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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해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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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Jun 17. 2021

제주에서 무조건 가세요, 해녀박물관

Haenyeo Museum

해녀박물관 


올레 21코스의 시작 위치에 해녀박물관이 있다. 세화리는 해녀 항일운동의 현장이고, 구좌읍 하도리, 종달리 해녀들은 그 현장에 있었던 해녀들로 유명하니, 해녀 박물관의 입지가 역사의 현장 한복판이라 적절한다. 해녀 박물관은 해녀문화를 전승 및 보존하고, 21세기 문화예술의 메카로 가꿔나갈 목적으로 건립하였다.  



해녀의 노래


해녀 박물관에 주차를 하자마자 해녀들의 노랫소리가 스피커로 나왔다. 박물관에서 나는 소리인지 모르고 처음엔 이게 뭔 소린가 했다. 해녀노래란 해녀들이 배를 타고 나가거나 들어올 때 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민요이다. 해녀들의 물질 장비인 테왁, 망사리, 빗창 등으로 장단을 맞추며 부른다.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1971년에 지정되어서 예능보유자와 단체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내용 설명은 인터넷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나온다.

"내용을 보면 일의 고됨과 일상생활을 정감 있게 표현한 것으로 생업에 대한 강렬한 기백이 나타나 있고, 역동적이며 직설적인 색채가 강하다. 두 사람이 교대로 선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이여싸’등의 후렴으로 받는다. 때로는 어부가 선소리를 하고 해녀들이 뒷소리를 하기도 한다. 가창 형태가 복잡해 선소리에서 나타나는 악구의 마디 수는 일정하지 않지만, 두 마디를 짝으로 하여 높은음에서 낮은음으로 이어지는 선율은 일정하게 반복된다. 박자는 규칙적인 6/8박자이며, 속도는 보통 빠르기에서 아주 빠르기까지 일하는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연결된다."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region=&searchCondition=%ED%95%B4%EB%85%80&searchCondition2=&s_kdcd=&s_ctcd=&ccbaKdcd=22&ccbaAsno=00010000&ccbaCtcd=50&ccbaCpno=2223900010000&ccbaCndt=&stCcbaAsno=&endCcbaAsno=&stCcbaAsdt=&endCcbaAsdt=&ccbaPcd1=&culPageNo=1&chGubun=&header=view&returnUrl=%2Fheri%2Fcul%2FculSelectViewList.do&sCond=%ED%95%B4%EB%85%80&pageNo=1_1_1_1



해녀 박물관 구성


크게 해녀들의 집과 일터로 구분해서 박물관을 구성해놓았다. 

제1전시실은 '해녀의 생활'로 어촌마을, 해녀의 집, 생활도구, 해신당, 굿 등이 있고, 제2전시실은 '해녀의 일터'로 불턱, 물옷과 물질도구, 해녀 역사, 해녀 공동체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3전시실은 '해녀의 생애'로 물질 이야기, 해녀의 삶, 해녀 작업장을 복원해 두었다. 


해녀 박물관은 마치 제주 민속박물관 같다. 제주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본 민속 파트가 좀 더 풍부해진 느낌이다. 


제1 전시실 : 해녀의 생활


해녀의 집, 어촌마을, 제주의 세시풍속, 해녀의 생활도구, 제주의 음식문화, 해신당과 굿 총 6 파트가 있다.

 

제주 어촌마을 모형




밑거름이라는 표현이 대문짝만 하게 쓰여있는 설명판이 거슬렸다. 


제주 여성들은 살림, 육아를 비롯하여 어업과 농업 즉, 경제활동까지 하였다. 이런 제주 여성을 근면하여 가족을 지키기 위한 강인함으로만 보는 게 화가 난다. 이 분들은 강해지길 원해서 강해지신 게 아니다. 해녀들은 8~9세 때부터 바다에 나가 엄마, 할머니가 하는 물질을 보며 자연스럽게 배우고 그렇게 생업에 투입된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게 당연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서 물때엔 물질, 아닐 땐 밭일, 집에선 살림과 육아를 했다. 용천수를 길어오는 일도 사진이나 석상이나 맨 여성이다. 도대체 언제 쉬었을까 싶다. 이런 제주 여성들을 해녀박물관에서조차 '제주경제의 밑거름'이라고 표현한다. 고작 거름이란 말이냐! 거름이 하찮고 나쁜 거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정도밖에 표현하지 못하다니. 만약 남성이었다면 경제를 이끈 영웅, 주역, 거인 이렇게 표현했을 테지. 그래서 여성이 거름이 되어서 무엇을 길러냈나?라고 따진다면, 해녀 삼촌들의 삶을 부정하는 게 되어버릴까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속상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분들의 삶과 뜻을 체득하기엔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인걸까? 


영등굿과 잠수굿


제주에 있으면서 굿과 무속 신앙에 대해서 많이 접하였다. 육지에 있을 때는 뭔가 이상한 것으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지만 제주에서 굿을 많이 보다 보니 저절로 그 거리가 좁혀졌다. '굿? 굿을 한단 말이야?'라고 처음에 의아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 굿! 그래 굿 해야지' 이런 느낌이 되어버렸다. 


해신당(海神堂)은 어부와 해녀들의 어업 활동에서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 장소이다. 보통 바닷가에 위치해 있으면서 ‘돈짓당’, '개당'으로도 불린다. 음력 정원 초하루나 보름날 뱃고사를 지낸다. 음력 2월에 하는 '영등굿'과 음력 3월 8일에 하는 '잠수굿'이 해녀들의 안녕과 풍유를 위해 치러지는 대표적인 제의이다. 


