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화내서 무엇하나 웃어 넘기자!
중국 현대미술가 유에민쥔(岳敏君, Yue Minjun)의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에 다녀왔다. 2021년 3월 28일까지 열릴 전시가 코로나 때문에 임시 휴관을 겪고 5월까지 이어져서 여유롭게 한가람 미술관을 찾을 수 있었다. 유에민쥔은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인의 얼굴을 헛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으로 표현하여 세계에 알려진 유명 화가이다. 유에민쥔의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같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는 작가 자신의 얼굴이다. 이 얼굴들은 모두 과하게 웃고들 있다. 평소에 진짜로 웃길 때는 나올 수 없는 표정이다. 억지로 쥐어 짜내는 웃음일 때 볼 수 있는 표정이다. 우리가 유재석의 진짜 웃음과 사회생활 웃음을 구별하듯이 딱 봐도 가짜 웃음이다. 이런 유에민쥔의 가짜 웃음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려진 작품들을 미술사조적으로는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 장르의 "차이나 아방가드르"라고 한다. 정말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울 수도 없고, 화내도 내 손해고 에휴 웃기나 하자’ 느낌이다. 그래서 도가의 느낌이 들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실제로 유에민쥔은 자신의 근간을 노장의 허무주의라고 한다.
보면서 궁금해졌다. 어떻게 웃는 걸 보면서 슬픔을 느낄 수 있는 걸까? 만약 정글에 살고 있어 중국 현대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유에민쥔의 웃는 얼굴들의 사람들을 보여주면 그들은 이 사람들이 웃음을 진짜 웃음으로 바라볼까? 아니면 과장된 헛웃음이라는 것을 바로 알까? 궁금해졌다. 즉, 우리가 현대 사회의 비극적인 모습들을 잘 알기 때문에 저 과장된 웃음이 괴로움의 표현이라는 것을 아는 건지 아니면 저 표정 그 자체가 그것을 느끼게 해주는 건지 말이다.
이번 전시는 유엔민쥔 작품을 최대이자 최초로 가져온 국내 전시라고 하고, 33개 작품이 있으며 총 6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1.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 (The Saddest Laugh in the World)
첫 번째 섹션은 섹션이라고 부르기 애매하게 실제 작품은 오직 한 개 <사막> 뿐이다. 중국을 구성하는 이데올로기의 위엄 앞에서 미친 듯이 웃고 있는 인물들은 유에민쥔의 자조적인 비웃음을 느끼게 해 준다. <처형>은 2007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중국 현대미술 최고가를 경신하며 팔렸기 때문에 프린팅으로 보여준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을 차용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사실 굳이 도상을 끌어오지 않았어도 오리지널 도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처형은 흔한 전쟁의 풍경이 되어 버린 듯하다. 우리도 한국전쟁이나 일제시대 학살 장면을 생각하면 쉽게 떠오르는 모습들 아닌가.
2. 한 시대를 웃다(A-Maze-Ing Laughter of Our Times)
총 6 작품이 있었고, 개인주의적인 삶을 보여준다는 < 잔디에서 뒹굴다 >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혼자서 핸드폰을 보며 혼자 놀면서 혼자 즐기는 나르시시즘의 개인주의적 모습을 비꼬는 그림이다. 마치 혼자 전시회에 와서 신나서 감상하고 있는 내 모습 같아 찔렸다. 얼굴은 어른인데, 색깔은 새빨간 핑크빛의 마치 신생아 같아 섬뜩한 느낌도 자아낸다.
< 방관자 >는 416 이 생각나서 매우 슬펐다. 지금의 미얀마도 떠올랐다. 특히, 배경의 산은 동양풍으로, 사진 찍으며 구경하는 사람들이 서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에민쥔이 특히 지적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느껴졌다.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사진을 찍는 사람일 수 있지만, 언제나 내가 물속에 빠진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우리는 이미 허우적 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물속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말이다.
< 기억 2 > 정신없이 지나가는 생활 속에서 생각 없는 사람과 같았다. 우리가 정신없이 살 때 그 사람의 표정은 정말 아무런 '표정이 없다'. 그래서 유엔민쥔릐 경우 웃게 그렸지만, 사실 어떤 표정이라도 상관없다. 아무 표정이 없기에 어떤 표정을 갖다 붙여도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풍선이 이상과 희망이라면 날아가버리는 순수함이 아쉽게 느껴졌다.
3. 死의 찬미-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사랑하라!(The Praise of Death – Memento Mori, Carpe Diem!)
여기엔 8 작품이 있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이 현실을 즐겨라'라는 메시지라는데, 그렇게 간단하게 보이지 않았다. 바니타스 주제를 차용한 듯해 보였고,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느낌보다는 짧고 덧없는 인생 괴롭게 살아서 뭐하나 웃어넘겨버리자는 주제 같았다. 맥락은 비슷하지만, 단순히 '현실을 즐겨라'는 아니었다. 유에민쥔이 국가와 사회를 비웃다가 이제는 죽음까지 웃어버리는 초월성이 와 닿았다. 슬픔, 기쁨, 두려움, 분노 등 모든 감정을 아울러 하나의 '웃는' 표정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신기했다. 그만큼 웃음의 가치는 높은 것 같다.
4. 조각광대 (Slapstick Comedy)
유에민쥔의 조각 작품들이 있는 네 번째 섹션이었다. 얼굴은 웃고 있는데, 괴로움을 보여주는 조각들이 몸동작들이 대비가 되어 좋았다. < 짐승 같은 인간 > 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풍자로서 조금 약하게 느껴졌다.
5. 일소개춘 一笑皆春 – 한 번 크게 웃으니 온 세상이 봄이다!
섹션의 제목이 좋았다. '한 번 크게 웃으니 온 세상이 봄이다!' 슬프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웃어 넘기 자는 것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로서 매우 좋은 것 같다.
<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 것 > 작품이 < 잔디에서 뒹굴다 >와 함께 가장 좋았던 작품 중 하나이다. 마오쩌뚱은 없는데도 보이면서 "권력자는 하늘처럼 우리를 뒤덮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제목과 함께 하면 권력자는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된다. 그리고 < 중첩 시리즈> 도 좋았는데, 이는 사실 유에민쥔이 기법 실험을 했던 작품들이라고 한다. 해골과 웃는 얼굴 그리고 짐승과 웃는 얼굴들이 일그러졌지만 사실은 보인다. 두 개의 그림들을 그려놓고 서로 비벼댔다고 한다. 그렇게 그림들은 맞부딪히며 서로가 서로를 물들인 결과물이다. 우리는 혼자 살지 않고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사는데, 이렇게 부딪히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고, 때로는 가해자 그리고 때로는 피해자가 된다.
6. Special Zone
마지막으로 도예가 최지만과 합작한 도자기 작품과 유에민쥔 작품의 판화 버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2005년 EBS에서 < 오리엔탈의 빛 > 시리즈로 제작된 유에민쥔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고 있다.
매우 반항적인 유머의 자세로 역사를 대하고 있는 유에민쥔이다. 나는 역사를 어떤 자세로 대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할 거리를 선사하는 전시였다.
EBS, 오리엔탈의 빛, 2005-04-05, 자유를 향한 허무주의적 웃음 - 유에민준
유에민쥔 전시에 관한 기사 중 가장 좋았던 한겨레 기사 링크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71018.html#csidx0adf63eee865b239093d02dca8e718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