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게 잔잔한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
2022년 1월 20일부터 5월 1일까지 전시되는 서귀포 기당미술관의 <나의 소소한 일상> 전은 항상 소소한, 그래서 더 좋은 기당미술관 '다운'전시이다. 이렇게 말하면 기당미술관에게 실례가 될까? 싶은 우려도 든다. 하지만 기당미술관은 일상적이고, 소박하여 개인 정원에 꾸며놓은 나만의 미술관 같다. 그래서 이번 기당미술관 소장품전으로 열리는 <나의 소소한 일상> 이 기당미술관에 어울린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매화가 피고, 유채가 피고, 하지만 눈 쌓인 한라산이 가는 겨울을 붙잡고 있는 2월 말의 서귀포. 화창한 봄기운이 완연한 주말 오전 기당미술관에 관람객은 우리뿐이다. 항상 조용하고 평화로운 기당미술관이다. 제주에 있으면서 야외에 널려있는 자연이라는 작품을 즐기느라 관람 시기를 놓쳐 못 본 전시들이 있었다. 이젠 제주를 떠나 있으니 날짜에 맞춰 기획 전시를 챙겨 봐야 하니 꽤나 많이 놓칠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또 제주에 문화생활할 것이 부족하다는 해녀학교 동기들 말도 맞다. 많이 바뀌어 봤자 일 년에 3번 정도인 전시 변경에 몇 안 되는 미술관과 갤러리이다. 문화생활을 좋아하면 제주 살기 어렵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울에선 매일매일 갤러리를 몇 개씩 돌아다녀도 새로운 전시를 모두 관람할 수 없을 정도이니.
지난 21년 8월 제주도립미술관에서 봤던 이만익 작가의 작품도 있어 반갑고, 한중옥 크레파스 미술관에서 봤던 한중옥 화가의 작품도 반갑고, 한림을 갈 때마다 찾아가는 정겨운 김한 미술관의 김한 화백도 볼 수 있어 반갑다. 서귀포 왈종 미술관의 이왈종 작가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제주에서 만났던 제주를 사랑한 작가들을 내가 좋아하는 기당미술관에서 마주하는 이 전시가 나의 '소소한 일상'이었던 제주살이를 다시금 느끼게 해 준다.
한라산이나 성산일출봉, 서귀포 풍경과 같이 제주의 자연을 담은 작품들이 빠질 수 없다. 그중에서도 1970년대에 그려진 손바닥 남짓한 자그마한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노을이 지고 서귀포의 귀여운 4개의 섬 중에 하나인 것으로 보이는 (아마도 섶섬일 것 같은) 원경이 있고, 서귀포 바다 절벽과 섬, 바다, 하늘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색을 반짝이고 있다. 나에게 서귀포 바다가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버렸다는 게 새삼 느껴진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이자 작품은 서세옥 <사람들> 일 것이다. 수묵으로 그린 동양화 또는 한국화의 느낌을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선 더 고민해보고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서세옥 작가의 작품은 수묵 중에서도 수묵추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작가의 알려진 이름을 좇아 작품을 보는 것보다 어떤 작품을 보고 내 마음에 확 들어왔을 때, 그렇게 알아가는 작가들이 좋다. 서세옥 화백이 2012년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보고 좋아하게 된 서도호 작가의 아버지라는 점을 알았을 때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함께합니다> <자리합니다> <좋아합니다>의 세 주제로 이루어진 전시는 단어조차 소박하다. 사랑한다는 깊이 있는 말이 아닌 좋아한다라는 톤 다운된 언어가 친근하다. '좋아합니다'라는 말을 기당미술관에게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