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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Jan 23. 2022

사랑,존경,진심이 담긴 : 김택화 미술관 나이트 도슨트

제주에서 단 하나의 미술관만 가야한다면

제주에서 단 하나의 미술관만 가야한다면

김택화 미술관 나이트 도슨트


청각 자료보단 시각 자료를 선호하기 때문에 관련 도서를 보거나 팸플릿을 참고하여 전시 감상을 하는 게 편하다. 음성 도슨트도 해봤지만 도리어 감상에 방해되는 느낌이라 몇 번 해보고 안 하게 되더라. 하지만 김택화 미술관에서 김택화 화백의 아들이자 현대 미술 작가인 김도마 님의 도슨트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고 엄청나게 참여하고 싶어졌다. 그 이유는 첫째, 김택화 화백의 그림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둘째, 처음 본 작품이라면 나의 감상과 도슨트의 해설이 충돌될 수 있는데, 김택화 미술관은 이미 몇 번이고 방문하며 김택화 화백의 그림에 대한 나의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립되어 있기 때문에 이젠 다른 사람들과의 의견 교류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셋째, 만약 도슨트 진행자가 단순(?) 무슨무슨 미술 전문가였다면 그 매력이 줄었을 것이다. 김택화 화백과 누구보다 가까울 사람 더군다나 미술을 업으로 택한 예술가의 도슨트라기에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매일매일 진행되는 도슨트가 아니고, 마침 제주에 머물던 기간이 끝났을 때부터 이 프로그램이 생겨서 너무 아쉬웠다. 이후 여러 번 제주를 방문했지만 날짜가 잘 맞지 않아 놓치다가 드디어 2022년 1월 방문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을 충족시키면 시킬수록 아름다워진다


프로그램 제목도 아예 나이트 도슨트로 19:30이나 19시에 시작되어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정도 진행된다. 아주 사적인 도슨트라는 별명이 붙는 이유는 도슨트 진행자가 김택화 화백의 아들이자 현대미술가 김도마 작가가 진행하기 때문이다. 또, 형식적인 도슨트 프로그램과 달리 김도마 작가의 미리 정해진 듯 정해지지 않은 아무 말(?!)로 진행된다. 또 참가자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처음에 프로그램 참여자의 짤막한 자기소개로 시작하여 ‘그림을 볼 때 무엇을 보느냐’의 질문으로 도슨트가 시작되었다. 동시대 현대 미술 작가와 미학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기회라니!? 시작부터 신나는 도슨트였다. 


김도마 작가는 모든 것은 그것의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을 충족시키면 시킬수록 아름다움은 따라온다는 목적론을 떠올리게 하시는 분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도슨트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져서 김도마 작가를 관통하는 중요한 축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현대 미술의 목적은 무엇이냐? 그 목적은 누가 정하냐? 작가님 작품의 목적은 무엇이냐? 작가님의 목적은 무엇이냐? 등등 이어지는 질문이 많아진다.


또, 김도마 작가는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참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그걸 노리는 작품 활동을 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지, 그런데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면 그 이유는 뭔지가 궁금해졌다. 김택화 미술관에서 처음 본 김도마 작가의 작품은 확실히 ‘일반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미술 시장과 자본주의 논리가 적용되는 예술계에 대한 얘기도 살짝씩 언급하셨다. 이게 아마도 어떤 세계에 속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가장 큰 요소일 것이다. 그걸로 먹고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있어 그만큼 중요한 문제가 있을까. 나 역시도 의료 어쩌고 얘기가 나오면 비의료인들에게 가장 먼저 알리고 싶은 것이 의료보험과 수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밖에선 알 수 없는 속사정이라는 게 돈 문제이고, 사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인데 대놓고 말하는 걸 천박하게 보는 건 가식이다. 미술 시장과 자본주의 논리가 적용되는 미술계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 졌다. 작품 활동을 하는 동시대 작가에게 듣는 살아있는 실제 이야기일 것이다. 