 ‘잠수굿’은 음력 3월 8일에 행해지는 김녕리의 대표적인 굿으로 해녀들의 축제이자 의례이다. 의례 과정의 <요왕맞이>는 바다를 관장하는 요왕(용왕, 龍王)을 굿판으로 맞아들여 풍어와 무사고를 기원하는 제차이다. 또, <씨드림>은 전복, 소라, 우뭇가사리, 톳 등의 풍년을 위해 좁씨를 바다에 뿌리는 의례이다. 





제2 전시실 : 해녀의 일터


불턱, 물옷과 물질도구, 해녀의 역사, 해녀 공동체, 사회헌신과 참여, 대한뉴스 해녀 소식 이렇게 여섯 부분으로 꾸며놓았다. 


해녀 공동체와 불턱 


 

해녀들의 물질은 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하다. 혼자 마음대로 잠수하면 위험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바다의 자원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는 당연하고도 아름다운 가치관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늘부터 1주일 동안은 성게 작업을 한다'라고 정하면 그때는 들어가서 성게만 딴다. 거대한 자연산 전복이 보여도, 싱싱한 미역이 주렁주렁 널려있어도 캐면 안 된다. 이렇게 정해 놓은 규약과 법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 따르지 않고 아무렇게나 막 채취한다면, 금세 바다의 물건은 말라버리고 말 것이다. 


올레길을 가면서 아니 제주 해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자 작업 중에 불을 쬐며 몸을 녹이고 휴식하는 공간이다. 둥글게 돌담이 둘러져 있다. 1985년을 전후로 하여 해녀 보호 차원에서 마을마다 현대식 샤워실과 탈의장을 설치하여서 불턱은 이제 더 이상 쓰이지 않지만, 이 곳에서 물질에 관한 지식, 요령을 전수하고 습득하며 해녀 공동체 내의 의리를 다지던 공간이다. 



숨비소리


숨비소리는 해녀들이 잠수 후에 수면 밖으로 올라와 숨을 고를 때 내는 소리로 휘파람 소리처럼 들린다. 




해녀의 역사


해녀의 역사, 그리고 해녀 항일운동에 대해 소개를 하고 있다. 해녀의 역사에 관해선 자세하게 공부하고 글을 쓸 계획이다. 





제3 전시실 : 해녀의 생애


바닷속으로, 물질 이야기, 제주 해녀 영상, 곱게 지어낸 살림살이, 자랑스러웠던 순간, 해녀작업장 총 6 파트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이 전시실은 물질을 배우는 과정, 출가 물질 등 많은 분들의 증언 비디오로 구성되어 있다. 





해녀는 제주에만 있을까?


'해녀는 제주에만 있을까?' 하던 나의 궁금증을 이곳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제주 해녀에게 '출가물질'이라는 것이 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대마도, 중국, 일본 본토까지 원정 물질을 다녔다. 이들을 '출항 해녀'라고 부른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 일본 어민들의 제주어장 침탈로 해산물 채취량이 줄어들어 생활이 힘들어지자 타 지역으로 바깥 물질을 가는 해녀들이 많았다. 물질은 천한 일로 여겨졌고, 특히 여자가 살을 드러내고 일한다고 멸시당했다. 집 떠나 돈 버는 생활이 쉬웠을 리 없다. 



끈질긴 생명력과 억척스러운 개척정신으로 엄마이자 아내로서 살았다는 해녀들의 생애를 왜 '자신'으로 살지 못했냐고 해석하는 것은 큰 잘못과 실례일 것이다. 그게 바로 그들 '자신' 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유산, 제주해녀

2016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제주 해녀 문화


https://heritage.unesco.or.kr/%ec%a0%9c%ec%a3%bc%ed%95%b4%eb%85%80%eb%ac%b8%ed%99%94/



야외 전시


배가 전시되어 있다. 해녀들이 바다에 들어가는 방법은 대체로 해안에서부터 걷기 시작하여 수영으로 들어가지만 먼바다로 갈 때는 배를 타고 나간다. 그때 배는 이동 수단이지만 물질을 하는 동안 불을 쬐고 쉬는 등 불턱의 기능도 담당했다. 과거에는 테우를 타고 나갔으나 현재는 어장관리선으로 지정된 배를 탄다. 




야외 전시장엔 3대의 배가 있는데, 이 배는 어업 활동과 잠수기어업에 이용되었던 배라고 한다. 잠수기어업은 처음 듣는다. 잠수기어업이 뭐지? 잠수기어업은 자수부가 고무호스를 통해 산소를 전달받으며 소라, 전복 등을 채취하는 어업 방식으로, 수심 20m 이상에서 3시간 이상 조업을 함으로써 수산자원을 고갈시켰다. 그래서 제주도는 잠수기 어선 24척을 전부 매입 후 폐기시켰으며, 잠수기어업을 일절 금지시켰다. 해녀 삼촌들의 자연과 공존하는 아름다운 문화에 대해서 배운다. 너무 많은 물건을 가지고 나오면 등짝 스매시가 날아온다. 그렇게 많이 하면 다음번에 캘 것이 없다고 말이다. 



해녀에 대해 알수록 그들의 삶과 역사 그리고 문화에 대해서 더더 알고 싶고, 궁금해진다. 그 속에 들어있는 해녀들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 우리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넘치는 에너지와 삶에서 터득한 지혜에 매혹당한다. 교육을 받지는 못했어도 지혜로운 분들이 많다. 반면, 많이 배웠어도 현명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봤다. 멀리 가지 않고 거울만 봐도 보인다. 


해녀박물관 홈페이지 : 

http://www.jeju.go.kr/haenyeo/inde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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