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를 찾아서
내가 숙취에 정신을 못 차릴 때마저도 식전주 시간은 찾아왔다. 나는 오렌지 주스를 마셨고, 그건 식전주 시간에나 저녁 시간에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고, 또 다니엘이 통역해 주지 않아서 누아무띠에를 떠날 때까지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중에 전해 듣기를 다니엘의 할머니께서는 내가 오렌지 주스를 마실 때 '오렌지 주스? 흥미로운 선택이구먼....'이나 '이 중에 식전주 안 마신 사람이 몇 있는데 말이여..' 같은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누아무띠에를 찾기 전 다니엘은 '할머니는 다양한 주제에 강한 의견을 가진 분이셔'라고 했는데 이런 의미였나! 할머니, 다음에는 술주머니를 조금 더 늘려서 올게요.
프랑스 이름들은 좀 어렵다. 내가 영어식 이름 표기를 먼저 접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루크는 뤽이고, 로빈은 호방이고, 쿠엔틴은 컹텅이고, 쿼런틴은 커헝텅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비슷한 발음들은 특히 더 헷갈린다. 컹텅과 커헝텅처럼, 이들은 빨리 말하다 보면 그냥 같은 이름처럼 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 프랑스어는 갈 길이 먼 탓에 더더욱. 그리고 컹텅과 커헝텅은 둘 다 드물지 않은 이름이라서 더더더욱. 쏟아지는 다니엘 사촌들의 이름을 들으며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험난할 우리의 앞날을 상상했다. 지은, 지현, 지애, 세은, 세희, 세연.... 내 친구들의 이름을 들으면서 갈 길 잃은 동공을 숨기지 않던 다니엘도 이런 기분이었나.
누아무띠에를 떠난 우리는 보르도로 향했다. 친구 커플들이 많이 추천한 여행지였지만 이렇게 다니엘과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도시는 생각보다 훨씬 귀여웠고 맛있어 보이는 레스토랑이 잔뜩 있었다. 파리보다 훨씬 자연의 비중이 많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나에게는 목표가 있었는데, 보르도에는 맛있고 저렴한 에스카르고가 잔뜩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떠나기 전에 시장을 찾아 따끈한 에스카르고를 먹어보는 것이 그것이었다.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에스카르고를 판으로 사 왔던 친구의 연인이 했던 말이니 틀림없으렷다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보르도를 떠나는 날 아침까지도 나는 에스카르고 파는 곳을 찾지 못했다. 어깨가 축 늘어진 채로 시장 문을 나서는 동안 다니엘은 '파리 집 앞에도 한 군데 있으니까 거길 가보자'라고 했고, 시장 앞 골목에 앉아있던 아저씨는 내게 프랑스어로 무어라 말을 걸었다. 다니엘이 피식 웃더니 '아저씨가 너한테 슬퍼하지 말고 까눌레-보르도 명물-를 먹으래'라며 전해줬다.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은 아니고 명물이라니 한 번은 먹어보았는데 슬프게도 까눌레 맛은 우리 예상과 달리 술맛이 너무 강했다. 다니엘은 내가 외국인 특유의 얼빵함으로 엉뚱한 장소에서 먹을 것을 사려할 때마다 질색을 하며 내 팔을 끌어당기는데, 까눌레도 그중 하나였다. 보르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기차역에 있는 까눌레 가판대에서 하나를 사 먹으려 했다. 다니엘은 '굳이 보르도에 와서 기차역 까눌레를 먹으려고? 장난하는 거야?'라고 했다. 어쩌면 다니엘은 전주를 찾아 굳이 한옥마을에서 만 원짜리 비빔밥을 먹는 외지인을 보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길거리에서 파는 에스카르고를 먹겠다는 나의 목표는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보르도를 떠난 뒤에는 다니엘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는 캠핑장을 찾았다. 이곳을 찾는 것도 벌써 두 번째였다. 다니엘 부모님이 계시는 르마스 다질을 떠난 다음부터는 렌터카로 이동을 했지만 그전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움직였기 때문에 험난한 길이었다. 프랑스가 대단히 크다는 사실은 지도로만 배워도 충분했는데 이번 여행 내내 멀미로 다시 한번 배웠다. 멀미에 쓰러지듯 잠든 다음날 식사를 마치고 치즈 시간을 즐겼다. 나는 치즈에 관한 매너를 처음부터 배워야 했던 만큼 아직 배울 것이 많은데, 할아버지 댁에서 치즈 표면을 손가락으로 만질 뻔한 내게 주의를 준 다니엘이 부모님 댁에서는 치즈 표면을 손으로 잡고 자르는 것이 아닌가. 보통 치즈를 한 덩이 사면 오래 두고 먹기 때문에 손이 닿지 않도록 식기만을 사용하여 만진다고 했다. 다니엘 너 양아치니?라고 묻고 싶은 것을 겨우 참은 나의 항의에 다니엘은 '이 치즈는 너무 딱딱해서 손으로 건드리지 않으면 자를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이상한데, 아닌 것 같은데..
다니엘이 부모님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캠핑장을 찾았을 때, 부모님은 산책을 하자며 다니엘을 데리고 근처 목장을 찾으셨다고 한다. 산책을 하는 동안 다니엘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는데, 목장에서 기르는 아기 고양이가 다니엘에게 다가온 것이다. 아기 고양이는 다니엘이 안아 올려도 가만히 있었고, 다니엘은 꽤 오랜 시간 그 고양이를 그리워했다. 그런 뭉클한 배경 설화를 바탕으로 우리는 다시 그 목장을 찾았는데, 고양이는 찾지 못하고 산책만 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어떤 농가를 발견했다. 아마도 관상용일 멋진 헤어스타일의 닭들이 울타리 안에 가득하기에 차를 세우고 구경하는 동안 인기척이 느껴져서 보니 주인 할머니가 문밖으로 나와 계셨다. 이 멋진 닭들 때문에 차를 세운 뜨내기손님들이 우리만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할머니는 조금 화가 난 듯 보였다. 다니엘의 인사에도 그녀는 미동 없이 팔짱을 낀 채 우리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녀는 미간의 주름이 약간 로버트 드니로를 닮았고, 그녀의 고양이는 충직한 오른팔의 오라를 풍기며 또한 우리 쪽을 노려보았다. 나는 다른 방문객들처럼 그녀의 평화를 깨트린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면서도 할머니와 고양이의 연계가 탄탄하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멋있는 닭들이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외의 온갖 존재들이 닭들을 탐해왔는지도 모르겠다. 농가도, 닭들도, 그리고 드니로를 닮은 할머니와 할머니를 닮은 고양이도 잘 만든 영화에 나올 것 같았다. 그나저나 다음부터는 아무리 멋진 닭을 보더라도 닭 주인을 불편하게 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캠핑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죄송했습니다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