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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해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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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Jun 14. 2021

의사이자 해녀가 본 다음 웹툰 :「해오와 사라」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 정식 해녀는 아니다. 해녀 학교를 다니며 해녀를 꿈꾸는 예비 해녀, 아기 해녀이다. 


* 다음 웹툰 「 해오와 사라 」 :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haeosara



제주와 바다, 그리고 해녀에 푹 빠져 지내고 있는데 서울에서부터 보던 웹툰 「해오와 사라」가 완결이 났다. 매주 화요일마다 꾸준히 봐서 그런지 웹툰을 보던 수술실, 당직실이 떠오른다. 어려운 시절(의사 생애에서 가장 괴로운 때가 인턴이니)을 해오와 사라와 함께 보내며 공감했기 때문일까. 친구의 성장을 함께 한 느낌이다. 


처음에는 해녀와 인어가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시작했다. 하지만 「해오와 사라」에는 단순히 친구와의 우정, 자매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뛰쳐나와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멋진 여성들이 잔뜩 나온다. 더불어 한 '인간' (or 한 '인어')로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스스로에게 묻고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이 우리의 현재와 비슷하다. 어른이 되면 이런 고민들 없이 '완성'되어 있을 것 같지만 죽을 때까지 비슷한 생각들은 이어진다. 그래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인기를 끈 웹툰이 된 것 같다.  


지미봉을 바라보고 있는 우도 앞바다에 해녀 삼촌들의 테왁들이 이른 아침부터 떠있다. 



웹툰 「해오와 사라」에 그려진 다양한 내용들 중에서 총 4가지 주제에 대해 중얼거려 본다.  


첫째, '섬'에서 생활하는 것, 그리고 출륙금지령. 


지금은 손쉽게 육지와 제주를 오가고, 제주 주위의 섬들도 하루에 수십대의 여객선이 오고 가며 사람과 물건들을 나른다. 심지어 우도는 따로 배표 예약도 필요 없이 10분 전에 그냥 선착장에 가서 '표 주세요' 해서 탈 수 있다. 제주 본도도 아닌 우도라는 섬에서 평생을 살면 얼마나 답답할까! 이 곳이 나의 세상의 전부요 라고 살면 답답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해오가 지도를 보고 알게 되듯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곳을 향한 궁금증이 커진다. 나 역시 초가집과 마소가 있는 경상도 시골 마을에 살며 서울에 가길 얼마나 바랐던가!「해오와 사라」 속의 옥련과 헤오의 마음에 격하게 공감했지만, 그래도 육지에서는 자동차 타고, 기차 타고 이동할 수 있었기에 그들의 갑갑함에 비할 수가 없으리라. 


하지만 단순히 돈이 없어서, 수단이 없어서 섬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제주 여성들의 육지로의 이사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15세기 무렵부터 제주에 대한 중앙정부의 간섭이 심해지면서 세금이 과중하게 부담되어 역을 피하기 위해 제주도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어려움에 처하여 육지로 이주한 제주인들을 ‘출륙도민’ 이라고 한다. 결국 제주도민이 많이 줄어들어 출륙도민들을 제주도로 돌려보내는 작업을 하다가 결국 1629년(인조 7년) 제주도민의 출륙을 금지하는 나라의 명이 떨어진다. 제주 여인은 육지인과의 혼인이 국법으로 금지된다. 그래서 제주 안에는 남성보다 여성의 수가 더 많아졌다. 이 출륙금지령은 1825년(순조 25년) 해제된다. 그래서 웹툰 속 옥련, 해오와 사라는 제주를 떠나는 것이 가능하지만..


제주가 삼다도(島) 즉, 여성이 많은 섬이 된 데는 이런 중앙 정부의 수탈과 얽힌 정책과 연관되어 있다. 더 나아가 원래는 미역만을 건지던 해녀가 전복을 채취하는 남성 포작들에게 주어졌던 세까지 짊어져야만 했으니 '전복 따는 해녀' 역시 나라에서 구조적으로 일어난 여성 수난의 산 징표이다. 


