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비키 복받으시오
요즘 프랑스어를 공부한다고 해서 나와 다니엘 사이의 프랑스어 대화 비중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프랑스어 대화 비중은 처음부터 총 대화 비중의 1퍼센트 미만을 차지했고... 지금도 변한 것은 없다. 프랑스어로 조금씩 영상이나 라디오 같은 매체를 접하기 시작하면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쉴 때만큼은 좀 편하게 쉬고 싶다. 요즘은 넷플릭스나 비키 같은 글로벌 기업의 VOD 서비스가 발달해서 20년, 30년 전의 국제 커플들에 비하면 상당히 윤택한 공동 여가생활의 향유가 가능해졌지만 우리 커플 중 한 명도 상대방 국가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1년 동안 '극장에서' 같이 볼 수 있는 영화가 한 손에 꼽을까 말까 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영화가 한 번씩 프랑스 극장에 걸린다는 건 정말 반가운 일이다.
프랑스로 오기 전까지 외국에 살아 본 경험이 없는 나는 장을 보거나 집에서 동거인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업무 시간에 농담 따먹기를 할 때마저도 모국어를 쓸 일이 없다는 상황의 피로를 겪어볼 기회가 없었다. 이는 마치 생활 속의 백색소음처럼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조용히 깔리는 피로였다. 하루 종일 매고 다니던 가방을 집에 와서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그 무게를 의식하듯이. 이 피로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인지 첫 프랑스 생활 때는 무조건! 내게 더 편한 언어로 제공되는 매체로만 여가 시간을 보냈다. 한국어 아니면 일본어로. 그러다 보니 우리 커플은 매일 일이 끝나면 서로의 옆에 앉아 각자 할 일을 하는 파워 개인주의형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모처럼 함께 살게 된 마당에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 영어 자막을 단 영화와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여가시간에 영어 자막이라니... 여가시간에 영어 자막이라니!
프랑스어를 잘 못하는 마당이니 먹고살려면 영어를-프랑스어와 동시에- 잘 갈고닦아야 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지만 여가시간이 공부 시간에 조금 더 가까워지면서 나는 울적함을 느꼈다. 그나마 같은 영상을 보고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는 재미 덕분에 이 울적함의 언덕을 수월히 넘어올 수 있었지만 진짜배기 언덕은 따로 있었다. 바로 독서. 거주지가 바뀌면서 E북 단말기라는 독서의 수단만 내 손에 남았다. 드라마, 영화, 유튜브, 독서 중에서도 내가 가장 흥선 대원군에 빙의하여 사수해낸 영역이 독서였다. 매번 배송비를 물어가면서 종이책을 들여올 수 없어 E북으로 읽어야 하는 것도 속 터지는데-이 경우 탄소발자국에 대한 죄책감은 덤이다- 독서 시간까지 아등바등 생존 학습의 장으로 만들기 싫었다. 하지만 내가 독서를 국문의 영역으로 사수할 수 있었다면 이 문단은 쓸 일이 없었을 거다. 우리가 독서 취향을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서로의 인생 도서를 나눠보려는 움직임도 시작된 것이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음은 즉 양이와 화친하는 것이고,
양이와 화친함은 곧 나라를 파는 것이다 - 흥선대원군
다니엘이 설레는 마음으로 내 앞에 보부아르의 책(영문) 몇 권을 내려놓았을 때 나는 #척화비 #이하응 해시태그가 머릿속에 점멸함을 느꼈다. 독서만은 '마냥 즐기는' 영역으로 남겨놓고 싶었던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이 책들에 느끼는 저항감은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도 낮 동안 시간을 쪼개서 집안 일과 프랑스어 공부, 그리고 주말에 올릴 포스트에 들어갈 그림과 글을 쓰는 일에 할애하고 있는데 즐거움보다는 공부의 영역에 더 가까운 책이랑 함께할 시간이 날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요즘 여유가 별로 없는 것도, 그리고 이렇게나마 영어 공부를 이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이 언덕을 넘으면 또 다른 즐거움의 공유가 가능해진다는 것도 자명하다. 아마도 나는 머지않은 주말에 한 권의 책을 손에 들 것 같다. 반은 투덜투덜거리면서, 또 나머지 반은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