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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Mar 31. 2021

Anatomy in Grey Room

해부의 추억

 

 해부실은 회색으로 차가운 금속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지만, 그것은 오래된 건물의 지하 그리고 추운 겨울의 온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맡아본 적 없는 코를 자극하는 냄새를 상상했으나 포르말린은 코보다는 눈을 더 따갑게 했다. 우리는 버려도 되는 옷과 신발을 준비하도록 권유받았는데, 그 공지사항이 우리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해부실을 처음 들어갈 때 CSI에서 처럼 시체가 바로 눈 앞에 보이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카데바는 포르말린 용액이 가득 차있는 몇 겹의 봉지로 쌓여 있었고, 그 위에 회색의 덮개로 덮여 있어 준비되지 않은 마주침은 없었다. 우리는 덮개를 열고, 봉지를 뜯으며 6개월을 함께 할 카데바를 만날 마음의 준비를 천천히 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시체를 해부할 때는 무섭거나 이상한 기분이 들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어디선가 들어봤음 직한 의대 탈출기처럼 한 명쯤은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가거나 기절하여 쓰러지는 것을 기대하였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놀랍게도 생화학 쥐 실험에서는 있었다). 나는 두려움보다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며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벅차올랐다. 


 해부는 가장 쉬운 등부터 시작한다. 모두들 열의에 넘쳐 있을 시기라 누가 먼저 메스를 대냐에 대한 약간의 신경전이 있었다. 조금씩 양보하여 한 번씩 기회를 가지며 자르기 시작했다. 메스는 실제 수술실에서 사용하는 거였고, 날카롭고 쨍한 날은 전율을 느끼게 했다. 뒤이어 손을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는 교수님의 말씀은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는 수술실을 떠올리던 우리의 상상에 찬물을 끼얹었고, 실제로 다치는 아이들도 많이 나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등을 서로 열고 싶어 하던 열정은 조금씩 사그라든다. 우리는 살인적인 수업과 시험 스케줄을 소화해야만 했고, 해부는 4~5 시간을 계속 서서 지속적으로 손을 움직이고, 머리를 쓰며 일주일에 세네 번씩 소화해야 하는 일정으로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큰 일이었다. 카데바에 대한 감동과 감사의 마음들이 밤샘 공부와 시험을 치르고서도 이어지는 해부 현장까지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일상이 되어버린 해부이기에 졸음과 단조로운 작업들에 묻혀 기증자의 존엄한 의지를 기리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다잡아야만 했다. 


 해부할 때는 카데바가 아직은 '환자'였을 때 어떤 점을 고통받았는지를 찾아낼 수 있다. 피부에 있는 상처나 장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수술의 흔적들을 가리키며 시신의 병력을 배울 수 있다. 기억에 남았던 점은 우리 카데바는 분명 여성이었는데, 자궁과 난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 할머니가 자궁 절제술을 했구나'라고 우리끼리 결론을 내렸는데, 지나가시던 교수님께서 흘끗 보시며 '여기 있잖아'라고 작은 조직을 가리키셔서 우리의 추론이 얼마나 어이없었던 것인지를 깨달았던 에피소드가 있다. 


 해부실에서는 우리는 '인간' 이라기보다는 '육체'로 대상화하여 바라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근육, 신경, 혈관 그리고 장기였지, '인간' 은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 할머니'라고 부르는 카데바로부터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지만, 우리의 손과 매스가 할머니를 구성하고, 평생 지탱했던 수많은 부분들을 찢어놓았다. 심장을 꺼내서 가르고, 두개골을 열기 위해 전기톱 소리가 울려 퍼지고, 뇌를 예쁘게 꺼내는 방법에 대해 읽고 시행하여 열두 신경을 보존한 뇌를 꺼냈을 때 기쁨에 찬 환호성은 점점 더 일반인에서 의대생, 그리고 지식으로 무장한 오만한 의사로 가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등으로 시작해서 뇌로 끝나는 한 학기 여정의 해부가 마무리되면 위령제를 올린다. 수술복을 벗고, 깔끔하게 정장을 입고 기증하신 분들의 가족분들을 뵌다. 너무 많이 봐서 익숙해진 할머니의 얼굴과 닮은 가족들을 보면 좀 더 열심히 해부하고, 좀 더 열심히 공부할걸 하는 후회가 몰려온다. 해부는 나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할머니의 얼굴이다. 


 해부를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의학 계열 종사자들에게만 주어진 교육의 현장이자 권리이다. 간혹 의대생이 해부실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거나 카데바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이 기사로 나와 대중의 공분을 사기도 할 만큼 권리에 부수되는 책임이 주어진다. 



출처 : 청년의사, 카데바 SNS 인증샷 논란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50699




출처 : 다음 웹툰, 순정 히포크라테스 시즌2 22회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er/94212


 예전처럼 의사들이 해부를 하기 위해 한 밤중에 공동묘지를 돌아다니며 손에 흙을 묻히며 시체를 파내지 않아도 된다. 해부를 위해 기증된 시신은 생전에 사후 기증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해부를 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큰 훼손인지 깨닫게 된다. 아마 이 모습을 보았다면 기증하지 말 것을 이라고 후회하실 수도 있다. 그분들의 뜻은 숭고하다. 그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하는 위대한 기증을 하신 것이다. 해부 수업이 반쯤 진행된 후에 "너는 해부를 위한 시신 기증을 하겠느냐?"를 주제로 리포트를 쓰게 해오면 좀 더 기증자에 대한 존경심과 의사로서의 윤리 의식을 함양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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