「해오와 사라」에서 가장 우도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는 바로 연지이다. 혼인하면 살림하고, 물질해서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어릴 때부터 거부하는 신여성이다. 연지는 어릴 때 우연히 책을 접하고, 공부를 하고 있는 드물고도 특별한 해녀이다. 연지가 섬을 나가기 위해 교육을 받는 건지, 교육을 받아서 섬을 나가고 싶어 하게 된 건지 닭이냐 달걀이냐 와 같다. 하지만 분명히 '다들 그렇게 사니까'라는 전통 속에서 스며들며 사회화되면 '그렇게' 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생각들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깨닫는 데는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준다. 더불어 끝까지 파고 들어서 의심하는 것도 필요하다. 내가 가지게 된 생각이 정말로 나의 생각인지, 나도 모르게 주입받은 생각인지 말이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참된 앎이 요구된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과 맞닿는다. 비슷한 맥락에서 실제 해녀 항일운동을 이끌었던 분들 역시 하도강습소 학생분들로, 낮에는 물질하고 밤에는 야학에서 공부한 분들이시다. 


다음 웹툰 「해오와 사라」 20화 장면 갈무리




둘째, 우도와 해녀. 그리고 해녀 항일 운동.


편안하게 누워있는 소를 닮은 모양이라 하여 이름도 우도인 소섬은 성산 일출봉에서 약 3.5km 떨어져 있고, 제주에 딸린 섬 중에선 가장 크다. 1842년(헌종 8년)에 조정의 승인 아래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 


우도 천진항에 있는 우도해녀항일운동기념비


우도는 잠녀 즉, 해녀와 연관이 많다. 우도 선착장에는 '우도해녀항일운동기념비'가 있다. 일본은 강점 이전에도 제주어장을 약탈했지만, 강점 이후에 어업조합이나 해녀조합 등 관제조합을 통해 더 악랄할 착취를 일삼았다(참고 :「답사여행의 길잡이11 한려수도와 제주도」p. 292). 빡친 해녀들이 1932년 세화장터에 모여 항일 시위를 했다. 세화리, 하도리, 종달리, 연평리 등에서 참여한다. 이게 바로 유명한 세화해녀투쟁이다. 


제주의 해녀들은 고려시대부터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었다. 이는 일제 강점기가 되면서 더 심해졌다. 1920년 4월 해녀들은 권익 보호를 위해 제주도해녀어업조합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이 해녀조합은 조합장을 일본인 제주도사가 하는 등 어용조합(사용자의 비호를 받고 움직임으로써 노동자의 자주성을 상실한 조합, 참고 : 네이버 국어사전)으로 변질되었으며, 조합은 해녀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해녀를 착취하는 도구가 되어버린다. 


그러던 중 1930년 성산포, 1931년 하도리에서 조합에서 해녀가 수확한 해산물의 경매 가격을 하향 책정하는 횡포가 발생하자 1931년 6월 해녀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여론이 생겼다. 그래서 조합 반대, 수확물에 대한 가격 재평가 등의 요구 사항을 결정하고, 세화리 장날에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한다. 이것이 바로 제주 3대 항일 운동이자 우리나라 최대 어민 운동인 1932년 1월 12일 세화리 장날의 제주 해녀 항일 운동이다. 이때 제주도사가 해녀들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기로 하였으나, 이건 당일에 한 허튼 약속일뿐이었다. 일제는 곧 해녀들의 시위를 주도한 해녀들과 청년 운동가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기 시작하였고, 1월 27일 종달리 해녀들의 시위를 끝으로 일제에 의해 진압되어 끝이 난다. 


다음 웹툰「해오와 사라」 62화 장면 갈무리


당시 해녀들의 9가지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다.


지정판매 절대 반대

계약 보증금은 생산자가 보관

조합의 재정 공개

미성년, 40세 이상 해녀, 질병 등으로 입어를 못하는 자는 해녀 조합비 면제

출가증은 무료로 내어주기

총대는 마을별로 선출

악덕 상인을 옹호한 승전 서기 즉각 면직

도사의 조합장 겸직 반대

일본 상인 배척


5일, 10일에 열리는 세화 민속 오일 장터


이 항일운동은 3개월 동안 지속되며 제주 동쪽에서 17,000여 명의 해녀들이 참여하였다. 우도 해녀 300명이 참여하였다. 이들을 중심으로 제주 전역으로 투쟁이 번져나갔고 해녀 애국지사들이 옥고를 치른다. 


