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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Jun 14. 2021

청보리 물결치는 가파도, 올레 10-1코스

고요하고 아름다운 평화의 길 올레

# 4.2 km

# 상동포구 ~ 가파치안센터

# 상징 : 가파도 청보리

#  21년 5월 8일 12시 30분 ~ 14시 (1시간 30분)


나의 올레길 바이블인 「 제주올레 가이드북 」에 따르면 소요시간은 1~2시간이며 난이도는 하에 속한다. 

출처 : https://www.jejuolle.org/trail/kor/olle_trail/default.asp?search_idx=14



모슬포항에서 떠나요 : 배 시간이 정해져 약 2시간 동안 돌아볼 수 있다


가파도 코스이다. 가파도는 4월에 열리는 청보리축제로 유명하다고 한다. 심지어 엄마도 티브이에서 보고 알고 계셨다. 나는 이번에 올레길 걷기를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다. 


가파도는 들어갈 때 배 시간을 지정하면 나올 때 배 시간도 자동으로 정해진다. 그래서 무조건 그렇게 타야만 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가파도에서 나올 때 보니까 빈자리가 있으면 그냥 다 탈 수 있게 해 주었다. 물론 우선순위는 밀리지만, 자리가 없어서 못 탈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2시간 내에 다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조금 덜 쉬면서 다녔는데 좀 더 여유롭게 다녀도 될 것 같다. 


12:10에 들어가서 14:50 배를 타고 나오는 일정이었다. 여유롭게 표를 받으러 갔더니 11시 배로 바꿔드릴까요?라고 하길래, 비행기와는 다르게 확실히 배는 후리한 면이 있어 친근하다. 하지만 거절하고, 남은 1시간 동안 식사를 했다. 모슬포 항에서 갈만한 아침 식사 가능한 식당은 두 군데 정도뿐이다. 하나는 해장국, 하나는 횟집. 우리는 신모슬포 포구 식당을 들어갔고, 나는 생에 가장 맛있는 회덮밥을 먹었다. 이후 항구 앞에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요트를 구경하다가 승선 시간 20분 전부터 승선이 시작된다기에 11:50에 배를 타러 갔다. 모슬포 항에는 가파도행과 마라도행 두 여객선이 운행하는데, 마라도 보다 가파도를 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가파도는 모슬포항에서 5.5km 떨어진 섬으로 최남단 마라도의 명성에 가려져 있었으나 청보리 축제로 마라도 보다 더 인기 있는 섬이 되었다. 가파도는 동서 길이 1.5km, 남북 길이 1.3km의 작은 섬으로 매우 편평한 지형이 특징이다.  


모슬포항에서 가파도 까지는 약 20분 거리. 잠깐 앉아 창문 밖으로 파란 바다를 구경하다 보면 곧 내린다. 성질 급한 승객들이 자리에 일어나서 줄을 서려고 하자 자리에 앉으라고 소리친다. 제주에서 올레길을 느리게 느리게 걸으며 살다 보니 저런 움직임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가파도 올레의 시작 : 상동포구


상동의 옛 이름은 '모시리'이다. 말을 실어 나르던 곳이란 뜻이다. 옛날에 국유 마장지로 지정되어 가파도에서 임금이 타는 말을 기르고, 제주특산 흑우를 키워 진상했다고 한다. 이곳 가파도의 상동 포구에서 10-1 코스는 시작한다. 처음 시작 지점은 자전거 대여 및 탑승을 시작하는 곳과 같아 정신이 없다. 제주 본섬의 한가로운 올레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와글와글 거린다. 가파도 여서 그런 건지, 주말이라 그런 건지 변수 조절이 안 되어 원인은 판별 불가지만 둘 다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남편에게 평화롭고 아름다우며 사람도 없이 고요한 올레길을 함께 걷자고 하였는데, 이게 웬 걸 내 말이 거짓말이 되었다. 설마 가파도 올레 전체가 이런 건 아니겠지 하는 불안감을 안고 시작하였다. 


