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벌에 쏘여본 적조차 없다 보니 내가 곤충에 관해 겪은 가장 큰 곤경이라곤 모기 정도였다. 그리고 언제 내 이불 밑에서 죽었는지 모를 그리마의 시체로 인한 심리적 타격 정도.. 그래서인지 프랑스에 온 지 꽤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나는 벌레를 경계하지 않고 생활했다. 남부로 내려갈수록 모기가 늘어나는 게 느껴졌지만 피해를 보는 건 주로 다니엘이었다. 체온도 높고 땀도 나보다 많이 흘리다 보니 슬프지만 다니엘이 물리는 횟수가 월등히 많았다. 여행 초반에 아멜리가 올해 쌍살벌한테 쏘인 게 엄청 오래 갔다고, 올해는 벌들이 공격적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곤충으로 인한 곤경은 남의 일로 느껴졌다.
라마스트르를 떠난 후에는 님으로 갔다. 로마 사람들이 지었다는 다리도 보고, 님에 있는 로마 검투장도 구경했는데 님에서 먹은 첫 샐러드가 너무 싱그럽고 맛이 좋아 깜짝 놀랐다. 나는 흐느끼듯이 '우리가 파리에서 먹던 건 대체 뭐야..? 진짜 파리에서 먹던 게 가짜 음식이래도 믿을 것 같아'라고 했고, 다니엘은 '토마토가 너무 토마토야'라고 했다. 뭔 말인가 싶지만 토마토를 먹어보니 바로 이해가 갔다. 우리는 주로 다니엘의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서만 남쪽에 갔기 때문에 과일이 맛있는 줄은 알았지만 생 채소가 이렇게나 싱그럽고 향긋할 줄은 몰랐다. 라푼젤에 나오는 라푼젤의 어머니가 먹은 양배추가 이런 퀄리티였다면 모든 이야기의 앞뒤가 맞는다. 나이 든 후 살 곳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다니엘은 시골! 그리고 나는 도시!!를 외쳤었는데 님의 채소를 먹자마자 다니엘이 씩 웃으며 '평생 파리에서 말라붙은 채소에 맛없는 과일 먹으면서 살고 싶은 건 아니잖아?'라고 했다. 특히 허약 체질인 나는 의료의 중요성을 외치며 무조건 도시를 밀어붙였었는데, 이날만은 다니엘 말에 설득력이 실렸다. 매일 먹는 게 이런 음식이라면 프랑스의 미친 행정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 우리는 먹는 것을 사랑한다. 그래서 이번 여행 역시 상당 기간을 맛집 찾는 데에 할애했다. 그날 나는 아끼던 목걸이를 하고, 모처럼 멋을 내고 다니엘의 팔짱을 낀 채 공원을 걷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나는 고수를 참 싫어하는데도 전날 먹은 (당연히 다니엘이 시킨 메뉴였다) 고수 고등어 타르타르가 참 맛있었기 때문에 님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에 대한 기대치는 한없이 올라가 있었다. 공원을 빠져나가기 전에 허벅지가 따끔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숲이니까, 아디다스 모기 한테라도 물린 거겠거니 생각했다. 모기 나부랭이보다는 저녁밥이 더 중요했다. 저녁을 먹을 식당은 멋들어진 정원을 갖고 있었고, 옆 테이블에는 프러포즈 날을 맞은 듯한 커플이 한껏 분위기를 낸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아까 따끔했던 허벅지가 점점 붓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여유가 넘쳤다. 나는 산 근처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다. 삼선 모기한테 물렸을 때 보통 모기보다 크게 붓는 것은 상식이란 말이다. 뭔가 이상하다 느낀 다니엘이 레스토랑에 얼음을 부탁했을 때도 내 부은 다리보다는 얼음을 부탁한다고 선뜻 가져다주는 남부의 친절이 더 감탄스러웠다. 파리였다면 '여긴 병원이 아니라 레스토랑인데 왜 그런 걸 부탁합니까?'라는 식의 응대를 받았어도 놀랍지는 않다.
