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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해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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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Jun 17. 2021

일제에 맞서다 : 우도 해녀 고이화 지사

1932년해녀항일운동에참여하신 해녀 삼촌

우도 대상군인 어머니의 4남매 중 막내딸로 1916년 3월 6일 태어났다. 우도에서 여자는 해녀가 되는 일이 자연스러웠고, 8살부터 헤엄을 치고, 바다에서 미역을 주웠다. 14세에 해녀가 되었고, 15세부터 일본을 비롯하여 전국으로 출가 물질을 다니셨다. 출가 물질을 통해 번 돈으로 집을 살 수 있었다고. 


1932년 16살을 맞이하였는데, 이때 일제의 해산물 착취 등에 맞서 구좌읍 일대에서 벌어졌던 제주해녀항쟁에 참가하신다. 1932년 3월 우도 해녀 300여 명 과 함께 10여 척의 풍선에 나눠 타고 구좌읍 종달리 두문포 모래사장에 내렸다. 이 곳에서 시위를 벌이다 일본 경찰의 폭력적인 시위 진압을 당하신다. 


 "일본 순사들이 헛총을 쏘며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자기들 말을 듣지 않으면 허리띠를 풀어 마구잡이로 때렸다"라고 증언하셨다. 


1938년 18세 때 원치 않는 결혼 후에 이혼을 하신다. 22세 때 재혼을 하지만 상업학교를 나와 기자를 하는 남편 가족이 물질을 그만하라고 하자 이에 대한 반항으로 첫째를 임신한 채로 충청도로 출가물질을 가셨다. 그러다 대마도에서 해방을 맞이하고 제주도로 돌아오셨는데, 이후 4.3 사건이 일어난다. 외도에 있던 시가 식구들이 전부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이후 홀 몸으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출가 물질을 계속하셨다. 70세가 넘어 고향 우도로 돌아오셔서 대상군 해녀로 활동하셨고, 2000년 항일운동기념사업위원회에서 제1회 제주해녀상을 수상하셨다. 2013년 별세하셨다. 


고이화 지사에 관한 잘 쓰인 기사 : https://www.peoplepower21.org/Magazine/71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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