"개발을 하더라도 제주의 색채에 어울리는 개발이 되었으면 좋겠다"


2층 김택화 미술과 카페 및 화실에서 내어 주시는 차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1층 전시장으로 내려가서 가장 안쪽부터 본격적인 그림과 함께하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김택화 미술관을 자주 방문하는 게 좋았던 게 내 눈으로 본 아름다운 제주를 김택화 화백이 본 아름다운 제주와 비교하고 공감하는 느낌이 좋고, 또 내가 제주를 겪으면 겪을수록 이곳이 어디인지 내가 보고 온 것과 비교하며 제주를 좀 더 이해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화백의 눈과 2021년의 내 눈이 마주치고 대화하는 과정이 즐거운 김택화 미술관이다.



그런데 포구 사진들은 대체로 비슷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위치를 지정하여 구분하긴 힘들다. 그런데 도슨트에서 '1996년 작 이 그림은 김택화 미술관이 있는 곳에서 700미터 들어가면 나오는 곳 신흥리 포구이다' 이렇게 확인해주셔서 좋다. 김택화 미술관에 걸린 풍경화들은 그림만 있고 제목이 없기 때문인데, 사실 있다 해도 대체로 전부 <제주 풍광>이다. 


지금은 그림 오른쪽 부분의 바다는 모두 메워졌으며 집도 모두 사라지고 포구도 사라졌다고 한다. 김도마 작가는 메워진 땅을 멋진 문화 공간으로 만들 비전을 가지고 계셨다. 도슨트의 시작이 이 그림이라 혹시 미술관의 위치가 김택화 화백의 작업과 관련이 있는지 물었지만, 딱히 이 그림과 미술관 위치는 관련이 없었다. 


이렇듯 김택화 화백의 모든 그림에 대해 어디서 그린 건지 하나하나 다 설명해드릴 수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시간 관계상 그렇게 모든 그림을 얘기할 수는 없었고, 몇 가지의 그림만 선별하여 도슨트가 진행되었다. 김택화 화백을 메인으로 둔다기보다는 도슨트를 진행하는 김도마 작가의 시각을 중점적으로 반영된 그림 선별이어서 더 재미있다. 김도마 작가의 시선이 잔뜩 들어가서 김택화 화백과 얽힌 에피소드와 나아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택화 미술관의 이모저모 등이 그림과 연결하여 진행된다. 



초가집 그림은 제주민속촌이나 제주 돌문화공원에서 본 것과 같았고 당연히 보고 그린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릴 적 살던 집을 상상해서 그리신 거라고 한다. 김택화 화백은 30년 정도 제주를 그리셨는데, 1990년대로 갈수록 급속한 개발로 보고 그릴 게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그림들을 머릿속에서 꺼내서 그리셨다고 하니 정말 천재임에 틀림없다. 


제주의 개발이 필연적이라면 제주의 색채와 맞는 개발이 되었으면 한다는 생전의 김택화 화백의 말씀을 전해주셨다. 하지만 이를 막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눈으로 보면서 그림을 그리실 때는 옆으로 긴 프레임을 사용하였다면, 상상 속에서 꺼내 그린 제주 그림은 대체로 정사각형 프레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제주를 담기 위해선 파노라마 여야 한다고 옆으로 긴 사진을 고집한 김영갑 작가가 떠오르는 지점이다. 수평적인 제주 풍경에 삐쭉삐쭉 솟는 수직적인 건물들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 


김영갑 작가 작품 @김영갑 갤러리



김택화=풍경화가 가 아니라 김택화⊂풍경화가


김택화 화백은 풍경화를 그리기도 하였지만 데생의 신이자 교육자로서 많은 인물 그림과 정물 그림을 남겼다. 사람들은 어떤 예술가를 '이 화가는 이거' 이렇게 1:1로 맷칭 시키는 걸 좋아하고 추구하고 편안해한다. 그래서 김도마 작가도 김택화=제주 풍경화가 이렇게 사람들 뇌리에 박히는 게 김택화 미술관의 흥행이나 김택화 화백을 알리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저는 그렇게는 못하겠어요'라고 말씀하시는 게 미술가로서 김택화 화백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여실히 느껴지는 지점이다. 



