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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Jan 23. 2022

<기꺼이 가까이> 제주 현대미술관

2021년 신소장품전

제주 현대미술관을 여러 번 방문하면서 매번 느끼는 건 제주도립미술관보다 전시 기획력이 확연하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두 미술관의 자세한 내막은 전혀 모르지만 아마도 자금력의 차이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기대에 차서 가지만 매번 약하다는 느낌을 받는 제주 현대미술관이다. 2021년 신소장품전으로 진행되는 제주 현대미술관 <기꺼이 가까이> 기획전시에는 총 14점의 작품이 있다. 


비 오는 1월의 겨울 어둑해지기 전에 방문한 제주 현대미술관. 비가 와서 그런지 여태껏 방문했던 중에 가장 관람객이 많았다. 


제주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들


꺾인 나무 기둥이라든가 사람 손을 탄 것 같은 나무의 흔적들은 내가 실제로 보지 않았더라면 감정이입이 됐을 작품이련만 익숙한 풍경이고, 이거랑 똑같은 데를 찾으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찍은 사진에도 같은 느낌을 담은 사진을 굳이 고르려면 많이 있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장르 중 하나의 재료로써 사진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이러한 작품 즉, 어찌 보면 평범한 주제, 평범한 표현 방식, 평범한 대상, 평범한 아름다움을 담은 사진 작품은 단지 대형 카메라로 찍었다는 이유로 현대미술관에 걸릴 수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들게끔 한다. 구도를 포함한 사진의 미학에 대해 공부해본 적 없지만, 미술을 관람하는 일반 대중으로써 대상에 대한 애정도 감동도 메시지도 아름다움도 그다지 느낄 수 없는 작품이 있다. 어떤 것이 (좋은) 예술이냐라는 질문에 적어도 이러이러한 이유로 '나에겐' (좋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천지연도>는 실제 천지연폭포보다 축소되어있다. 훨씬 규모가 작은 폭포 같은 느낌을 준다. 지금은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네가 앞에 찍냐 내가 앞에 찍냐 신경전이 난무하는 공간이라 도착하자마자 벗어나고 싶어질 뿐인 공간이다. 하지만 천지연 폭포가 주변이 개발되어 있지 않고 자연 본연의 모습 그대로 있다면, 그리고 고요한 한밤중이라면 환상의 흰 사슴이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태초의 천지연을 떠올리게 해주는 작품이다. 



김시연, 박서은 <그리고 사라지듯이>는 지난번 전시에 있었던 작품이고, 한라산 풍경을 담은 수묵화 작품도 있으나 조금 밋밋한 느낌이 있어 아쉬웠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부지현 작가의 <Luminous>이다. 일단 빛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빛을 좋아하는 내가 좋아할 만하다. 작품의 재료는 고기잡이 배의 조명이다. 밤바다를 밝히며 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이에게 그리움이라든가 쓸쓸함이라든가 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바다의 별. 밤바다를 완성시키는 데는 바로 고기잡이 배의 이 불빛이 필요하다.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조명은 실제 그곳에 존재했을 때의 치열하고도 예민한 현장의 느낌과는 정반대이다. 잘 모르는 입장에서 고기잡이 배를 떠올리면 생존, 사투, 치열한 삶의 현장과 같은 이미지가 우선시 된다. 그곳을 밝혔을 조명이 이제는 고요하고 조용한 미술관에 들어와서 작품이 되어 빛을 발한다. 


제주 착륙 전 제주 북쪽 바다를 밝히고 있던 바다별


보통 빛을 다룬 작품이라고 하면 굉장히 현대적이고 도시적인데 이 작품은 조명의 기원 때문인지 서정적이고 어촌적(?)이며 원시적인 느낌을 줘서 더 좋았다. 현대적인 재료 속에 담긴 서정성이 가슴을 울리고, 그래서 빛이 더 따스하게 느껴진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이 작품은 직접 봐야 그 느낌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현대 문명을 비판하는 주제를 가진 작품들



정은혜 작가의 <너는 늙어봤느냐 IV>는 침대 머리맡 인형을 떠올리게 하는 사이즈를 갖고 있다. 오른손 손톱엔 새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고 왼손은 턱을 괴고 있다. 앉아 있는 자세는 마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쪼그려 앉아계실 때의 모습이다. 쭈그러들고 불어 터진 젖이 늘어져있다. 슬픈 눈과 주름살이 가득한 이마에 마치 사람인 듯 하지만 소이다. 기형적이며 장애를 만들어내는 공장식 축산업을 비판하고 있다. 당시 읽고 있던 ⌜짐을 끄는 짐승들⌟과 연관하여 감상한 작품이다.  



<홀로 쑈_나이트라이프>는 라스베이거스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뉴욕 타임스퀘어나 도쿄를 떠올리게 하는 네온사인의 반짝임들이 변화무쌍한 작품이다. 분명히 아름다우라고 만들어진 구조물 이건만 별로 예쁘지 않다는 점을 드러낸다. 조화롭지 않은 조명의 반짝임들, 색깔, 모양이 어지럽다. 다 서로가 내가 더 빛나고 내가 더 잘났다고 서로서로 뽐내다가 자멸한 느낌이다. 아름다워야 하지만 도리어 기괴한 현대사회의 고도의 집중화된 도시의 밤을 잘 꼬집은 작품이라 좋았다. 칠흑 같은 어둠이 어울리는 제주에 이상한 전구들로 불을 훤히 밝혀 놓아 제주의 밤을 방해하는 무슨무슨 파크가 떠오른다. 


<몬스터 댄싱#2> 은 해설이 없다면 무슨 내용인지 모를 작품이다. 고야의 <아들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새턴>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한 사람의 손만 알아보겠고 다른 부분은 신체 어디 부위를 표현하는 건지 알아볼 순 없다. 딱 손만 알아볼 수 있는 게 더 기괴함을 주는 듯했다. 이런 기괴함이 곧 노동자의 삶이라는 뜻을 담았다. 삶이 지옥이다, 생존이 지옥이라는 메시지이다. 이건 너무 괴로운 생각이지만 사실이고, 현실일 수밖에 없다. 매일매일 생존을 위해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온 몸을 비틀듯이 산다. 행복이나 즐거움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지만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가슴에 꽂힌다. 





인공지능이 침투한 현대 미술



<A synthetic song beyond the sea>는 2층의 작품을 보다 보면 소리가 계속 들려와서 이게 대체 무슨 작품일까 작품을 눈으로 보기도 전부터 소리 때문에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을 활용하였다. Neural network 가 흰 수염고래의 소리를 활용하여 음성을 만들었고, 음성의 주파수를 시각화한 재밌는 작품이다. 인간 외 생물들에 대한 이해라는 주제를 담고 있으며 현대 예술이 기술을 받아들인 작품으로 복합성을 갖추었다. 


전시는 2022년 2월 20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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