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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Sep 02. 2021

글쓰기엔 용기가 필요하다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일까?

어릴 적부터 쓰는 게 좋았다. 일기를 몇 장이고 쓰는 게 좋았고, 그렇게 한 권이 완성되고, 또 한 권이 완성되어 나만의 역사가 쌓이는 게 좋았다. 독후감 대회가 열리는 게 좋았고, 그림 그리기 대회는 쥐약이었으나 산문 쓰기는 너무나 신나는 일이었다. 나이가 들며 완벽주의 성향을 드러내며 '완벽하지 못한' 기록이 거슬렸고, 글쓰기에서 나를 밀어냈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 치고는 결과물이 별로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의전원에서의 4년은 나의 완벽주의를 강화시키기도, 약화시키기도 했다. 보통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화룡점정이 끝난 상태의 완벽한 완성품을 꿈꾼다. 1학년 1학기 해부학 시험을 거듭하며 세부적인 사항에 치중하는 것보다 뼈대를 먼저 세우는 게 중요함을 6개월의 시간을 걸쳐 알게 되었다. 이후로는 처음부터 완벽하려고 하지 않았다. 시작은 미약하다. 하지만 이 미약함이 반복될수록 점점 모양을 갖춰가고, 디테일이 살아나며 아름다운 조각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하면 '완벽'에 가까울 수 있는지를 배웠다. 


글도 마찬가지다. 불완전한 글이라도 일단은 쓰고, 나중에 고치고, 수정하며 퇴고를 거듭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래야만 글은 점점 완벽에 가까워진다. 1/x 함수처럼 절대 완벽이라는 점근선에 닿을 순 없겠지만 말이다. 거칠게 쓰인 나의 초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양도 빈약하고, 내용도 얕으며, 교훈이나 감동도 없다. 또, 문체는 반복되며 말투는 지루하고 계속 비슷한 표현이 등장하여 살아 있는 글이 아니다. 어휘력도 부족하고, 표현의 다양성도 떨어진다. 하지만 다음날 다시 보고, 다음 주에 다시 보고, 다음 달에도 다시 보며 조금씩 수정하며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공자와 맹자는 여러 제후국들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 줄 군주를 찾았지만 결국은 실패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동의하는 사람들을 찾았고, 그들과 대화하며 감동시켰다. 이후 제자들이 스승의 주요 말씀을 정리하여 글로 남기었고,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남겨져 동양인들의 뼛속 깊은 사상을 지배하는 중국 철학이 되었다. 공자, 맹자가 자기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다고 좌절하고 그냥 주저앉아서 세상을 한탄하며 술만 마시고 간경화로 죽었을 수도 있다. 많은 사상가가 그랬을 것이고, 훌륭한 사상들이 묻혔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작은 생각들이지만 모이면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듯이 기록하고 정리하여 보존하는 일은 중요하겠다. 


이런저런 글들을 쓰다 보면 계속 이런 주제도 써보고 싶다, 저런 주제는 어떨까? 이 얘기는 저렇게 쓰면 되겠다 하며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나 보다. 그런데 하지 못했나 보다. 왜 말하지 못했을까, 왜 담아만 두었을까. 집어넣기만 하고, 꺼내지 않았던 것들이 안에서 부글거리며 언제든 튀어나오길 기대했다는 듯이 쏟아져 나온다. 지금은 너무 많이 쓰고 싶어 져서 도리어 문제가 된 모양새이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이런 얘기를 해도 될까?'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될까?' 하는 불안감이 문득 올라온다. 내면에 존재하는 소심함이 내 손을 붙잡는다. 홍채나 지문처럼 글에는 글쓴이의 identity 가 흠뻑 묻어있다. 이토록 나를 드러내는 것은 두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쓰는 것이 바로 용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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