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드문드문 글을 보태는 이유
우울증이 다 나은 지금도 종종 이런 것들을 궁금해한다. 한국에서 다시 살게 되면 보험을 가입하는 데에 우울증 때문에 지장이 생기는 일은 없을까? 라던지 한국에서 다시 취직을 하면 불이익 같은 건 없을지 등의 문제를. 하지만 곧 '안 해보면 모르지'라고 생각하고, 이 생각은 내게 또 다른 깨달음을 준다. 지금의 나는 문제를 맞닥트리면 문제의 해결법을 생각하는 존재이며, 지금의 나는 몇 년 후의 삶을 믿고 있다는 것. 내가 '남을 존재'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 기분 좋은 깨달음이었다. 태연하게 친구와 50살 이후의 삶을 이야기할 때면 약간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우울증이 한창 진행 중일 때는 40, 50살의 나를 생각하면 검은 화면밖에 생각나지 않았으니까. 숨이 턱 막히고 무서워서 눈물이 났다.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이런 삶을 20년, 30년이나 더 살라니. 그런 무서운 일, 나는 절대 못 한다고 생각했다. 고소공포증인 사람한테 '자, 지금부터 절벽 위의 유리 잔교를 걷는 거야'라고 말하면 그런 기분일까. 눈앞에 들이닥친 20년 후의 미래에 나는 당장이라도 자지러질듯한 아찔함을 느꼈다.
무섭던 것들이 무섭지 않다. 단지 그 사실을 자랑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내가 뜨문뜨문 올리는 우울증 이후의 삶 이야기에 누군가는 용기를 얻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지 않을 거라 믿었던 날을 사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당장 앞으로의 1분이라도, 10분이라도, 혹은 1시간이라도 더 나은 기분이 될 수 있다면 충분히 글을 쓰는 가치가 있다. 당신은 어느 순간에도 더 나은 시간을 살 가치가 있어서다.
나는 지금 체리라는 이름으로 네이버 포스트와 브런치 양쪽에 글을 쓰고 있다. 브런치에는 있는 글이 네이버에는 없기도 하고, 네이버에는 있는 글이 브런치에는 없기도 하다. 특히 '해를 기다리는 아이'는 네이버 쪽에 올리지 않았다. 부끄러워서. 처음에는 그랬다. 내 불행을 전시한다는 거부감이 있었다. 특히 먼저 시작한 네이버 포스트에 써둔 글이 너무 희망적이어 보여서 그런 상반되는 글들을 한 공간에 모은다는 게 싫었다. 먼저 올린 희망적인 글로 나를 알게 된 사람이 '해를 기다리는 아이'를 읽고 나면 결국 나를 마음이 아픈 사람으로만 기억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그런데 오전 약을 먹은 지 30분만 지나도 구토감에 변기를 찾는 생활 속에서도 쓰는 행위만큼은 오히려 말을 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웠으니까. 쓸 수밖에 없어서 브런치를 찾았다. 당시 주변 사람들은 브런치를 많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이곳에 털어놓는 내 이야기가 안전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시작한 공간이라 그런지 네이버 포스트가 탁 트인 갤러리라면 브런치의 내 공간은 산성 같다. 여기서라면 어려운 얘기를 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여름이 와서 2007년에 방영한 <커피 프린스 1호점>을 틀어놓고 설거지를 했다. 2008년에 돌아가신 배우 이언 씨의 사람 좋은 얼굴이 가끔씩 화면에 비친다. 덜 마른 그릇에 석회 자국이 생길까 봐 나는 마른 수건을 들어 그릇을 닦고, 지나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사는 게 무서웠던 나는 이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조금 더 무서워졌다. 내가 내 의지로 이 세상에 남아있을 것을 믿는 사람이 되었고, 2020년이 반이나 지나간 지금까지 살아있다. 다 내가 그날 아침, 토요일 아침에 문을 여는 정신병원으로 도망친 덕분에 생길 수 있었던 일이다. 내 장례비만 남기고 가진 돈을 다 써야 한다면서 거하게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이쪽 세상에 붙어 있으려 가볍게나마 발버둥 친 내가 무척 고맙다. 끊어질 듯 얇아도 이어지기만 하면 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처럼. 그 똑 끊어질 듯 가는 발버둥을 부끄러워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무슨 시합도 아니고, 우울증에 지네 이기네 하는 표현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번 치료 기간에서 끝내 떠나야 했던 건 우울증이었고, 남은 건 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겨도 남는 사람은 나다. 그 사실을 믿는다.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그 친했던 친구들이 나만 빼고 어디론가 가버린 듯한 마음에 조금 쓸쓸하다. 특히 드라마가 보여준 게 짠내 나는 주인공의 삶이라면 더. '잘 살아야 해'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보내준다. '해를 기다리는 아이'는 결국 내 치료가 끝났을 때 마무리를 지은 셈이지만. 1년에 한 번, 하다못해 3년에 한 번이라도 여전히 남아있는 건 나라고 여러분께 보여드린다면 안심하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 조금 기특해하실지도 모른다. 남은 존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