인물화나 정물화나 데생, 추상화에 너무나 능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그냥 묻히는 게 아쉬울 것이다. 김택화 화백의 무한한 가능성과 천재성, 주제를 넘나들며 그림을 그렸던 욕구와 끝을 알 수 없는 탐구심 등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 것이다. 비단 이것은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서 가지는 존경심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김택화 미술관 기획 전시가 바뀌면 보러 갔는데, 그때 나는 김택화 화백의 또 다른 제주 풍경 그림을 보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인물화나 정물화가 있어서 아쉬웠던 느낌이 있었다. 나는 '김택화 화백의 그림'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니라 '김택화 화백의 제주 풍경화'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에 가졌던 아쉬움이 부끄럽게 느껴짐과 동시에 김도마 작가의 말씀으로 기획 전시의 기획 의도를 알 수 있어 이것만으로도 나이트 도슨트의 큰 수확이었다.




서예가 김창하, 서양화가 김택화, 현대 조각가 김도마 3대로 이어지는 예술 : 삼대전


2022년 2월 9일까지 진행되고 있는 기획전시 삼대전의 작품들도 나이트 도슨트의 대상이 된다. 아마도 기획전시가 바뀌면 나이트 도슨트 내용도 살짝은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김도마 작가의 '환자복' 모티프 작품들 


서예가 김창하, 서양화가 김택화, 현대 조각가 김도마 3대로 이어지는 예술혼을 한 데 모아 전시 중인 김택화 미술관 기획전 3대전을 보러 김택화 미술관을 찾았던 지난 11월 김도마 작가의 <hospital series>가 있었다. 


병원과의 거리두기를 시전 중이며, 매우 성공적이라고 할 만큼 병원 밀어내기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잊고 살 때가 많아질 때 즈음 한 번씩 훅훅 치고 들어올 때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김도마 작가의 작품들이었다. 이 작품들에서 가장 처음 느꼈던 것은 내가 병원을 끌어당기는지 병원이 나를 끌어당기는지 마음인지 영혼인지 집착인지 모를 정의 내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점. 그리고 두 번째는 병원이나 병원 밖이나 구분이 안 되는 우리 모두가 환자 아니냐 하는 메시지였다. 환자와 비환자가 구분되지 않는 세계가 현대 사회로 올수록 더 구분되지 않는다. 



나는 김도마 작가의 작품들에 대한 작가 자신의 이야기도 더 듣고 싶었지만, 나이트 도슨트에선 아무래도 김택화 화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김도마 작가는 (아주 짧게 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걱정되지만) 순수하신 분인 것 같았다. 한국 미술계의 어떤 라인을 타거나, 인기를 얻기 위한 미술을 나의 미술 인양한다거나 하는 등의 액세서리 없이 해야 하니까, 하고 싶으니까, 마음이 진심이고 충실하다면 된 거야 라는 순수한 열정을 가지신 듯했다. 그러한 순수함이 제주의 아름다움, 김택화 화백, 김택화 미술관, 자신의 작업 등을 잇는 원동력이자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랑이 듬뿍 담긴 아름다운 도슨트


제주나 해녀를 그린 작품들이 많은데, 여기서 애정이 담겨 있지 않은 작품들도 많이 보았다. 대가가 그렸다고 해도 제주나 해녀를 애정보다는 호기심이나 이국적인 신비로움 등으로 표현한 작품들은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김택화 미술관을 찾는 게 좋았던 이유는 제주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그림들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화백이 그림에 담은 제주에 대한 사랑에서 내가 가진 제주에 대한 사랑이 발견할 수 있다. 나이트 도슨트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를 느꼈다. 김도마 선생님한테도 김택화 화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제주에 대한 사랑이 느껴져서 공감되는 도슨트 시간이다. 


김택화 화백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매우 재미있고, 그림과 김택화 미술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나는 그보다도 김도마 작가의 앞으로의 미술관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제시하는 비전과 예술가로서 발전시키고 싶은 작업 등에 대한 아이디어를 듣는 게 훨씬 좋았다. 순수한 열정을 가지신 김도마 작가의 애정이 담긴 앞으로의 김택화 미술관이 더욱 기대된다. 



김택화 미술관 나이트 도슨트 예약은 마이리얼트립이라는 사이트에서 가능하다.

https://www.myrealtrip.com/offers/109978


김택화 미술관의 삼대전은 2022년 2월 9일까지 진행되고, 한라일보와 기획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니 꽃피는 제주를 다시 방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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