가파도 해안길 : 조면안산암의 화산암

가파도의 뭔가 다른 돌들

돌이 현무암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가파도가 화산섬이냐 아니냐에 대해 토론하였으나 우리끼리 결론을 내릴 순 없었다. 분명 제주 본토에서 본 현무암과는 다른 돌이다. 공부를 하여 보니 가파도는 화산섬이다. 가파도의 기반암은 현무암질 '조면안산암' 이라고 한다. 용암이 흐르면서 굳어 만들어지는 화성암은 마그마의 성분에 따라 현무암, 조면암, 조면안산암 등으로 구분된다. 가파도의 암석은 산방산, 백록담과 영실 부근의 바위와 같은 조면안산암 계열이라고 하니 현무암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현무암질 조면안산암 조성을 지닌 용암이 가파도의 거센 파도를 맞아 둥글둥글해졌다. 이런 왕자갈을 쌓아 돌담을 만들었다. 


보름바위라고 불리는 큰 바위가 있었다. 큰 왕돌이라고도 한다. 가파도 북서쪽에 위치한 바위는 큰 바람을 일으킨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바위에 올라가거나 걸터앉으면 태풍이나 강풍이 불어 재난이 생긴다고 여겨 가파도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돌이다. 


해안을 따라 걷는다. 조금 걷다 보니 자전거 족들이 빠른 이동으로 다들 치고 나간 모양이다. 다행히 걷는 인원은 많지 않아 시작만큼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마라도 조망 존이 있었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최악”을 찍은 날이라서 멀리 보이는 시야가 흐릿하다. 마라도는 가파도에서 바라볼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이런 미세먼지라니! 다음에 날 좋은 날 다시 와서 청명한 공기를 뚫고 마라도를 바라보고 싶다. 



고냉이(고양이) 돌을 지나고 바로 고냉이를 보았다. 이 작은 섬에서 관광객들을 많이 봤는지 피하지도 않고 유유자적 제 갈길을 간다. 바닷 쪽으로 내려갔는데, 목적지를 어디로 생각하고 가는지 궁금해진다. 




푸릇하면서도 황금빛의 가파도 보리밭


소망 전망대를 향해 거의 180도 꺾는다. 섬의 가장자리를 걸었다면 이제 섬의 중앙으로 들어간다. 양쪽으로 청보리밭이 늘어서 있고, 풍력발전기도 보인다. 


이 길은 밭과 밭 사이의 인도인걸까? 자전거는 없었다. 청보리와 청보리가 아닌 보리를 모른다. 청보리 자체가 청색 보리의 한 종인 건지, 청보리가 익어서 보리가 되는 건지 궁금해진다. 찾아보니 청보리와 황보리는 품종이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청보리가 익을수록 노랗게 영글게 된다. 즉, 내가 생각한 것이 둘 다 맞는 것이었다. 가파도의 청보리는 찰보리로, 3월~5월에 청색깔을 띄고 익을수록 황금색이 되어가는 보리들이다. 보리를 수확하고 나서 보리밭에 해바라기나 코스모스 등을 심어서 꽃물결이 친다는 가을에 가파도도 구경가보고 싶다. 




가파도 보리 자랑하시는 기사 : https://news.nate.com/view/20210603n02915?mid=n0305


집에서 가파도에서 사 온 청보리 차를 끓여서 물로 마셨는데, 정말 맛있다! 육지에서 끓이던 보리차보다 색깔이 맑아 보이는 것은 나의 사심이 들어가서 일까? 나의 제주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가파도 청보리 차가 정말 맛있다며, 자식 자랑하듯 물을 뽐냈다. 


가파도에는 17만 평의 보리밭이 있다. 가파도엔 왜 보리밭이 많을까? 궁금해진다. 다른 작물은 농사가 잘 되지 않는 걸까? 배를 타고 올 때 보리밭에 들어가서 사진 찍지 말아 달라는 방송이 거듭 나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리밭에 들어가 사진 찍는 사람들이 보였다. 또, 그들의 흔적인 듯 휘어지고, 쓰러진 보리들이 보여 한숨 나오게 만들었다. 못난 사람들이 많아서 슬프다.



낮은 가파도에서 가장 높은 곳 : 소망 전망대 


곧 걷다 보니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게 보인다. 저곳이 소망 전망대 인가보다. 상동 포구에서의 사람들을 여기서 다시 재만남 하는 모양새이다. 양귀비 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가파도에 도대 즉, 등대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아마도 이 곳 전망대에 도대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가파도의 해발은 18~20미터로 평평하다. 이 전망대는 해발 20.5m에 2.5m 높이로 설치하여 가파도의 정상이다. 이 곳에서 제주 본섬과 한라산과 마라도를 모두 볼 수 있다고 하나 역시나 미세먼지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전망대 근처엔 뭔가 올드한 감성을 가진 의자와 문구판들이 많이 있었다. '소랑햄쑤다', '곱들럭헌 가파도' 등이 분홍, 노랑, 파란색의 페인트로 칠해져 있는데, 가파도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잘 어우러지지 않았다. 가파도는 이미 꽃과 보리와 바다와 돌의 자연의 물감으로 충분히 알록달록하다. 인위적인 페인트 색이 붕 떠 있는 느낌이 들어 차라리 그냥 나무 색깔로 해놓는 게 어땠을까 또는 없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회을 김성숙 : 가파 초등학교


