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위로였던 시간
저번 화에서 남부의 밥이 너무 맛있어서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남부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 다니엘이 찍어준 사진을 보면 마치 반사판을 든 세 명의 어시스턴트가 다니엘을 도와 사진을 찍었던 것처럼 밝다. 다 화사한 남부의 햇살 덕분이다. 파리에서 찍었던 사진과는 때깔이 다르다. 직업으로 사진을 찍는 내 친구들이 캘리포니아 출신 작가들을 언급하며 농담 반으로 "캘리포니아는 햇살이 다 하는 데라서 사진사가 따로 뭐 할 것도 없어"라고 말했던 것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남부의 사진작가가 되어 햇살 덕을 좀 보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종잇장 같은 나의 귀를 팔랑팔랑 부쳐댔지만 이 꿈은 남부의 무자비한 진드기에 의해 좌절되었다. 그런데 이 꿈을 좌절시킨 것이 진드기 하나는 아니다. 나머지 하나는 더위다.
님 다음 목적지는 아를이었다. 그렇다! 고흐가 살았던 그 아를. 이곳에서 까마르그라는 습지(유네스코 생물권 보호 지역)가 멀지 않았기에 우리는 숙소를 아를에 잡고 다양한 새들을 구경하러 까마르그에 갈 계획을 했다. 원래는 말도 타려고 했는데 예약 시간을 착각하는 바람에 이는 무산되었다. 그래도 핑크색 플라밍고를 보러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설레었고, 당일 급히 데카슬롱(스포츠계의 다이소)에 가서 새를 구경하기 위한 쌍안경도 샀다. 이렇게 준비는 완벽했는데... 그날은 아침부터 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단순히 피곤했던 것인지 아니면 파리랑은 다른 쨍쨍한 햇살과 더운 날씨로 인한 피로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더운 날 계속 KF94를 끼고 있었던 영향도 조금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상태로 새를 보러 까마르그에 갔다. 소나 말 같은 동물은 그래도 시골에 가면 많이 볼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핑크 플라밍고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계속 까마르그 투어에 그늘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더울 거라는 경고를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더울 줄은 몰랐다. 허연 흙먼지가 날리는 길을 계속 달려 공원에 들어갔을 때 나는 숨을 헉헉대고 있었다. 시종 토할 것 같고 현기증이 나며 머리가 아팠다. 아, 이게 여름철 TV에서 계속 경고했던 열사병이구나. 내가 추위에는 많이 약해도 여름이 덥고 습한 나라에서 온 만큼 프랑스의 여름 따위는 나를 해칠 수 없다는 이상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랬던 나는 까마르그 습지에서 보잘것없이 무너졌다. 다행히 가이드 아저씨는 이런 증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고, 상태가 안 좋은 나를 무작정 차로 데려가기보다는 새를 볼 수 있게 지어진 오두막의 그늘에서 조금 쉬게 한 후 다시 본부로 돌아갔다. 다니엘은 내 모자를 푹 적셔서 내게 씌웠고 계속 온천수 미스트를 팔다리에 뿌렸다(체온을 내리기 위해).
