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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May 31. 2021

바람의 길, 올레 20코스

고요하고 아름다운 평화의 길 올레

# 17.6 km

# 김녕 서포구 ~ 제주해녀박물관

# 상징 : 바람바람

# 21년 5월 2일. 13시 45분 ~ 19시 35분 (5시간 50분)


나의 올레길 바이블인 「 제주올레 가이드북 」에 따르면 소요시간은 5~6시간이며 난이도는 중에 속한다. 

출처 : https://www.jejuolle.org/trail/kor/olle_trail/default.asp?search_idx=27



시작부터 아름다움에 취한다 : 김녕 서포구 


처음 걷는 올레길. 시작은 20 코스이다. 나의 제주 생활을 함께 시작해주는 친구들과 함께이다. 그중에 한 명이 올레길을 많이 걸어봤기 때문에 좋았던 코스를 알려달라고 했고, 자기는 김녕이 가장 좋다며 20코스로 결정하였다. 우리는 늦어도 11시에는 걷기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늦잠과 오전 빵과 커피 구매로 늦어졌다. 또, 숙소인 애월에서 시작 지점까지 가는 시간도 약 1시간 30분으로 차로 이동하는 시간도 많았다. 그래서 김녕 서포구에서의 시작은 13시 45분이었다. 우리는 '꼭 끝까지 가지 않아도 되니까~'라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김녕 서포구 올레 시작 지점에는 차를 댈 공간이 있다. 바로 스탬프 앞이다. 서울을 떠난 지 만 한 달이 되었는데도 제주 곳곳에 널려있는 주차장이 낯설다. '제주시에서 운용하는 무료 주차장입니다'라는 표지판과 주차장이 곳곳에 많은데, 이런 주차 인심이라니! 강남에서 10분에 1,000원 하는 것이 주차장인데 말이다. 




김녕 서포구! 스탬프 찍는 그곳, 그 순간부터 벌써 아름다웠다. 시작부터 고작 마을길에 들어가고 김녕 해수욕장에 다다르지도 않았는데, 계속 '너무 좋아!'를 연발하며 연신 발걸음을 멈춰대서 해지기 전에 절대로 다 못 걸을 거라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거의 10초마다, 10걸음마다 걸어서 사진 찍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매 올레길을 걸을 때마다 그러고 있으니 첫 습관이 무섭다. 또는, 그만큼 담아두고 싶은 아름다운 제주의 속살이다. 어떻게 멈춰 서서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처음 지나가 보는 마을길에 신났고, 지금은 많이 봐서 익숙한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꽃들도 여기 올레길에서 처음 본 식물들이다. 생각해보니 17살 때 수학여행으로 봄에 와보고 그 외에 제주도 방문은 전부 겨울이었다. 제주의 꽃들을 처음 보는 것이나 매한가지이니 신나지 않을 수가 있나!


500 미터도 채 걷기 전인데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춰 서게 되는 아름다움



김녕리는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22km 떨어진 해안가 마을이다. 동쪽으로는 함덕, 서쪽으로는 월정이 있다. 김녕(金寧)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김녕현(金寧縣)이라는 명칭으로 처음 나타난다. 묘산봉과 입산봉을 등에 엎고 있다. 김녕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김녕해녀마을 사이트에 잘 설명되어 있다. 


김녕해녀마을 : http://gimnyeong.invil.org/index.html


중간중간 안내판들이 친절하다. 제주도에서, 시에서, 읍에서 등등 안내판을 만든 이들은 다양하나 정보에 허덕이는 올레꾼에겐 모두 감사하다. 

조간대 (Intertidal zone)이라는 것은 밀물일 때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일 때에 드러나는 해안선의 부분이다. 김녕에 있는 조간대는 해수면이 낮았던 시기에 점성이 낮은 용암이 흐르면서 평탄안 용암지대를 형성하고, 점차 해수면이 올라오면서 조간대가 되었다고 한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바다와 닿아있는 현무암들을 많이 봤지만, 모양은 다 다르다. 같은 색깔, 다른 모양의 돌들을 보는 것이 올레길의 또 다른 재미이다. 