전망대를 지나고 가파 초등학교 쪽으로 걸으며 청보리 밭 그리고 너머 멀리 보이는 바다를 함께 한눈에 넣으며 내려갔다. 가파도는 독립운동가 회을 김성숙(1898~1969) 님의 고향이다. 3.1 만세 운동으로 구속되었다가 1921년 고향에 '신유의숙'을 설립하고 민족주의자들을 초빙해 제자들을 길러냈다. 신유의숙 덕에 가파도에는 문맹자가 없고, 서귀포에서도 유학 올 정도였다고 한다. 김성숙 선생이 설립한 '신유의숙'의 후신이 바로 가파 초등학교이다. 김성숙 선생은 김구, 김규식과 함께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당사회단체 지도자 협의회'에 함께 참여하셨다. 4.19 이후 한국사회당 후보로 총선에 나서 제주도 3개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로 민의원이 당선된다. 국회의원을 하며 4.3 진상규명 운동에 앞장서기도 하였으나 박정희 군사정권의 탄압이 심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는 못하였다. 


상하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운반하던 여성 항일운동가이자 제주 최초 근대 여성 의사 고수선(남편은 제주 최초 근대 남성 의사 김태민), 1932년 세화 해녀 항일운동에 함께 했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김한정, 신유의숙을 세우는 데 재정적으로 도움을 준 사업가이자 교육가 이도일 등 거센 가파도의 파도 속에 걸출한 인물들이 나왔다. 


가파도에서 본 제주 본섬 풍경 : 6개의 산


다시 해안가로 나왔다. 어멍 돌, 아방 돌을 지나 6개의 산이 보이는 곳에 도착하였다. 제주에는 오름이나 봉이 아닌 산이 총 7개 있는데, 가파도에서는 6개의 산을 볼 수 있다. 한라산, 산방산, 송악산, 군산, 고근산, 단산이 그 6개이고, 나머지 볼 수 없는 산 하나가 영주산이다. 하지만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 본토의 6개의 산은 구분되어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한라산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심각한 미세먼지 수준이었다.


 


거친 가파도 파도를 다스려주소서 : 가파도 제단


이어 제단이 나왔다. 8~9명의 재관들이 2박 3일 이 제단에서 머물며 제를 지내는 곳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음력 1월이면 제사를 모신다. 처음 마을이 생겼을 때부터 150여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제사라고 한다. 가파도 주변 해역은 물살이 세서 바다에서 채취한 해산물들을 좀 더 높이 쳐준다. 성게도 제주 본토 해녀들이 딴 것은 1kg에 11만 원인데, 가파도 성게는 1kg에 16만 원이라고 한다. 물살이 센 가파도 바다에서 어업을 해야 했던 가파도 주민들이 무사안녕과 번영을 비는 장소 이리라. 




가파도 올레의 종점 : 가파치안센터


가파도 올레에는 중간 스탬프 지점이 없고, 가파치안센터에서 가파도 올레 코스는 끝난다. 2시에 도착하였다. 가파치안센터는 하동포구에 있다. 하동포구는 여객선이 아니라 어업을 하는 배들이 드나드는 곳인 가 보다. 



다시 시작 지점 상동포구를 향해 걷는 길


우리는 다시 배를 타기 위해 상동포구로 가야 하기 때문에 가파도를 가운데로 가로진 마을길을 걸었다. 해산물을 파는 식당과 모자 등을 파는 상점들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마을길에 벽화를 잔뜩 그려 가파도를 소개하고 있었다. 하멜이 가파도에 도착한 일, 가파도 고인돌 등 귀여운 벽화들이 있다. 올레길 시작 지점을 다시 걸어서 되돌아 가기는 처음이다. 다시 돌아오니 2시 20분쯤 되어 시간을 적절하게 맞추었다. 기념품을 빼놓을 순 없지. 청보리 차와 청보리 막걸리, 청보리 미숫가루를 사들고 청보리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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