돌아가는 길에 가이드 아저씨의 차와 우리 차 앞에는 썰매를 끌 수 있는 큰 말이 묶여 있는, 거대한 마차가 있었다. 아저씨는 '(과장이었지만) 사람이 죽어가요!! 좀 비켜주세요!!'라고 했고 나중에 다니엘이 말해줘서 알았는데 순한 말이 움직여 마차를 빼는 동안 마차 위의 사람들이 대체 어디 사는 누가 죽어가는지 궁금해서 우리 차 안을 유심히 봤단다. 이때 좀 창피하고 마차 위 사람들에게 미안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래도 조금은 살 만했던 모양이다. 호텔로 돌아가서 상태가 조금 호전되었지만 그것을 믿고 다시 호텔 밖으로 산책하러 나갔다가 훨씬 악화되는 바람에 다시 돌아와야 했다. 나는 이때 내가 더운지 추운지 잘 모르겠고 오한이 든다고 솔직히 말했고 다니엘은 이 말 때문에 당장 사뮤(SAMU:119)를 불러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무척 헷갈렸다고 한다. 다음날 근육통까지 진하게 온 걸 보면 열사병이 맞았던 것 같다. 아무튼 다니엘은 계속 내게 물을 먹이고 상태를 보다가 호전이 된 것까지 확인하고 저녁을 해결하러 호텔 1층으로 내려갔고, 나는 10분마다 생존신고를 했다. 프랑스에서 지내는 동안 인류애를 말려버리는 여행 경험도 있었지만 이번 여행은 코로나 시국이라 모두가 힘든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내게 귀인이었던 가이드 아저씨가 그랬고, 호텔 사람들은 다니엘이 밥을 혼자 먹는 게 내가 뻗어서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나를 걱정하고 내일 체크아웃 시간일랑은 걱정 말고 내가 괜찮아지면 떠나라고 했다. 이게 왜 사무치게 고마운 일이냐면 일단 지금이 코로나 시기라서 호텔 입장에서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당연하고, 코로나 시기가 아니라도 파리에서는 이런 대응이 기대하기 힘든 일이어서다. 파리에도 좋은 사람들이 있는 건 확실하지만 아무래도 파리에서는 '아.. 아프시다고요... 코로나는 아니겠죠?'나 '시트에 토하시면 안 됩니다' 같은 말을 들을 가능성이 훨씬 더 커서 그렇다. 남부에서 만난 친구는 전에 파리를 방문했을 때 레스토랑에 있던 노부부가 다른 테이블 아이가 끙끙 앓다가 토하는 걸 보고 더럽다며 아이를 보고 꾸짖고 소리 지르는 걸 봤다고 했었는데, 이 말을 듣고 다니엘은 "난 전혀 놀라지 않았어"라고 했다. 그만큼 우리는 생활하는 동안 다른 이의 친절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보여준 친절이 너무 놀라웠다.
다행히 다음날은 혼자 거동할 수 있을 만큼 좋아져서 다니엘이 체크아웃을 하는 동안 호텔 앞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누군가 내 테이블에 부딪히길래 그냥 지나가겠거니 하고 앉아있었는데 그 사람이 내게 미안하다고 두 번이나 사과하며 지나가는 게 아닌가. 이것 또한 파리에서는 기대하기 정말 힘든 일이다. 내가 걷다가 멈췄다는 이유만으로 쇼핑몰이나 거리에서 뒷사람한테 프휴~~~ 하는 한숨을 듣는 파리인 걸(3년 동안 네 번 경험했다. 나는 자주 나가지 않는 사람이다). 파리라면 제가 와서 내 테이블에 부딪혔어도 되려 더 성을 내거나 쌩하니 지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사과라니!! 다니엘이 오길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했더니 다니엘도 놀랐다.
"여기 대체 뭐야? 왜 사람들이 다 착해??"
아마도 햇살이 아닐까? 남부 사람들의 쾌활한 성품을 만들어준 것도, 파리 사람들의 잿빛 성격의 원인이 된 것도. 사람에 다친 마음은 사람이 낫게 해주는 거라는 말을 자주들 한다. 프랑스에 와서 사는 동안 사람에 마음을 다치는 일이라면 종종 있었지만 그 긁힌 자국을 메워줄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다. 인류애를 충전하는 시간이었다. 이외에도 벼룩시장에서 구경하는 우리에게 '여기 사람이 아닌가 봐요?', 그리고 내게는 '여자분은 불어를 안 하네?'라고 말해서 시비를 거는 건가 싶었던 중년 부부가 너무나 친근하게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물어 와서 한껏 안심했던 기억까지. 이번 여행은 어찌 보면 지금까지 해온 모든 여행 중 가장 힘든 조건에서의 여행이었는데도 사람에 관한 좋은 기억을 가장 많이 가져갈 수 있었던 특별한 여행이었다. 나와는 달리 파리에서는 좋은 사람만 만나고, 남부에서는 안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든 여행자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중에 우리가 남부에서 나쁜 경험을 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그게 인생이니까. 그래도 2020년의 남부 여행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다시 프랑스에 기대할 수 있게 만들어준 그 사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