김녕 해안의 조간대



아름다운 옛등대는 1km 지점이다. 저렇게 작은데, 바다에서 잘 보였을까? 싶지만 그 옛날 불꺼진 컴컴한 육지에선 아주 작은 불이라도 네온사인처럼 보였으리라. 꼭 아이들 미끄럼틀 처럼 생긴 아기자기한 도댓불이다. 

김녕 도댓불



카이트 서핑과 흰 모래가 인상적인 : 김녕 성세기 해변


조금 걷다보면 김녕 성세기 해변이 보인다. 성세기는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한 작은 성이라는 뜻이다. 역시나 처음 보는 김녕 해수욕장의 모습이었고, 보자마자 “우유 풀어놓은 것 같아!” 라고 감탄했다. "김녕 바다 색깔 정말 예쁘지? 제주 바다 색이 이래." 하며 20코스를 칭찬한다. 하지만 나는 20코스를 나의 첫 올레길 코스로 선택해준 친구를 격하게 칭찬한다. 날씨도, 함께 걷는 이도, 풍경도 완벽해서 행복하다! 김녕 해변은 흰 모래사장이 있는데, 제주에선 보기 쉽지 않은 흰모래이다. 이는 원래 얕은 바다에 살던 조개와 해양생물의 골격이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던 것으로 바람을 타고 밀려와 해안에 쌓인 것이라고 한다. 이곳 김녕 해수욕장에서 카이트 서핑이라는 것도 처음 보았다. 사람들이 하는 게 카이트 서핑이라는 것도 몰랐다. 엄청나게 재밌어 보여서 해봐야 겠다는 마음이 든다. 가끔씩 하늘을 나는데, 와 정말 기분 좋을 것 같다. 제주살이에서 꼭 해봐야 할 것이다! 


김녕 성세기 해변, 카이트 서핑 모습이 멀리 보인다


성세기태역길을 가기 전 원담 (Stone wall) 이 나온다. '돌그물', '갯담' 이라고도 불리는 원담은 제주에 있는 고기를 낚기 위해 쌓은 돌담이다. 밀물 때 물고기가 들어오고, 썰물 때 갇혀 나가지 못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주로 멸치를 잡았다고 한다. 원담은 올레길을 걷다 보면 자주 볼 수 있다. 


20코스의 백미 : 성세기태역길 ★★★★★


아름다운 흰모래사장을 뒤로하고 이어지는 길은 성세기태역길이다. 김녕 해수욕장보다 이 길이 20코스의 백미이다. 왼쪽 옆구리에 아름다운 우유 바다를 끼고, 오른쪽으로는 태역을 끼고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걷는 흙길 그리고 현무암 돌길이다. '태역'은 잔디를 뜻하는 제주말이다. 성세기태역길은 환해장성까지 이어지며 약 1km 정도 지속된다. 여기는 사진을 찍었다 하면 예술 작품이다. 하지만 역시 사진은 실제를 전부 담지 못하니 바쁘다면 딱 이 1 km 의 성세기 태역길만이라도 걸어보시라! 


꼭 해외 어딘가 같지 않은가. '해외 같다' 가 칭찬인 것부터 웃기지만. 제주의 아름다움이다.
20코스 성세기태역길은 매일매일 가서 보고싶은 풍경이다.


용암은 끈적이는 정도에 따라서 꿀같은 아아용암 (Aa lava) 와 토마토 주스 같은 파호이호이용암 (Pahoehoe lava) 로 구분되는데, 김녕 해안은 파호이호이용암이다. 그래서 불룩하게 솟은 거친 느낌이 아니라 얇지만 넓고 부드러운 느낌의 대지이다. 액체 상태인 용암이 굳으면서 부피가 줄어들어 갈라지는데, 이를 '절리'라고 한다. 육각형으로 갈라진 형태가 거북이 등 모양과 비슷하다고 하여 '거북등절리' 라고 불린다. 


이름도 귀여운 파호이호이 용암



왜구로부터 제주를 지키는 : 환해장성


환해장성이 나온다. 환해장성은 올레길을 걸으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제주도 해안 전역을 둘러싸고 있는 긴 성으로 총 길이가 약 120km 라고 하나 군데군데 끊겨있다. 아니, 군데군데만 남아 있다. 형태가 남아 있는 10개 부분이 있다. 제주시 화북, 삼양, 애월, 북촌, 행원, 한동 그리고 서귀포시엔 온평과 신산이다. 환해장성은 1270년 고려 원종 11년 삼별초군 즉, 나라의 반란군이 제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위해 나라의 정규군이 쌓았다. 고려가 고려를 막기 위해 쌓은 셈이다. 이후 조선이 되었을 때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계속 보수와 정비를 하여 조선말기까지 이어졌다. 


