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체크리스트

또 다른 자가 검열이 필요하다

by 체리

친구들을 만난 후에는 혹시라도 대화 중에 실수를 하진 않았는지 점검한다. 대화 중에도 마찬가지다. 보통은 혹시 꼰대 같은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오늘 한 농담이 혹시라도 친구의 개인사와 겹치는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 의도와는 다른 어투로 말을 하진 않았는지 정도인데, 다니엘을 만나면서는 셀프 검열 체크리스트의 항목에 몇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나고 자란 나라 한국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와는 또 다르다. 이건 다니엘에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나는 다니엘에게 대화할 때 눈알을 위로 굴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고-자기한텐 별 뜻 아니어도 나한텐 엄청 부정적인 의미로 보이므로-, 음력 설날은 Chinese new year(중국 설)가 아니라 Lunar new year(음력설)라고 불러달라고 했고-나는 여기에 불만이 좀 있다. 프랑스에서 김장 배추는 중국 배추라고 부르고, 음력설은 중국설이라고 부르다 보니 그게 프랑스 잘못은 아니지만 한국인 입장에선 듣기 싫다-, 그런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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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엘과 대화할 때 조심해야 할 것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다니엘은 별로 신경 안 쓴다고 말했지만, 혹시라도 내 불평이 프랑스 자체에 대한 불만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불평할 수는 있어도 다니엘 앞에서는 말하기 조심스러운 것들이 가끔 있고, 인종에 관한 문제도 조심이야 하고 있지만 두 번이나 실수했다.. 그나마 남들 앞에서 실수한 것이 아니고 둘만 있을 때 벌어진 일이라 다행이었다. 정치색이야 둘이 비슷한 편이라 크게 조심할 부분은 없었다. 애초에 정치는 매번 한쪽이 다른 쪽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상태라 상태라 잘못된 인상을 줄 여지가 거의 없다. 문화적으로는 이 정도일까. 아, 그리고 프랑스에 관한 불평불만은 특히, 내가 프랑스어를 문제없이 구사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고 역사나 정치적 변화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전보다 더 조심한다. 알고 보면 화낼 일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는 떨어져 지내는 동안 공부를 좀 했지만 '다니엘을 프랑스어로 놀리고 싶다'라는 마음보다도 '나한테,,, 짜증 나게 한,, 쉨, 기덜,, 프랑스어로,, 욕해준다'라는 마음이 더 큰 동기부여가 된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서 나를 짜증 나게 했던 이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체급 차-체중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전체적 근골격을 의미한다-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어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까르푸에서 자기가 사려던 물건을 내게 주며 선반에 갖다 놓으라 했던 사람에게 반말조로 '네가 해'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 신난다!

내가 인종에 관해 한 실수는 다음과 같다.. 다니엘은 갓 퇴근한 참이었고, 나는 장 보러 갔다 오는 길에 나를 위협했던 흑인 아이들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려다가 영어의 'African American(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표현이 프랑스에서도 쓸 수 있는 표현일 거라는 생각에 'African French'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니엘은 황급히 나를 붙잡으며 "프랑스에서는 그런 표현 쓰면 안 돼"라고 했다. 다니엘이 그날 "그냥 Black이라는 표현을 쓰면 돼"라고 했기 때문에 'African French'라는 말이 왜 그렇게 나쁜지 설명은 듣지 못했지만 그땐 그냥 안되니까 안된다고 하려니 싶어 물어보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아프리카계~'라는 표현보다는 'Black'이라는 표현이 더 선호되는 추세라고 하는데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단다. 그냥 프랑스에서 태어난 사람인데, 실제로 조상님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를 사람들한테 아프리카계라고 싸잡아 부르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모호하지만 내가 이해한 것은 이 정도다. 이외에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다니엘이 보는 축구 경기의 한 선수-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빈약한 축구 지식을 용서해 주세요-가 무척 작은 나무나 분재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기에 "작은 나무 친구가 득점했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다니엘은 잠시 고민하다 '흑인의-그 선수는 흑인 선수였다- 곱슬머리를 가리켜 뭔가에 빗대는 행위는 아주 잘못된 해석을 유발할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다'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다니엘이 말하지 않았으면 다른 사람도 있는 자리에서 아-주 잘못된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애초부터 사람의 생김새나 차림새를 뭔가에 빗대는 것 자체가 좋은 행동이 아니지만 평범히 무례한 것과 인종차별자 사이에는 매우 큰 간격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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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는 대화하다가 혹시 너무 웃겨서 다니엘을 팡팡 때릴 때 정도일까. 다니엘은 내가 같이 TV를 보다가 옆에 있는 다니엘을 팡팡 치거나-다른 친구나 가족한테는 안 하는데 이상하게 다니엘은 팡팡 하고 싶다- 다니엘이 문제 행동(자꾸 젖은 발로 자기 것도 아니고 내 실내화를 신음, 집안 접시 다 꺼내다가 고양이 밥 주기, 고무장갑에 물 넣어놓기)을 했을 때 엉덩이를 팡팡 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 자체는 한국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행동이라 문화 차이라고 보기는 힘든데 내 주관으로 보기에는 프랑스 쪽이 더 이 행동을 폭력적으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세상에서 참을 수 없는 것 중 두 가지가 젖은 실내화와 물 들어간 고무장갑이라 다니엘이 "이런 행동은 폭력적이야!"라고 말했을 때 이성적으로 들을 수 없었다. 어이, 다니엘. 세상에서 뭐가 폭력적인지 알아? 물 들어간 고무장갑과 젖은 실내화다 인간아! 아무튼... 그렇게 팡팡 타임은 우리 집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손으로 때리는 행동이 문제가 된 건 내 쪽이고, 장난을 칠 때 적당히를 모르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라 작은 팡팡을 허용하다가 큰 장난으로 발전하여 둘 중 하나가 다칠 가능성이 있어 웬만하면 뿌리를 뽑는 게 좋아 보였다.

서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부분이 있는 건 어느 관계에서나 마찬가지다. 나름대로 조심하며 지냈는데도 실수를 하거나 서로 기분이 상하는 일도 있다. 그래도 대부분의 경우 서로가 있어서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 정도면 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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