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눈! 요, 요, 눈! 요거!!
오늘은 우리를 멈칫거리고 절망하게 만든 제스처와 언어생활 문제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내가 프랑스에 갔을 때 우린 서로한테 나쁜 모습은 아예 보이려 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다니엘의 습관 중 몇 가지가 뇌리에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그중 하나는 내가 뭘 물으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시선을 사선으로 돌리고 입으로 쁍!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나는 "I don't know(몰라)"라고 하면 될 걸 왜 매번 이렇게 재수 없게.... 대답을 하는 걸까..라고 생각했지만 이 나라에서는 "너 똑바로 대답 안 하니?"라고 혼나는 일이 별로 없는 모양이라고 짐작만 하였다. 이 짐작은 파리에서 취직한 회사 사장이 면접 도중에 내가 "Q&A 시간에 차기작 게임 얘기도 하냐"라고 묻자 완벽히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확신으로 굳어졌다. '오, 그래, 프랑스의 특징적인 제스처였구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최대한 다니엘한테 상처 줄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둘이 한창 곤두서 있을 때 내 질문에 대답 대신, 저렇게 어깨만 으쓱거리면서 입으로 공기 찌그러트리는 소리만 돌아오면 화가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염병헐!! 대답을 똑바로 해 인간아!!"라고 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러 나를 약 올리려고 한 행동도 아닌데 이처럼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건 못된 행동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이렇게 우리가 채 상상하지 못한 문화 차이는 꽤 많았다. 때로는 문화 차이와 다니엘의 성격이 반반쯤 섞인 도발도 있었는데, 일단 다니엘은 나보다 사과를 훨씬 덜 했다. 이럴 때마다 가장 힘든 것은 '뭐야, 그냥 얘가 못된 거야? 아니면 여기 사람들이 원래 이런 거야?', '나 지금 화내야 하는 거야 아니면 그냥 넘어가야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는데 프랑스는 내가 나고 자란 곳이 아닌 데다 무지하게 커서 지방 차이도 굉장히 큰 국가이다 보니 지금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감도 안 오는 게 너무 힘들었다. 물론 파리 생활하면서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은 어차피 매일 볼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다니엘과의 상황만큼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다니엘은 나라면 '미안해 어쩌고 저쩌고...' 할 상황에 꽤 높은 비율로 'I know(나도 알아)'라고만 대답했다. 예를 들면 내가
나: "야 다니엘아 내가 흙 떨어지고 리크(leek)-대파의 친구-는 억세니까 장난으로 나한테 리크 몽둥이질하지 말라 그랬지? 몇 번을 말했는데 자꾸 그러니?"
다니엘: "(네가 몇 번 말한 거) 나도 알아."
몇 번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까 짜증이 막 났다. 나는 연애 초기이기 때문에 성질대로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탓에 "제발 알면 아는 놈처럼 행동해라,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말고" 같은 뼈를 치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결국 어느 순간 참지 못하고
"네가 뭘 잘못했으면 그냥 좀 미안하다고 해! 그게 사람들이 멍청한 짓거리에 용서를 구하는 방법이니까!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다음부터는 하지 마!!"라고 했다.
처음엔 다니엘이 특별히 사과에 무척 인색하다고만 생각했는데-그것도 없지는 않은 것 같고-지내보니 프랑스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사과를 거의 안 했다. 은행엘 가도 내 일을 보다가 다른 직원이 부르러 오면 내 업무를 처리하던 중이었던 말던 일단 자리를 이탈한 후에는 함흥 차사고, 돌아와서도 미안하다는 소리 같은 건 안 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 한때 우리 프로젝트 매니저가 자신의 오해로 우리 팀원을 쥐 잡듯이 잡았는데 사실 우리 팀원이 맞았고 프로젝트 매니저가 오해했다는 게 그 자리에서 드러났다. 그 상황에도 그녀는 사과 같은 것을 하지 않고 그냥 '어, 그래.'라고만 하고 쌩하니 제 자리로 돌아갔다. 공기관에서도 마찬가지인 게, 내가 공무원 a와 업무를 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공무원 a는 누가 봐도 틀린 논리를 들이대며 내게 서류를 갖고 돌아가라고 말한다. 나는 옆에 있던 공무원 b를 소환해 나는 맞는 서류를 가져왔으며 이 사람도 그 사실을 안다고 말하고, 한참 검토하던 a는 결국 내가 맞다는 결론을 내리지만 사과 같은 건 일절 없다. 그이는 마치 나와 자신과 언쟁했던 사실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일을 진행할 것이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나 같은 문화 출신한텐 좀 감정적인 배려가 모자란 환경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프랑스가 그런 건 그런 거고 매일 보는 남자 친구가 사과해야 할 일에 사과하지 않는다는 건 참기가 힘들었다.-분명히 말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었다. 사람들은 잘한 일보다 못한 일을 더 오래 기억하지 않는가.-
이런 우리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언젠가 회사에서 프랑스인 배우자를 둔 사람들이랑 밥을 먹다가 "아니 잘못을 했으면 미안함을 표현하고 뭐가 나빴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건지 그런 걸 담아서 사과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라고 했더니 "우리 남편(부인)도 안 그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물론 그중에는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도 그렇게 반성문을 많이 써보지는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보여주기 위한 사과문 작성에 시달려서 그런가. 나도 어떤 의미로는 남의 사과에 인색한 어른이 되었다. 남의 사과에 인색하다기보다는 용서에 그렇게 후하지는 않은 어른.
나는 어릴 때 학교에서 애들이 싸우면 선생님이 "ㅁㅁ 너도 ㅇㅇ해서 나쁘지만 ㅂㅂ 너도 나빠!!"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 싫었다. 물론 선생님도 일자리가 소중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땐 그걸 몰랐던 것이다. 누가 봐도 ㅂㅂ 저놈이 나쁜 건데 왜 둘이 똑같은 사람 취급을 할까, 왜 이렇게 결론이 미적지근하다 못해 뜨끈한 맥주처럼 기분 오묘하게 만들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당연히 그때는 맥주 맛을 몰랐지만-. 여전히 학교라는 현장에서는 그런 결론이 문제 있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국제연애를 하다 보니, 특히 1년 정도 쿵딱쿵딱 신나게 싸우다 보니 잘잘못 가리는 것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서로 마음 다치지 않고 입장을 이해시키는 게 더 중요할 때도 있었다. 설령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것들이 눈을 가리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