에 2시간 정도 시간이 차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당시 나는 나 나름대로 '내가 이 간장종지만 한 그릇으로 대인배 행세하느라 진짜 고생한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다니엘도 다니엘 나름대로 쉽지 않은 순간이 많았을 것이다. 다만 이 문화 차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엄청났다. 내 딴에는 저 정도 기준이면 한국에서는 '제발 우리 만날 때는 네발 말고 두발로 걸어줘.', 아니면 '제발 자기야, 나랑 같이 있을 때는 식기를 사용해서 밥을 먹어줘' 정도의 아주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했는데 프랑스에서는 '엄마 행세하는 여자 친구' 느낌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점도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다니엘도 제 딴에는 노력하느라고 "자기야, 프랑스에서는 이러면 친구들한테 여친이 엄마 노릇해도 내버려 두는 등신 취급받는단 말이야!"라는 말을 못 했던 거다. -그런데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가 굉장히 크고 지방마다 생활수준이나 가치관도 조금씩 차이가 난다. 소위 '질투가 많은' 사람도 있고 두 사람, 세 사람과 한 번에 사랑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무조건 이렇다는 의미로 쓰고 싶지는 않다.-


어느 날은 '역지사지' 요법으로 내가 어떤 기분인지 알려줘야겠다 싶어서 다니엘에게 
"그럼 자기는 내가 남자 사람 친구랑 단둘이 여행 다녀도 좋아?"라고 물어봤더니 괜찮다는 게 아닌가. 나는 머릿속에 김창완 아저씨의 '너의 의미'가 풀 코러스로 재생되는 것을 느꼈다. 

 사족 하나 - 당시에 나나 다니엘이나 워낙 상태가 안 좋아서 서로 상처 준 경험도, 느낀 문화의 차이도 아주 또렷하게 기록을 해두었는데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 지금은 그때만큼의 소재거리가 없다. 안 싸우니까 좋긴 한데 이 점은 약간 아쉽다.


사족 하나 더, 이전 포스팅에 나는 아멜리가 하는 행동이 나랑 다르고 이해가 안 되어서 짜증이 난 적은 있지만 미워한 적은 없다고 했다. 내가 신경을 썼던 사람은 아멜리가 아니라 그녀의 친구인 플로린이었다. 내 남자 친구인 다니엘의 옛날 사진을 보면 플로린이 가끔씩 등장해서 그 애의 얼굴은 알고 있었는데, 파리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다니엘의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그녀를 만났다. 플로린은 아주 수줍은 느낌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수줍은 게 단순히 숫기가 없는 것과는 달라 보였다. 새콤달콤하고 불온한 수줍음의 향기가 났다. 그것 때문에 나는 처음부터 플로린이 하는 행동을 눈여겨보았다. 그날은 다니엘의 생일이었고, 플로린은 다니엘에게 향수를 줬다. 나는 이미 처음부터 플로린이 자꾸만 수줍어하는 것 때문에 심사가 틀어진 상태였고, 그런 탓에 그녀의 선물도 '무난하게 먹을 거나 줄 것이지 왜 새콤달콤하게 향수 나부랭이를 주고 난리지?'라고 꼬아서 생각했다. 여기까지는 10000% 나의 소인배적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진정 불안함이 나의 대뇌 피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천 가방을 자주 들고 다니는 다니엘이 그녀에게 "오, 가방 귀엽다"라고 하자 플로린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너 가져, 나는 언니가 이런 가게 해서 언제든지 받을 수 있어."라며 가방을 건네 주는 것이었다. 다니엘은 "아냐, 그럴 것 까지는 없어."라고 했는데 플로린은 거듭 언니의 가게를 언급하며 괜찮다고 했다. 나는 그날 안주도 없이-속상해서가 아니라 망할 프랑스의 안주 문화 때문에- 맥주를 너무 빨리 마셔서 그 이상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나중에 장을 보러 갈 때 장바구니로 쓰려고 플로린의 가방을 자세히 살펴보니 바느질 땀이 도저히 바느질로 먹고사는 사람의 것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들쭉날쭉했다. 바느질은 모두 홈질이었고, 땀 크기의 편차가 대단히 컸으며 손잡이 마감도 튼튼하지 않았다. 가방을 만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끈을 안으로 넣어서 박고 네 손잡이를 한번 더 박아주지 않으면 무거운 것들을 넣었을 때 손잡이가 떨어진다. 그런데 이 끈은 안으로 넣어 박은 것도 아니었고 추가 고정도 되어 있지 않았다. '이 요망한 것이.. 언니 얘기는 핑계였구만..! 내가 내 남자 옆에서 프러시안 블루 빛으로 눈을 뜨고 있는데..!'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나는 가방을 보며 '너는 이제부터 우리 집 대파 가방이다'라고 생각했다. 이 대목에서 여러분은 내가 얼마나 소시민적인 소인배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끈기가 모자라서 그 다짐을 곧 잊어버렸고, 뭐가 됐든 그날 들고나간 가방에 대파를 담아 집에 오곤 했다.-마트의 대파에 가끔 흙이 묻어있어서 가방 안에 떨어진다-아무튼 덜컥 수제품을 내준 플로린의 행동이 '프랑스적', 혹은 '유럽에서는 일반적' 인지 궁금했던 나는 다음날 점심시간에 팀 사람들한테 물어봤고, 사람들은 '신경 좀 쓰이겠는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별로 일반적이지는 않다는 거였다. 그런 관계로... 아멜리와 나는 그럭저럭 괜찮은 친구 관계가 되어가고 있지만 절대 플로린과는 친구 비슷한 어떤 것도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족구해라... 플로린.


작가의 이전글 내 프랑스 남자 친구의 여자 사람 친구 - 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