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를 모르던 올해의 더위
덥다.. 너무 덥다. 샤워를 하는 동안 이상하게 벽이 따뜻하다고 생각했는데 욕실 벽 전체가 햇살에 달궈진 것이었다. 배관까지 익어버린 건지 세면대에서는 미지근한 물이 나오고-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는데 또 샤워기에서는 좀 더 찬물이 나온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찬물로 샤워를 해도 보디로션은 옥탑방의 열기를 머금고 뜨끈뜨끈하게 익어 있다. 이러다가 화장품이 죄다 여러 층으로 분리되는 건 아닌가 두려울 정도다. 글을 쓰는 25일 목요일은 이번 주 중에서도 가장 높은 42도를 기록하고 있다. 평생 한국에서 살면서 더위에는 어느 정도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에어컨이 그리 많지 않은 파리에서 42도의 여름을 나는 것은 상상 이상의 고통이다. 나는 뜨거운 침대 위에 누워 그것보다 더 뜨거운 노트북을 무릎에 올리고 '응답하라 1988'에서 성보라가 언급했던 니콜라이 오스트로프스키의 소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를 생각하고 있다(읽어본 적은 없다).
사우나를 좋아한다. 뜨끈한 물에 몸을 지지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일출 때부터 자정이 다 되도록 파리 도심을 채운 34도의 열기에 시달리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지금으로서는 토요일에 온다는 비와 그로 인해 내려갈 기온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한국에 사는 동안에도 단열이 잘 되어 시원한 집과는 별로 인연이 없었다. 그 수라장을 해쳐 나오면서 '더위 부심'을 갖게 된 나이건만 에어컨이 없는 지하철과 에어컨이 없는 집, 음식점 등등으로 채워진 이 도시는 해도 너무 한다. 42도의 예보가 나왔을 때부터 일주일 분량의 식사를 대량 조리했고, 그 더위에 나가는 일이 없도록 물과 주스를 지고 날랐는데도, 만반의 준비는 그렇게 어이없이 무너졌다.
이틀 내내 얼린 물을 마시다가 가벼운 배탈이 났다. 낮 동안에는 쿨 타월을 적셔 목과 다리에 하나씩 덮고 있지만 쿨 타월에서 흘러내린 물은 옷으로 스며들고, 다음으로는 피부에 스며들어 종국에는 온몸의 피부를 쩍쩍 갈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계속 젖은 옷을 입고 있는 건(마르기야 빨리 마르지만) 배탈에도 좋지 않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오늘만큼은 꼭 노트북을 들고 스타벅스로 피신하겠다는 계획이 있었지만 나의 원대한 야망은 배탈 앞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머릿속에서 양현경의 가슴앓이와 설운도의 사랑의 트위스트가 번갈아 가며 재생된다. 이 더위는 야만 그 자체다.
첫 파리 생활 시절 한창 향수병의 극단을 달리던 내게 몇 안 되는 위안거리는 '그래도 아침마다 미세먼지 체크하면서 나가지 않아도 된다'였다. 그다음은 '그래도 한국보다 덜 덥고 한국보다 덜 춥다'였는데, 이상 기온으로 인해 사하라의 열기가 서유럽으로 올라오고, 눈이 별로 오지 않던 파리에 폭설이 내리는 이 시대에 이 한국인은 더 이상 무엇에서, 타지 생활의 위안거리를 찾으면 좋을지 잘 모르게 되었다. 올해 안에는 꼭 이사를 가고 말 것이다. 에어컨이 있는 집으로.
- 파리 대중교통에는 버스 / RER(도시 외곽에서 도시 안으로 들어오는 열차) / 지하철을 불문하고 에어컨이 별로 달려있지 않다. 새로 만들어진 노선이나 새로 도입된 차량이 아닌 이상 에어컨이 없는 차량보다 있는 차량의 수를 세는 것이 월등히 빠르다. 집도 마찬가지인데, 실외기 공간이 무조건 확보되어 있는 게 아니어서 거리를 걷다 보면 '저 집은 에어컨 사면 어떻게 달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 쿨 타월에 대해 불평을 좀 했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선풍기와 쿨 타월이 없었더라면 더 힘겨울 뻔했다. 쿨매트도 가져오고 싶었지만 4kg라서(+요즘처럼 24시간 온 집이 뜨거우면 쿨 매트가 식을 틈이 없기 때문에 무용지물이 된다) 포기했다.
-이주 토요일 오전 네시에는 기온이 23도로 떨어졌다. 호우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