김녕에 남아 있는 환해장성 흔적



바람바람바람 : 김녕 풍력 발전기


이어선 김녕국가풍력실증연구단지로 간다. 풍력 발전을 하고 있는 ‘선풍기’를 이렇게 옆으로 지나가 보기는 처음이다. 윙윙~ 하는 소리도 들리는데, 생김새에 비해 소리는 생각보다 조용하다. 바로 20코스의 상징인 '바람바람'이다. 


아무런 필터도 없이 아이폰으로 막 찍어도 작품 같은 김녕 모습



쪽빛 바다와 밀당 하기 : 월정마을길 그리고 월정해수욕장


바닷가 돌담 밭을 지나면 월정마을이다. 바다를 바로 끼고 있다가 마을길로 들어서 떨어지니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바다가 보이는 거리이다. 계속 바다가 손에 잡힐 듯 걷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바다와 떨어져 밀당을 한다. 바다를 밀어냈으니 조금 있으면 다시 당기자! 


짖지도 않고 현무암 돌담 너머로 올레꾼을 구경한다


월정으로 들어가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정식으로 첫 끼니였고, 오후 3시 30분이니 시작한지 약 2시간 후이다. 아주 배고픈 상태에서 이춘복 고등어 가게에서 고등어찜과 고등어 구이를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올레길을 걷고 먹는 음식이 그렇게 맛있다더니 정말 그렇더라. 17.6km 에서 6km를 온 상황, 즉 아직 2/3 이 남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1/3 지점에서 밥 먹고, 2/3 지점에서 커피 마시고, 3/3 에서 저녁 먹으면 되겠다고 즉석 계획을 세웠다. 부른 배를 소화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걸었다. 아름다운 월정마을 안길을 지나고, 월정 해수욕장이 나온다. 김녕 해수욕장에 비해 작지만 사람이 적어 나중에 놀러 온다면 이 곳이 좋겠다 싶다. 


김녕 해수욕장보다 한산한 월정 해수욕장

최애 광해군의 제주 흔적 : 행원포구


중간 stamp 를 찍는 행원포구 지점은 8.3 km 지점이다. 이 곳은 광해군 기착지이다. 나의 중, 고등학교 시절 최애 였던 광해군은 제주도에서 돌아가셨다. 인조반정 이후 제주로 유배됐고, 남양주에 묘가 있다. 아름다운 제주도는 광해군을 품지 못했다. 제주에는 광해군의 흔적이 전혀 없다. 제주 원도심에 국민은행에 '광해군 유배지' 표식만 덜렁 남아있다. 실제 그곳이었는지 알길도 없다. 제주에서의 광해군이 아쉬웠는데, 오직 이 행원포구로 입항했다는 것만 알려져있다. 이를 알리는 작은 표석을 행원포구에 세워두었다. 친구들이 없이 나 혼자 걸었다면 아마 이 곳에서 몇 시간이고 주저 앉아 광해군과의 추억(?)에 푹 빠져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러고 싶어함을 알 듯이 조금 지체하였지만 보채지 않는 찐친들이다. 제주에 머물기로 하고 만 하루 째였는데, 광해군이 제주에 도착한 곳에 오다니 이것도 인연인가(?) 싶다. 광해군의 제주 유배생활은 위리안치로 요새의 자가격리와 비슷하다. 집 밖을 벗어날 수 없는 그야말로 집 감옥이다. 광해군은 제주에 온지 4년을 약간 넘어 1641년 (인조 19년) 67세로 돌아가시니 당시 평균 수명에 비해선 오래 사셨다. 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 정묘호란까지 모두 겪었다. 물론 제주는 후방이라 청의 침략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겠지만 말이다. 사는 게 지옥이라는 것을 잘 아는 인조와 서인들이 그렇게 광해군을 제주에 살아 있도록 둔 것이다.


 

제주임에 놀라는 그대를 떠올린다.
제주 원도심의 광해군 유배터. 18코스 근처이다. 



