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 있으면 괜찮다. 아마도.
사람이 둘이 되면 없던 게 많이 생겨난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뭐든. 당연히 문제도 많이 생긴다. 오늘은 국제 커플로 지내면서 나와 다니엘이 느끼는 사소한 불편들을 다뤄보려 한다. 그런데 순전히 내 입장에서만 쓴 것이라 다니엘 입장에서 느끼는 사소한 불편은 또 다를 것 같다. 다음에 한 번 물어봐야겠다. 언젠가 다니엘이 자기도 이 시리즈를 읽어보고 싶으니 영어로 번역해 달라고 했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어학 공부를 하고 있다 보니 잠잘 시간 5분도 절실해서-애초에 잠도 많고- 아직 번역할 용기는 못 내고 있다. 아래에서 다루겠지만 이것도 불편이라면 불편이다. 둘이 같이 읽을 수 있는 텍스트가 상당히 한정된다. 그게 우리 둘에 관한 편지나 문서라고 해도.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파리에 남자 친구 혼자 두고 안 불안하냐'라고 묻는데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 고막이 부을 기세로 따따 쏘아붙이면서 싸우고 나니 불안해할 기운도 별로 없고 그 불안의 원인(여사친, 인식 차이, 그 인식의 차이에 임하는 다니엘의 모습)은 다 해결이 되었으며 그 문제들에 이해가 가는 설명들이 붙은 상태라 지금은 괜찮다. 그런데 내가 왜 안 불안한지 설명하려면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싸웠는지부터 설명해야 해서 나는 대강 얼버무리는 전략을 취했고,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좀 둔하고 타고나기를 세상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줄 아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우리처럼 날카롭고 사나운데 안 그런 척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잘 지내기 위해서는 오랜 조율의 기간이 필요하다.
물론 다니엘을 믿는 마음이 더 크다. 그런데 나 자신을 위해 다니엘을 믿는 것도 없지 않다. '나 자신을 위해' 믿는 그런 마음은 한 20% 정도일까? 애초에 나나 다니엘이나 서로 모국어로 대화를 못 하고, 서로의(가장 친한 친구를 제외하고) 친구가 총 몇 명인지, 걔네 이름은 어떻게 발음하는지 일일이 알지 못하는데 마음먹고 속이려면 이렇게 좋은 조건이 또 있겠는가. 나나 다니엘이나 방금 쟤한테 온 문자가 스팸인지 친구한테 온 문자인지도 못 알아보는 수준인데 말이다. 그러니까 굳이 손익으로 계산하면 믿는 게 이득이다.
* 줄임말이나 신조어를 쓸 수가 없네~드립 쳐도 못 알아듣는다네~
나는 시답잖은 농담을 좋아한다. 그런데 다니엘과 대화할 때는 그런 농담을 많이 안 한다. 한국어로 문자 할 때는 '감사'를 'ㄳ'라고 하지만 다니엘한테 'thx'라고 한 적은 없다. 취향 문제이기도 하고, 내가 영어 채팅 약어를 잘 몰라서 괜히 약어 쓰다가 이상한 말인 줄도 모르고 쓸까 봐 미리 조심한다. 그래도 다니엘이 관심 있을 만한 한국 농담은 가끔 번역해 주는데(예: 월드컵 당시 한 선수의 불행한 사고에 관한 농담) 여러분도 알다시피 농담거리는 풀어쓰면 재미가 없다. 재미있을 때도 있는데 재미가 좀 반감된다. 그래도 나는 다니엘이 좋아할 만한 농담을 가능한 원문과 비슷한 느낌이 나도록 번역하기 위해 골몰하는 과정을 좋아한다. 제목에서도 사소한 불편이라고 했는데 사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 어차피 인간은 하던 농담을 못하게 되면 또 새로운 농담을 만들어낸다.