항일운동에서 여성의 역할이 축소되어 평가되고 있지만 바로 제주에서의 항일운동은 여성이 주도하였다. 부춘화, 김옥련(「해오와 사라」에 해오의 엄마 이름으로 나오지만, 이름만 차용했을 뿐 실제 행보는 다르다.), 부덕량, 고손효 (본명 고차동), 김계석 5인은 유명한 독립운동가이다. 이들은 하도강습소 1기 졸업생으로 민족 교육을 받고 항일 투쟁을 주도했으며 체포된 후에도 자신들이 주모자임을 자원하여 동료 해녀들을 석방시키는 역할도 한다. 정말 최고 존엄 멋있다. 소름 끼치도록 멋있다.


실제 김옥련 지사님은 구좌읍 하도리 출신으로, 해녀들의 항일단체인 '소녀회' 회장을 맡아 활동하셨다. 6개월 간의 옥고에 관해 "취조 과정에서 소 채찍으로 맞고, 두 팔을 뒤로 뒤틀리는 고문을 당했으며, 나무봉 위에 무릎을 꿇리고 짓눌리는 등 떠올리기조차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라고 증언하셨다. 2003년 독립유공자 건국포장을 수여받으셨고, 2005년에 영면에 임하셔 대전 국립현충원에 계신다. 

(증언 출처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64148




우도 해녀 강관순 지사가 지었다는 '해녀의 노래'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제주도의 가엾은 해녀들

 비천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

 추운 날 더운 날 비가 오는 날에도

 저 바다에 물결 우에 시달리던 몸


 아침 일찍 집을 떠나 밤이 되면 돌아와

 어린아이 젖 주면서 저녁밥을 짓는다

 하루 종일 하였으나 번 것은 기막혀

 살자 하니 근심으로 잠 못 이룬다


 이른 봄 고향산천 부모형제 이별하고

 온 가족 생명줄에 등에 다 지어

 파도새 물결새는 저 바다를 건너서

 기울산 대마도로 돈벌이 간다


 배움 없는 우리 해녀 가는 곳마다

 저놈들의 착취기관 설치해 놓고

 우리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도다

 가엾은 우리 해녀 어디로 갈까




셋째, 희생할 수 있는 '능력'


날 때부터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17살의 반항아 여희와 은서가 풍족하게 지내면서 훗날 어떤 일을 할지 얘기하며 풋풋한 우정을 나눈다. 여희는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나 못난 오빠에게 밀리는 것에 분노한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성취해서 인정받고자 한다. 현대에서 유리천장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는 지금의 여성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의 정신적인 독립을 못하고 있는데, 인어 표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라를 구함으로써 드디어 아버지의 딸이 아닌 인간 '여희'로서의 길을 가게 된다. 


많은 이들이「해오와 사라」에서 가장 소름 돋았던 대사는 바로 은서의 말 아닐까. 

다음 웹툰「해오와 사라」 56화 장면 갈무리


은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 돈, 미래 그리고 목숨까지. 여희는 해오가 사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보면서 계속 신경줄이 거슬린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까지 희생할 수 있냐고.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음에 대한 동경과 질투가 섞인 마음이다. 어떤 것을 위해서, 그것이 사람이든, 신념이든, 희생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착한 마음이라고 취급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무나 하지 못하는 엄청나게 대단한 '능력'이다.


의사로서 희생과 헌신이 차지하는 비중, 그리고 그걸 타협하는 나약함과 합리화에 대한 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장 비수를 꽂는 말이었는 듯하다. 산과, 심장내과, 신경외과 등 초응급이 많은 과의 의사들의 경우 자신의 잠을 희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휴가 때도 병원에서 멀리 벗어나질 못한다. 전화 한 통에 병원으로 부리나케 액셀을 밟아 회귀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희생은 단순히 월급으로 환원하기엔 부족하다. QOL의 시대에 내 일신의 편안함을 벗어던지고 희생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다. 




