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리 Oct 20. 2019

내 프랑스 남자 친구의 여자 사람 친구 -③

몇 날 며칠 이어졌던 전투 씬

연인의 이성 친구에 대한 각자의 기준은 어찌 보면 탕수육에 관한 기호와도 닮은 것 같다. 탕수육 소스가 너무 신 식당은 별로라거나, 건더기가 적은 탕수육 소스가 좋다거나, 점성은 좀 묽은 게 좋다거나, 어쩔 때는 지나쳐 보일 만큼 섬세하고 언뜻 별것 아닌 걸로 치부하고 넘어가기 쉽지만 결국 그 식당을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를 미치는 게 그런 부분 아니던가. 


 대체 다니엘에게 내 남자 사람 친구들에 관한 기준이라는 게 있기는 한지 궁금했던 나와 다니엘은 참 많이도 싸웠다. 여러 차례 말한 것처럼 내가 프랑스에 발을 디딘 이후로 다니엘은 아멜리 집에서 묵지 않았지만 나는 혹시라도 질투 많아 보일까-이 염려는 그대로 적중했다, 내 생에 전례가 없을 만큼 많이 참았는데도 질투 많은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슬프고 울화통 터졌다. 그것 때문에 더욱, 이 사람이랑 오래 해나가기는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차마 꺼내지 못하고 오래 가지고 있었던 질문을, 떠나기 몇 개월 전에 겨우 입 밖으로 내어 뱉었다. "네가 더 이상 아멜리 집에서 묵지 않는 건 지금 내가 프랑스에 있기 때문이야? 아니면 우리가 사귀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이 당시 우리 관계에는 '질투 많아 보이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이 큰 고민으로 취급되지 않을 만큼 짙은 피로가 깔려 있었고, 우리 두 사람이 사귀기 전부터 방치해온 각자의 문제들이 거실의 레고 지뢰처럼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상태였다. 이 질문을 차마 하지 못했던 시절의 나는 정말 다양한 것들에 공포를 품고 있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우리가 사랑으로는 채 극복하기 힘들 만큼 거대한 문화나 인식의 차이를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는 거라면? 요즘 이렇게 자주 싸우는 게 우리가 만나서는 안 될 사람들이었다는 걸 의미하고 있는 거라면? 다니엘이 나한테 품었던 그 사랑이 이미 예전에 식어버리고 없는 거라면? 지금 내가 끌어안고 있는 게 다니엘의 껍데기뿐이라면? 이미 이 생각을 하는 단계에 왔다는 사실 자체도 많이 비참하고 소름 돋을 만큼 싫었지만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결정이 있다면 그걸 미룰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저 생각에 지배되어 있었고, 내게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을 지언정 프랑스에 있는 유일한, 나 자신의 보호자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먼저 다니엘에게 있어서 '아멜리 집에서 머문다'는 게 이 관계에서 어떤 의미인지 추상적이기 그지없는 '눈치' 말고 구체적인 단어로 확인해야 했다. 나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굉장히 지쳐 있었다.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하는 척하거나 신경 쓰이는 것을 적당히 무시하고 넘어갈 만한 여유가 없었다. 만약 다니엘이 아멜리 집에서 머물지 않는 게 1. 내가 프랑스에 있고 2. 내가 불쾌하다고 의사표시를 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라면 답은 벌써부터 나와 있었다. 나는 유럽 사람이 아니고, 유럽에서 교육받지도 않았다. 사랑 때문에 이해의 영역 밖에 있는 걸 꾸역꾸역 집어삼킬 수 있을 만한 그릇도 못 된다. 나는 '여사친' 문제로 여러 번 다투면서 다니엘이 이 문제에 한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간은 비참함을 느꼈지만 후련하기도 했다. 이 비참함만 감내하면 마주하기 싫었던 질문의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다니엘은 전에 끝낸 얘기를 내가 억지로 끌어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별로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문화 차이인지 성향 차이인지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다니엘은 이런 말을 자주 했다. 

"그건 지나간 일이야, 그 일이 모두 끝난 후에 나한테 이야기를 해도 난 도와줄 수 없어. 왜 매번 그 순간, 그 자리가 아니라 내가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 슬펐던 얘기를 꺼내는 거야?"라고.-주변의 아시아계와 프랑스인 커플 얘기를 들어봐도 왜 옛날 일로 그러냐는 반응 얘기가 있었던 걸 보면 문화 차이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물론 난 이 반응에 행복하지 않았다. 이건 그만큼 큰 문제니까, 우린 아직 답을 찾아내지 못했으니까, 당연히 다시 얘기를 꺼내겠지!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잖아! 아무튼 서운했던 일을 꺼내는 타이밍에 관한 의례적인 실랑이가 지나간 후 다니엘은 내가 프랑스에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관계 때문에, 내가 어떤 기준을 가진 사람인지 이제는 알기 때문에 그런 거라 대답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딴엔 억울한 면이 많았다. 나는 '한국식'으로 다니엘 친구랑 무슨 얘기를 하면 다니엘에게 짧게라도 얘기하고, 남자인 친구들이랑 거하게 놀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내가 알아서 거절하는 편이었는데 다니엘이 여자 사람 친구 문제에 관해 방어적으로 반응하고 이 문제가 장기화되기 시작하면서 나도 얼굴에 심술이 더덕더덕 붙은 사람이 되었다. '오냐, 내가 그동안 너무 편하게 해 준 모양이군, 신경 쓰여서 삐익↗삐익↗ 들쭉날쭉 오장육부가 꼬여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 후부터는 다니엘 친구인 마티유와 마티유네 여자 친구 생일선물-이 일본 옥션에 있었는데 내가 도와줄 수 있었기 때문에-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든 말든 다니엘에게 알리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혹시라도 다니엘이 신경 쓰일까 거절했을 제안들, 그렇게 자주 만나지는 않고 적당히 친한 남자 사람 친구의 모델을 서주거나 그런 류의 일들도 그냥 내 선에서 쳐내지 않고 간다고 말했었다. 다니엘 복장 터지라고 '오, 자기야. 당신이 신경 쓰인다면 가지 않을게.'라고 가식 떠는 것도 잊지 않았다.-이 표현 If you want, If you mind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싫어하는 표현인데 내 입으로 떠들려니 그것도 고역이었다.- 그 때의 내 심보를 말로 풀어내면 '네가 초장부터 선을 넘었다면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걸 니 대뇌 전두엽에 쑤셔 박는 게 좋지 않을까?'였다. 하지만 내가 이런 행동들을 한다고 별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일단 다니엘이 이런 문제들을 나와 비슷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고, 내가 딴에는 '선을 넘었다'라는 것도 나만 기억하는 거잖은가.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고, 의미 없다.' 싶었다. 의미 없는 것도 의미 없는 거지만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기분이라 끝 맛이 더 안 좋았다. 바보같이. 

 이 시기에는 '왜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누리는 행복을 나는 일일이 설명하고 타협하고 싸우고 의논해야 가질 수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꽤 자주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당연한 일을 하면서 '나쁜 사람', '질투 많은 사람'이 되는 현실에 지쳐갔다. 다니엘에게는-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많이 접고 들어가는 편이었지만 나는 이미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같은 문제로 싸움이 반복되는 상황이 정말 싫었고, 그에 따라 같은 문제에 대한 반응도 점점 거칠어져 갔다. 아마 다니엘도 같았을 거라 생각한다. 이야기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문제이긴 하지만. 이별이라는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내 프랑스 남자 친구의 여자 사람 친구 -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