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덜 무서운 도시
첫 프랑스 생활 시절부터 싸데뻥(ça dépend: 그때그때 달라요)이라는 말이 정말 싫었다. 이 나라의 행정은 종종 싸데뻥 하면 안될 것까지 싸데뻥 해버렸기 때문이다. 언어가 하나의 약속이듯이 행정과 공문서 취급 절차도 어떤 약속일진대!! 어디 공기관뿐이던가, 은행에서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일처리를 하는지라-예를 들면 왼쪽 창구에서는 세 번 강조해 가며 꼭!! 가져오라고 한 서류를 오른쪽 창구에서는 왜 가져왔느냐고 되묻는다거나 하는 따위의 일- 자꾸만 바뀌는 박자에 장단 맞춰 관절을 흔들다 보면 내가 이 먼 나라에서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자괴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
그들 눈으로 보는 나는 쭈뼛쭈뼛 은행에 들어와 영어로 말을 하는, 하루에 몇 명씩 마주하는 성가신 외국인 손님 중 하나였을 것이다. 프랑스에 와서 계좌까지 만드는 걸 보면 여기 적어도 몇 개월은 있을 거라는 뜻인데 인사 말고는 뭐든 영어로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이 약간 신경을 건드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는 안녕하세요(Bonjour)와 안녕히 계세요(Au revoir)를 옳게 발음하는 것만 해도 충분히 힘들었단 말이다. 개별 사무실에서 만나는 은행원들은 나름대로 친절했지만 은행 안내 데스크 사람들까지 그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현명했다. 내가 영어로 말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동안 그들 또한 나를 도와주려는 노력을 했지만 그 노력이 잘되지 않을 때면 그들은 눈알을 굴리거나 입으로 한숨소리를 크게 내거나, 입으로 공기방울 터트리는 소리를 내거나 온 얼굴의 근육을 끌어모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이야 이 나라에서 그런 일이 결례 축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당시에는 굴러가는 낙엽에도 생채기가 나는 유리 심장이었기 때문에 내 마음은 그들이 눈알을 굴릴 때마다 작아져 갔다.
그런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방인임을 상기시키는 다양한 순간 중에서도 길에서 마주하는 시비는 마음 한구석을 하얗게 얼려놓곤 했다. 길뿐인가, 장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누구의 진행 방향도 막지 않았고, 그들에게는 지나가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들은 굳이 내 앞에 다가와서 눈을 보며 Pardon(실례합니다)이라고 말했었다. 처음 한 번이야 얼떨떨해하며 비켜섰지만 두 번이 세 번이 되면서 프랑스어의 필요성이 점점 더 와 닿았다. 요즘 이런 일을 겪는다고 해도 '여기 넘치는 게 공간인데 왜 나한테 난리세요'같은 말은 어려워서 못하지만 간단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된 지금 눈에 보이는 건 프랑스의 더 많은 얼굴이다.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사람들과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은 다르다는 걸 안다. 어느 곳에나 선량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공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정론은 향수병의 장막을 뚫고 들어오지 못한다. 어쩌면 오늘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언어가 아니라 나의 마음가짐이었다'라는 정신론적 결론을 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1년을 더 지내면 알게 될까? 생활이 달라진 게 언어 때문인지 마음가짐 때문인지. 아니, 내 경우에는 명백히 언어 때문이지만. 중요한 건 언어 덕분에 프랑스의 더 많은 면면이 보이고, 그것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이 생기고, 제일 좋아하는 티라미수가 생기고, 그것들을 프랑스어로 주문할 수 있게 되면서 내가 언어 때문에 주눅 드는 빈도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적어도 자신감 있는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