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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Mar 09. 2022

전남도립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고귀한 시간, 위대한 선물>

신생 전남도립미술관에겐 정말 '선물'이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국가에 헌납한 작품은 2만 3181점이다. 가장 많이 기장품을 받은 기관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2만여 점에 이르는 유물과 고미술품을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 1,488점, 광주시립미술관 30점, 대구미술관 21점, 전남도립미술관이 21점이다.


전남 광양시 광양읍에 위치한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전시가 열렸다. 2021년 4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은 9명의 작가의 21점을 전남도립미술관에 기증하였고, 2021년 9월 1일 개막되어 11월 7일까지 이어지는 전시 <이건희 컬렉션: 고귀한 시간, 위대한 선물>에는 추상화가 김환기, 유영국, 인상주의 화가 오지호, 임직순, 한국화 천경자, 그리고 김은호, 박대성, 유광렬 등 한국 근현대 미술을 장식한 거장 8명의 작품 19점이 전시되었다. 지역별 연고에 따라 분배된 작품으로 특히 남도 출신 작가 허백련, 오지호, 천경자, 김환기 작품의 소장은 전남도립미술관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를 가기 위해 남쪽으로 향하던 중 전남도립미술관에 들르기로 했다. 2시간의 발품이 더 드는 돌아가는 일정이었지만 어렵게 남쪽 지방을 간 김에 이곳을 즐기지 않고 바로 제주로 넘어가기에 아쉬움이 있다. 이중섭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어 세 번째 이건희 컬렉션 관람이다.


전남도립미술관은 2021년 3월 개관한 신생 미술관이다. 반짝반짝 새 삥티가 나는 건물이 새로 지어졌음을 잘 보여준다. 내부도 아주 깨끗하다. 이 새내기 미술관은 소장품 수가 전체 198점인데 그중 21점이 이번에 기증받은 것이니 돌아가신 삼성 회장의 지분이 10%를 차지한다. 전시 이름에 '선물'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만 하다.

 


3가지 전시가 지하 1층 전시실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AES+F. 길 잃은 혼종, 시대를 갈다>, <소전 손재형> 서예전이 그것이다. 서예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올까. 


전남도립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이건희 컬렉션을 주제로 기획된 전시인만큼 전시를 꿰뚫는 하나의 주제는 없고, 작품들의 병렬적 나열이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전시실의 시작 정면에는 김환기 화백의 트레이드인 전면점화로 넘어가기 이전의 추상 작품이 한 점 있다.


김환기 <무제> 1970


전라남도 고흥 출신인 천경자 화백의 그림을 처음 보았다. 그림은 못 봤어도 이름은 유명한 천경자 화백. 작가는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한국화가 임에도 독보적인 개성을 가졌던 천경자 화가의 그림은 화려하고 다양한 색채를 사용하며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만선> 작품에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가득 차 있고, 실제보다 훨씬 과장된 크기도 그려져 있다. 실제 이런 만선이라면 무서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지만, 그림은 동화 같다. 얹혀 있지 않고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조개와 물고기들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별인지 불가사리인지 구분되지 않는 별, 그리고 달이 보여 밝은 색채에도 밤을 느끼게 해 준다.


천경자 <만선> 1971


유영국 화백의 그림도 처음 보았고, 이번 전시에서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산을 모티브로  추상이다. 추상화면서 단순화한 구상화 같은 느낌이 있다. 1993년작 <무제> 특히  달이 물에 반사된 듯한 느낌이다. 분명히 직선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형태임에도 부드러움과 서정성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추상이다. 



제주를 주제로  그림이 있었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수묵화로 된 작품들이었다. 박대성 화백의 그림이 좋아 검색해보니 경주에 솔거 미술관에 작품이 많고 전시 중이라 찾아가 보겠다고 다짐한다. <서귀포> 풍경은 어디인지 특정 지을 수 없지만 특정 지울 수 있을 것 같든 서귀포 특유의 절벽과 주상절리가 있다. 까만 현무암과 갈색의 조면 안산암까지 표현된 듯하다. 그리고 뒤에 보이는 야자수가 낯설지 않다. 오른쪽 상단에 위치한 건물은 소라의 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장 원경에는 완만한 한라산까지 바다에서 제주를 바라본 완벽한 서귀포 풍경이다. 과감하면서도 단순화한 구성으로 내가 기억하고 있는 서귀포 파도가 현무암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박대성 <서귀포> 1988



박대성 <일출봉> 1988


성산일출봉 작품도 여태껏   중에 두 번째로 좋다. 수묵화 특유의 대충대충 먹으로 칠한 듯한 과감하고 두꺼운 터치가 인상적이다. 수마 해변에 비치는 성산 일출봉의 그림자 속에 들어가고 싶다오른쪽 래에 슥슥 그린 듯한 잡초부터 왼쪽 위에 비어있는 하얀 하늘까지. 바다 밑바닥까지 보일  같은 투명한 느낌의 바다색이다.



고종과 순종의 어진화사로 발탁되기도 했던 김은호 화가의 <산수도 10 곡병>은 금강산과 관동 8경을 진경산수 병풍이다. 까만 먹색보다 부드러운 노란색 황토색 계열을 많이 사용하였다. 찌르는 듯한 절벽과 바워의 느낌이 날카로울 수 있는데 이를 부드럽게 중화시켜주는 듯하다. 태양빛을 은은하게 받으며 반사하는 느낌도 주면서 해질녘 노을과 잘 어울리는 풍경들이 동해안을 떠올리게 한다. 계절은 늦여름에서 아주 이른 초가을 같다.

 


김은호 화가의 작품은 병풍 이외에도 3점이 더 있었다. 한국화라기엔 병풍처럼 살짝 일본 느낌이 묻어있는 느낌이거나 아니면 아예 일본화라서 찾아보니 1920년대 일본 유학 후 일본식 채색 기법을 익혔고, 이후 친일 행적을 보였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적은 전시 품목이 멋쩍었는지 따로 전시 도록을 제작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남도립박물관은 기증받은 21점 중 19점을 전시하며 전시 도록을 만들었다. 신생 미술관의 열정이 느껴진다. 나머지 2점의 그림도 보고 싶다. 


처음 들어보는 화가들이 많았지만, 이름만 알고 그림을 처음 보는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그림과 화가를 발견하게 되어 기쁘다. 근현대 한국 화가들을 더욱 공부해 보고 싶어「1945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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