뭔가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은 건 다음날 새벽이었다. 나름대로 가려운 걸 잘 참는 편인데 다리를 벅벅 긁지 않고서는 못 배길 가려움이 느껴졌다. 십몇 분 정도를 벅벅벅벅 긁다가 다시 곯아떨어졌는데 아침햇살 사이로 보이는 허벅지의 반점이 예사롭지 않다. 계란 후라이 같은 반점이 생겨나 있었다. 이런 반점을 가져본 적이 있었나? 단연코 없다. 거미에라도 물린 것일까. 좀 이상한 반점이었지만 첫날에는 무시할 만했다. 하지만 둘째 날은 좀 더 강한 가려움이 찾아왔다. 사귄 이래 처음으로 새벽에 다니엘을 흔들어 깨웠다. 그것도 너무 가렵다는 이유로 말이다. 졸려서 벌게진 눈을 한 다니엘이 계란 후라이 반점을 만지작거렸다. 다음날 우리는 약국에 가서 코르티솔 크림을 받았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계란 후라이는 점점 영역을 확장했을 뿐 아니라 더 두꺼워지기까지 했다. 마침 우리를 라마스트르에 묵게 해 주신 아멜리의 아버지가 수의사셨기 때문에 혹시 거미가 아니냐고 반점의 사진을 보내 여쭤봤지만 거미는 아닌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버지 말씀대로 다음 며칠은 코르티솔 크림과 히스타민제의 조합으로 버텨봤는데 반점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고... 점점 입체감을 띄어 갔다. 얼굴에 난 손자국이 점점 부어 어느 새 사람의 손이 되었다는 도시괴담처럼... 다니엘은 이 즈음 프랑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곤충별 물린 자국' 사진을 찾았지만 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보여주지 않았단다. 결국 일주일이 좀 넘어 내가 가벼운 근육통을 앓기 시작했을 때 나와 다니엘은 아무래도 진드기로 인한 라임병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 우리는 루베롱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Livi라는 앱으로 화상진료를 받았는데, 의사 또한 진드기 같다면서 약국에서 진드기 제거용 도구와 항생제를 받으라며 처방전을 내주었다. 파리로 돌아가면 라임병 혈액검사를 받으라는 조언도. 나중에 듣기로는 항생제를 안 내주는 의사도 있다나, 병원을 몇 군데 가서야 겨우 항생제를 받은 케이스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 항생제는 3주나 먹어야 했다.
파리로 돌아와 찾은 병원에서 나는 이런 알쏭달쏭한 답변만 받았다.
"정황상 당신은 라임병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몇 달 후, 혹은 몇 년 후 열이 나거나 라임병 발작이 일어나면 응급실에서 꼭 몇 달, 혹은 몇 년 전에 진드기에 물린 적이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AI 진단도 이것보단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는 그저 간단한 혈액검사를 위해 진단서와 연구소(프랑스에서 엑스레이나 혈액검사를 하려면 일단 의사 사무실에서 진단을 받고 엑스레이나 혈액 검사 연구소에서 또 한 번 스케줄을 잡아야 한다) 소개를 요청했을 뿐인데 말이다. 결국 카드도 안 받아서 밖에 나가 현금을 인출해 와야 했다. 네이버 지식인만도 못한 진찰을 받고, 25유로를 현금으로 낸 후에는 한없는 찝찝함만 남았다. '살인 진드기'나 '쓰쓰가무시병' 같은 거라면 들어봤는데 말이다. 내가 생전 프랑스 진드기에 물려 라임병에 걸리는 날이 오다니. 이렇게 진드기는 깨알 상식 프랑스어 단어 '틱(Tique)'과 프랑스 의료 시스템에 대한 불만, 그리고 콜라색으로 변색된 반점을 남기고 사라졌다. 진드기, 그들은 무엇인가. 피크닉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공원을 가로질러 지나간 죄밖에 없는 나를 물다니, 심히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다니엘은 건강합니다! 어제 프랑스 신규 확진자 기록이 7번째로 깨져 1만 6천명이 나왔다는데 제가 한국 오는날 이미 만명을 달성하긴 했지만 진짜 이제 공포를 넘어 무념무상의 단계로 가고 있네요 ... 다니엘 혼자 있다가 아플까봐 맴찢... 그리고 저는 이미 예매해둔 파리행 비행기가 결항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답니다... 10월 25일까지는 무조건 항공편이 없고 제가 집에 돌아가는 11월 중순도 어찌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소식이 ... 저도 다니엘도 머리가 술렁..술렁술렁.. 과연 체리는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