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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Jun 19. 2021

핑구는함께할 때완전해진다

피티쿱을아십니까

오래 사귀다 보면  사이에서만 통하는 별명이나 농담이 여럿 생기기 마련이다. 그중 하나로 우리는 서로를 핑구라고 부르는데 예전에 설거지를 하다가 패트와 매트 아니면 핑구에 나올 법한 몸개그를 선보인 적이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데서 넘어지거나 어이없이  쏟거나   오... 핑구..라고 하는데 나나 다니엘이나 그럴 때가  있기 때문에  핑구라는 별명을 기조로 하여 '피티쿱(Pingu Takes Care Of Other Pingu: 핑구는 다른 핑구를 돌봐준다)' '하나의 두뇌는 두 개의 핑구로 이루어진다' 등의 이상한 격언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핑구 붐이  오래가면서  에어팟을   핑구 각인을   있나 알아보기도 했는데 아쉽게도 핑구를 닮은 이모티콘이 없어서 실패했다. 오래된 캐릭터라서 그런지 케이스도 마음에 드는  없어서 아쉬웠던 기억이 남아있다. 우리가 심심하면 내뱉는 피티쿱이라는 말처럼 사귀는 기간 동안 우리는 크거나 작은 영향들을 많이 주고받았다. 다니엘은 조금   자게 되었고, 음주나 흡연 습관 같은 부분도 바뀌었다. 그리고 나 같은 경우 사람이  온순해졌고 화가 날 때 그냥 화를 내기보다는 대화를 시도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지금까지 사귀면서 다니엘이 내 버릇이나 몸을 가꾸는 방법에 대해 강하게 말한 적이 별로 없어서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올해 초 다니엘은 때가 왔다고 느낀 듯했다. 내 손톱 깎는 방법을 고칠 때가 말이다..


"너는 손톱을 깎는 게 아니라 신체를 훼손하고(mutilating) 있어."


 다니엘이 이렇게 말했을 때가 2월이던가, 강한 단어이긴 하지만 처음 말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래그래, 하고 말았다. 나는 손톱을 깎을 때 흰 부분을 아예 안 남기고 잘라 왔기 때문에 흰 부분이 조금 남아있으면 굉장히 찝찝했다. 물어뜯는 버릇은 없고 그저 짧게 자르는 걸 선호했다. '너 손톱 진짜 짧게 자른다', '안 아프니?', '이게 삼일 된 손톱이라고?(미세하게 흰 줄이 보일락 말락 하는 상태였음' 같은 말을 몇 번인가 들었지만 실제로 아프다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아무 문제없다고 느꼈다. 내 손톱이 남보다 못생긴 것을 애석하게 느끼는 마음은 있었지만 세상에 예쁜 것이 있으면 못생긴 것도 있는 것이 순리이기에 그저 타고나기를 그렇게 생긴 거라 받아들인 상태였다. 다니엘도 한번 정도 잔소리를 하면 몇 달은 다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다니엘도 내 손톱 자르는 버릇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계기는 아마 내가 발가락 각질을 너무 깊이 깎아서 피를 본 일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티눈이 정말 잘 생기는 체질이었던지라 발톱깎이로 티눈을 잘라내다가 피를 보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날도 좀 깊이 들어갔나 보네, 소독해야겠다 정도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니엘의 반응이 너무 선명하게 상상되었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 게 나을까도 잠깐 생각했지만 같이 살면서 반창고 붙은 발가락을 숨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지체 없이 자진 납세했다. 그날 집에 온 다니엘이 의외로 담담하길래 그냥 다쳤나 보다 하는 줄 알았더니 내 손발톱 사진을 찍는 거다.


"니 몸은 니가 결정하는 거라서 지금까지 참았는데 이 지경까지 왔으니까 더는 안 되겠어. 너 이제 2주 동안 손톱 깎지 마."


 이때도 나는 약간 억울했다. 주기적으로 피를 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각질을 좀 깎다가 난 사고였을 뿐이니 말이다. 그 후로 손톱은 흰 부분을 충분히 남겨놓고 깎는 것이 규칙이 되었고 몇 달이 지났지만 처음에  좀 답답했던 것을 빼면 나름대로 순조롭게 적응하는 중이다. 내 딴에는 손톱이 조금만 길어도 급히 움직이다가 (내) 몸을 할퀴거나 손톱이 히뜩 뒤집히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그런 극한의 짧은 손톱을 유지했던 것인데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번만은 통하지 않았다. 실제로 다니엘의 손톱 개정안 실행 이후 손톱과 발톱이 각각 한 번씩 뒤집어졌고 한 번인가 내 몸에 상처가 나긴 했지만 요점은 손톱을 길게 유지하는 게 아니라 흰 부분을 충분히 남긴 상태로, 적당히 짧게 유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요령을 깨친 후로는 다치는 일도 줄었다. 다니엘도 다니엘대로 내가 손톱을 못 깎는다고 딱히 큰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나자 내가 손톱의 흰 부분을 제거하려는 집착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라는 걸 믿을 수 있었다.


"이거 손톱 봐요, 10년 후에는 손톱 어디에 있어요?"


 손톱 개정안 시행 전, 다니엘이 많이 늘은 한국어로 말했다. 내가 계속 이따위로 손톱을 깎다 보면 20년, 30년 후에는 손톱 자체가 아예 사라질 거라는 것이다. 아무튼 다니엘의 끈기 있는 노력으로 나는 전보다 더 사람 같은(다니엘에 의하면) 손톱을 갖게 되었다. 나는 다니엘의 손 닦기 습관과 분리수거 습관을 바꾸었고. 내가 집을 나서기 전에 다니엘이 '열쇠는?'이라고 물어 겨우 집 열쇠를 들고 회사를 향할 때, 옛날에는 나만 했던 일이 하나둘씩 같이 하는 일이 되어갈 때, 다니엘이 손에 꾸덕한 핸드크림을 묻히고 내 발을 올리라는 뜻으로 자기 무릎을 가리킬 때(발마사지를 위해서). 나는 우리 두 핑구의 세상이 점점 더 서로에게 스며들고 있음을 확인한다.


* 6 14, 손톱 개정안이 시행된 지 한참 지난  시점에 손톱이 (전에 비해) 너무 길어서 몸에 상처가 나는 일은 다행히 없었지만 전에 비해 길어진 손톱과 발톱이 옷이나 소파나 신발 안쪽 등에 걸려 뒤집히는 사건이 2달 동안 5건 정도 발생했다. 다니엘은 이제 내가 손톱을 짧게 유지해온 이유를 완전히 이해했다. '아마 보통은 이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닐 거야..'라고 말하긴 했지만 다니엘은 다시 짧은 손톱으로 돌아가도 아무 말하지 않겠다 말했고 나는 나름대로 지금껏 길러온 정이 있으니 한번  손톱이 접힌다면 그때 자르기로 마음먹었다.


'그' 손톱
평생 이렇게 깎아와서 뭐가 이상한지 모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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