또 바람바람바람 : 조용한 행원 마을 풍력 발전기


이렇게 광해군을 뒤로 하고 마을길로 들어간다. 행원 마을은 풍력발전단지가 있다. 김녕이 소규모 풍력시설이고, 이 곳은 아예 단지이다. 1997년에 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하였고, 행원 마을은 발전기로 전기를 팔아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도 한다. 낯선 풍경이지만 이질적이지 않다. 하얀 풍력 발전기가 파란 바다와 하늘과 잘 어울린다. 원자력 발전소가 화력 발전소가 못생기게 생긴 것과 다르게 말이다. 분명 경관을 해친다, 자연을 훼손한다 등의 반대가 있었을 것 같지만, 이제는 행원리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생김새는 엄청 시끄럽게 생겼는데, 막상 소음은 거의 없으니 신기하다. 돌아가는 모습이 땅에 그림자로 움직이는데, 거대하다. 




20코스의 유일한 : 짧은 숲길 그리고 좌가연대


밭과 집을 끼고 걷다가 혼자 지나가면 무서울 만한 숲길이 짧게 나온다. 나무 동굴들이 자아내는 분위기에 우리는 '우와~' 를 연발하며 지나갔는데, 사진을 찍어도 그냥 산을 걷는 느낌이지 나무 동굴의 느낌이 나오지 않았다. 이 숲길은 20코스의 또 다른 묘미이다. 


어두운 숲길의 느낌이 잘 표현되지 않는다


숲길의 끝자락에 좌가연대가 있다. 11.2km 지점으로 굉장히 보존이 잘된 큰 봉수대이다. 올레길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무슨무슨연대는 군사시설이다. 그 옛날 이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집을 그리워하고 있었을 군역에 끌려온 가난한 조선 남성이 그려진다. 

잘 보존된 좌가연대



올레 20코스의 오아시스 : 한동 해안도로


이어서 정갈한 밭길을 지나 한동 해안도로에 닿았다. 2/3 지점이라 카페에 앉아 잠시 쉬었다. 한라봉 에이드, 백유자 에이드, 감귤 에이드를 시키면서 정말로 맛이 다를까 의심했는데, 각자 다른 맛으로 우리의 갈증을 씻겨내려준다. 정말 너무 시원하고 너무 맛있었다! 바다를 보며 카페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제주에 놀러오면 저렇게 카페에서 바다를 보다가 갔지. 하지만 정말 제주를 제대로 느끼려면 올레길을 걸어야 한다!




또 다른 20코스의 백미 : 평대리 벵듸길


한동리로 이어진다. 한동리의 옛 이름은 '궤', '괴리' 인데, 이는 '바위 동굴' 이란 뜻의 제주어이다. 마을 위쪽에 있는 궤동산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한동으로 변했는지 궁금하다. 한동리를 지나면 평대리가 나온다. 평대 어촌계, 평대 해수욕장을 지나쳐서 부지런히 걷는다. 거의 끝이 다와가니 우리의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어스름한 저녁 느낌이 등 뒤에서 빨리 가라고 보챈다. 벵듸길이 나왔다.’돌과 잡풀이 우거진 들판’ 이라는 뜻이 바로 ‘벵듸’ 이다. 평대리의 옛 이름이 '벵듸' 라고 한다. 궤와 한동보다는 벵듸와 평대는 훨씬 비슷해서 그렇구나 이해가 된다. '벵'이라는 음운도 '듸'라는 음운도 육지에선 낯선 소리라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단어구나 싶다. 뜻도 너무 예쁘다. 잡초 라고 하면 농약을 뿌려 죽이고 없애 버려야 할 존재처럼 느껴지지만 제주에선 아름다운 들판이 된다. 일몰이 시작되려고 하는 벵듸길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한동리의 이름이 궤에서 어떻게 한동이 되었는지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옛날에 마을에 도깨비불이 나타나 마을 초가집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온 동네가 다 타버릴 것 처럼 심해서 동네 사람들이 당번을 정해 밤마다 북을 치고 피리를 불어대며 불을 내쫓았다. 관아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목사가 직접 와서 조사해보니 사람이 낸 불이라고 결론 내렸다. 주민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자, 어떤 마을 주민이 꾀를 내어 화를 면하게 되었다. 이후 마을 훈장이 '홰나무로 인해 일어난 불은 한수로 꺼야한다' 며 마을 이름을 한동리로 바꾸고 그런 일이 없어졌다는 전설이다. 