* 휴가가 안 맞는다네~ 국경일 감각을 공유 못한다네~
그렇다. 독립절이나 제헌절처럼 이름에서부터 느낌이 오는 날은 무슨 날인지 대충 알지만 일단 국경일부터 다르고 명절도 다르기 때문에 서로 쉰다니까 그런가 보다 하지 왜 쉬는지,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잘 모른다. 한글날에 '코리안 알파벳 데이'라서 쉰다고 했더니 다니엘이 귀엽다고 했다. 특히 다니엘은 크리스마스 즈음에 2주 정도 휴가를 받을 수 있는데 나야 휴가를 오래 써도 일주일이 고작이니 휴가 일수도 안 맞고 휴가 내는 타이밍도 잘 안 맞는다. 그래서 서로 기분이 안 좋거나 타이밍 안 맞을 때 휴가 문제로 대판 싸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니엘은 1년에 휴가 5주, 나는 일을 한다는 전제하에 1년에 2주 남짓이다 보니 기간 맞추기가 어렵다. 애초에 다니엘은 '휴가' 하면 '한 2주 쉬다 올까?' 이러는데 나는 푹 쉬어봤자 '5일 정도는 어떻게 땡겨볼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고방식이 너무 다르다.
* 쟤네 나라랑 우리나라에서 개봉하는 영화가 (외국영화도) 많이 다르다네~
언제 한 번은 간접적으로나마 데이트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주말에 극장에-다니엘은 프랑스에서, 나는 한국에서- 가서 똑같은 영화를 보자고 했다. 다니엘이나 나나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해서 사실 별 기대를 품고 한 제안은 아니었다. '아니면 말고' 하는 기분으로 던져 보았다. 물론 마블 영화나 대형 액션 영화처럼 어디에서나 개봉하는 영화는 한두 개 정도 겹치지만, 다니엘이 마블 영화를 싫어하다 보니 다른 영화로 골라 보려 했는데 심지어(한국에서 상영하는) 프랑스 영화를 골라도 프랑스 집 근처에서는 상영을 안 했다. 이건 아무래도 내가 은연중에 미국이랑 프랑스가 대충 비슷한 영화를 상영하고 있을 거라 기대해서 의외라고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주말에 보고 온 영화를 얘기해 봐도 프랑스 집 근처에서는 상영을 안 해서 같은 영화에 관해 얘기하려면 VOD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 책 추천도 아마존에서 찾아보고 해야 된다네~
다니엘이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에 빠졌다. 나는 하루키 아저씨의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대학에 다니는 동안 수업이 끝나면 하루키 아저씨의 에세이를 읽으러 도서관에 갔을 만큼 하루키 아저씨의 에세이를 좋아한다(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보니까 1/2 정도밖에 못 읽었다.) 그래서 신나게 추천을 했는데 아마존에서 찾아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양이 방대한데도 불구하고 두 권 정도밖에 번역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니엘이 한국어를 배워야 할 것 같다! 반대의 경우(다니엘-> 나에게 책 추천)는 좀 나을 줄 알았는데 다니엘이 추천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책도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지 않았다. 보부아르나 무라카미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라서 뭐든 찾아보면 우리 둘 중 하나의 모국어로 번역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 선물 줄 때 힘들다네~
다니엘에게 손으로 만든 선물을 주는 것은 즐겁다. 내가 주로 만드는 건 가방인데, 얼마 전에 다니엘에게 직접 만든 가방을 보냈었다. 그리고 가방은 3달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았고... 나는 결국 황금 같은 점심시간에 밥도 안 먹고 나가 우체국을 들러 행방 조사 청구를 해야 했으며(이후에 한 번 더 방문해서 보상을 신청해야 했다). 다니엘은 프랑스 우체국 불신증에 걸렸다-이번 사건의 경우 한국 우체국은 똑바로 했는데 프랑스에서 분실했으므로-. 단순히 소포가 분실되는 것도 큰일이지만 선물의 금액에 따라 관세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 역시 힘든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올해 분의 생일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내년 봄쯤에나(인편으로) 받아보게 생겼다. 한 번 더 소포가 분실되면 우리 둘 중 하나는 홧병이 날 것 같아서-나일 확률이 더 크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