넷째,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남성, 전근대적인 가부장제 


주인공들이 대체로 진취적이고 행동하는 여성들이고, 그에 비해 남성들은 전근대적이고 무능력한데 욕심은 많은 사람들로 묘사된다.「해오와 사라」의 애독자는 전부 여성일 것 같다. 우도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연지는 동우를 섬을 떠나는 도구로 이용한다. 또, 많은 남성들을 '노리개'로 여기며 한밤 중의 밀애를 즐긴다. 재하는 드세지 않고 얌전하다며 요나를 좋아하고, 스윗한 척은 혼자 다하더니 옥련에게 혼인만 하면 대들지 못하게 할 거라며 손찌검을 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여희의 대장부로서의 모습에 희열을 느낀 만큼, 동우 아빠의 치졸한 모습은 하찮게 보인다. 며느리를 집안의 일꾼이자 종으로 부리고, 잔칫날에 어느새 여성들은 일을 하고 있고 남성들은 웃으며 술 마시고 쉬고 있는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아직 볼 수 있다. 

다음 웹툰「해오와 사라」 20화 장면 갈무리


제주 여성들은 살림, 육아를 비롯하여 어업과 농업 즉, 경제활동까지 하였다. 이런 제주 여성을 근면하여 가족을 지키기 위한 강인함으로만 보는 게 화가 난다. 이 분들은 강해지길 원해서 강해지신 게 아니다. 해녀들은 8~9세 때부터 바다에 나가 엄마, 할머니가 하는 물질을 보며 자연스럽게 배우고 그렇게 생업에 투입된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게 당연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서 물때엔 물질, 아닐 땐 밭일, 집에선 살림과 육아를 했다. 용천수를 길어오는 일도 사진이나 석상이나 맨 여성이다. 도대체 언제 쉬었을까 싶다. 이런 제주 여성들을 해녀박물관에서조차 '제주경제의 밑거름'이라고 표현한다. 고작 거름이란 말이냐! 거름이 하찮고 나쁜 거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정도밖에 표현하지 못하다니. 만약 남성이었다면 경제를 이끈 영웅, 주역, 거인 이렇게 표현했을 테지. 그래서 여성이 거름이 되어서 무엇을 길러냈나?라고 따진다면, 해녀 삼촌들의 삶을 부정하는 게 되어버릴까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속상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분들의 삶과 뜻을 체득하기엔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인걸까? 


제주 세화 해녀박물관에 있는 설명판




그리고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 해오와 사라


옥련과 해오에게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는 바로 인어들이다. 처음엔 해오도 '평범하게'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며 섬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연지를 무시한다. 모나게 살면서 욕먹는 것이 괴로운 일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라의 응원에 힘입어 멋대로 결정된 혼인을 거부하고, 더 이상 예비 며느리로서 전복을 착취당하는 것도 거부한다. 그리고 사라를 구하는 방법으로 누군가를 해치게 되고, 이를 사죄하기 위해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사라에게 구원자는 해오이다. 단순히 자신의 과거를 알기 위해 제주 바다에 왔지만, 해오와 함께 지내며 인간이 되는 소망을 구체화시킨다. 순간순간 자신의 선택이 옳은 지 고민할 때도 해오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 해오와 사라 」에선 여성들의 강인함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다. 거기에 더해 작은 섬에 갇혀있는 답답함, 오래전부터 당연히 되던 우도 여성에게 강제된 일에 대한 의문, 그리고 더 넓은 곳을 향한 시선과 의지가 더해진다. 여성과 해녀로서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탈출한다. 마치 히데코와 숙희가 행동하여 떠나듯이. 




# 하나 더 추가! 제주에는 '사라'가 많다. 사라(沙羅) 마을도 있고, 한라산을 오르는 길에 있는 사라(羅)오름도 있으며, 사라(羅)봉은 올레길 18코스로 제주항 근처에 있다. 사라봉은 오름으로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어 마을 사람들의 핫한 산책로이다.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라는 대회가 있고, 시민의 숲 분야에서 아름다운 어울림상을 수상한 곳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음에도 숲이 우거지고 또 사라봉 정상에 있는 정자에서 바라보는 제주항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으니 제주 여행 시 가보면 좋을 것이다.  


흐린 날 사라봉에서 내려다본 제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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