# 한동마을과 도깨비 전설

출처 : 뉴제주일보 http://www.jejuilbo.net/news/articleView.html?idxno=100536





1932년 제주 해녀 항일운동의 그 곳 : 세화 


벵듸길이 끝나면 이제 고지가 보인다. 세화에 도착한 것이다. 세화 오일장은 제주 동쪽에서 가장 큰 장이고, 5일과 10일에 열리며 보통 오후 4시 경 파장한다. 세화리의 옛이름은 '가는곶' 으로 '곶자왈'에서도 볼 수 있는 음운인 '곶'은 수풀을 뜻한다. 이 세화장터는 1932년 1월 12일 세화리 장날의 제주 해녀 항일 운동이 일어났던 바로 그 곳이다. 또 다시 잠시 머물며 그 날을 떠올려 본다. 


제주의 해녀들은 예부터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었다. 이는 일제 강점기가 되면서 더 심해졌다. 1920년 4월 해녀들은 권익 보호를 위해 제주도해녀어업조합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이 해녀조합은 조합장을 일본인 제주도사가 하는 등 어용조합으로 변질되었으며, 조합은 해녀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해녀를 착취하는 도구가 되어버린다. 그러던 중 1930년 성산포, 1931년 하도리에서 조합에서 해녀가 수확한 해산물의 경매가격을 하향 책정하는 횡포가 발생하자 1931년 6월 해녀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여론이 생겼다. 그래서 조합 반대, 수확물에 대한 가격 재평가 등의 요구 사항을 결정하고, 세화리 장날에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한다. 이것이 바로 제주 3대 항일 운동이자 우리나라 최대 어민 운동인 1932년 1월 12일 세화리 장날의 제주 해녀 항일 운동이다. 이 때 제주도사가 해녀들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기로 하였으나, 이건 당일에 한 허튼 약속일 뿐이었다. 일제는 곧 해녀들의 시위를 주도한 해녀들과 청년 운동가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기 시작하였고, 1월 27일 종달리 해녀들의 시위를 끝으로 일제에 의해 진압되어 끝이 난다. 해녀 항일 운동에 관한 자세한 전개 내용은 제주특별자치도 홈페이지 제주 역사에서 볼 수 있다.


제주역사 해녀항일운동 : https://www.jeju.go.kr/culture/history/antiJapanese/haenyoMovement/haenyoMovement01.htm



당시 해녀들의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다.

지정판매 절대 반대

계약 보증금은 생산자가 보관

조합의 재정 공개

미성년, 40세 이상 해녀, 질병 등으로 입어를 못하는 자는 해녀 조합비 면제

출가증은 무료로 내어주기

총대는 마을별로 선출

악덕 상인을 옹호한 승전 서기 즉각 면직

도사의 조합장 겸직 반대

일본 상인 배척



해질녘의 세화 해수욕장
아름다운 세화에서 뜨거웠던 해녀들의 함성 또한 가슴에 담자



20코스의 마무리 : 해녀박물관


해질녘 세화에서 잠시 사진 찍고 물 마시며 쉬고 곧 해녀박물관에 닿았다. 19시 35분으로 출발한지 5시간 50분 만이다. 가이드북에 5~6시간이라고 적혀있고, 길게 두 번 정도 쉬었으니 꽤나 정확하게 맞춰 도착한 셈이다. 사실은 도착해서 해녀박물관도 관람하면 되겠다고 계획했지만, 여유로운 걸음으로 그건 택도 없었다. 해녀 박물관은 21코스를 시작할 때 가보기로 한다. 해녀 박물관 앞에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잡아 김녕 서포구로 가는데 생각보다 엄청 오래가서 놀랐다. “정말 많이 걸었나봐!” 를 연발하며 이제는 깜깜해진 김녕서포구로 되돌아왔다. 


올레길 걸어보기의 시작을 너무나 아름다운 20코스, 그리고 더 아름다운 친구들과 함께 해서 행복했다. 올레길은 행복이라는 말을 온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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