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교 대법관

이렇게까지 엄할 일입니까

by 체리
애교 장인과 애교 대법관을 겸직 중

여느 커플들이 그렇듯 우리도 서로에게 말할 때는 평소보다 높은 톤으로 대화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와 다니엘의 차이라면 나는 평소에도 친구나 가족들에게 비교적 애교에 가까운 톤으로 말한다는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 내가 어떤 톤으로 말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콧소리를 내거나 으으응~같은 요망한 소리를 내는 건 아니고 그저 목소리 톤을 높이거나 말꼬리를 끄는 정도의 수동적인 애교여서 한국적인 기준으로 정량적인 등급을 매긴다면 아마 중하위권 정도 될 거라 생각한다. 사무적인 대화에서는 툭툭 내려놓듯이 이야기하고, 친밀도가 단둘이 목욕탕 갈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위의 애교가 무의식중에 흘러나오는 편이라 살면서 '너 애교가 좀 있는 편이구나'라는 말도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내가 애교 대법관의 잔혹한 법봉에 후드려맞게 된 것은 다니엘과 함께 생활하게 된 후의 이야기다. (*법봉 어쩌고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물론 다니엘이 둘이 있을 때 부리는 애교 앞에서 판사 가운을 입고 법봉을 두드리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 젊은이... 이런 녀석이 애교 대법관을 해도 되는 건가 싶을 만큼 훌륭한 애교인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연인들 사이에 오가는 달콤한 애교의 세계를 즐기는 동안 애교 대법관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위기감이 싹튼 듯하다. 물론 사회생활 중에 성인이 애교를 부린다는 건 한국 기준에서도 많이 이상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더 많이 이상한 만큼 여자친구가 어디 가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일이 없도록 다니엘은 애교 대법관의 큰 책임을 어깨에 짊어지게 된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사회적 생물로서의 나는 툭툭 내려놓는 투척 화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나로서도 이 애교 재판소의 창설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



애교 대법관의 업무는 다음과 같다. 다니엘의 부모님이 계신 자리에서 내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하면 '어른 목소리!!'라고 경고하기. 나랑 내 부모님이 전화할 때 내가 너무 애교를 부리면 전화가 끊어진 후에 '어른 목소리!!'라고 단속하기(나는 늘 한국 가정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항변한다) 길거리 애교 수치가 일정 농도를 초과하면 '어른 목소리로 말하세요'라며 파리 길거리의 풍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관리하기. 그리고 불시에 여자친구의 '어른 목소리' 속 애교 농도 측정해 보기.



아마도 문화 차이가 반, 각자 자란 가정의 분위기가 반 정도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 엄마는 다니엘이 '엄마!'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애교 섞인 말투를 써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다니엘의 어머니는 일단 내가 '엄마'라고 부르는 상황부터-프랑스에서는 남의 어머니를 이름으로 부르니까-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하실 거고, 만약 내가 그 자리에서 애교를 부린다면 정색하고 '체리는 왜 어린아이처럼 말을 하니? 너는 어른이야. 어른처럼 말해야 해.'라고 말씀하실 것-다니엘피셜임-이라고 한다. 방금 찾아보니 애교의 사전적 정의는 '남에게 귀엽게 보이는 태도'다. 이 개념을 광의로 해석하면.... 프랑스 사람들이 어색함을 해소하고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해 콧등을 찡긋 거리며 평소보다 높은 톤으로 말하는 것, 그리고 윙크도 일종의 애교 아닌가...? 애초에 귀엽다는 개념은 해석의 여지가 상당하다. 결국 결과 노선이 다를 뿐이지 프랑스도 애교 보유국 아닙니까 대법관님? ... 인간적으로 부모님한테 애교 부리는 건 좀 봐주십쇼...라고 내 포스트에 소심하게 항변해 보는 오늘이다.



**물론 해석의 여지에 따라 유아퇴행으로 볼 수 있는 칭얼거림 및 언어구사 능력은 위에서 말한 성인들 사이의 분위기 전환 기술과 달리 취급해야 한다는 점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