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밥하기 싫은 건 아니야

쾌락적인 맛, 애호박 브레드를 만들어 먹다

by 아솔

나에게는 매 끼니마다 밥을 손수 차려 먹는 '윤'이라는 친구가 있다. 윤은 그날 준비해 먹은 음식들의 요리 과정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고 그녀의 블로그에 올렸다. 내가 본 게 벌써 몇 년 째인지, 참 한결같고 대단한 정성이다. 제철에 나오는 간단한 식재료들을 사용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들로 채운 윤의 식탁은 늘 정갈하고 건강해 보였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는 윤이 자신만을 위해 만든 일인 분의 음식은 특히나 스스로를 존중하는 표현처럼 느껴졌다. 주변에서 하는 좋은 건 왠지 따라 하고 싶은 맘도 생기는 법. 가끔은 나도 윤의 피드를 보고 따라 해 먹는 음식들이 생겼다.

윤의 블로그 메인 화면에 있는 음식 사진들


며칠 전 윤의 인스타에 새로운 피드가 하나 올라왔다. #애호박브레드 '건강한 재료로 쾌락적인 맛을 낸다'

애호박이 쾌락적인 맛을 낸다고??? 그럴 수 있나? 애호박, 바게트 빵, 슈레드 치즈 등 꽤 간단한 재료들을 사용해서 만들었다는데 비주얼이 꽤 근사해 보였다. 게다가 대충 사진을 넘겨보니 만드는 방법도 심플하다.


바게트 빵에 마늘 소스를 바르고 그 위에 애호박을 얹고 치즈로 덮어 에어프라이어에 구우면 끝!



오호라, 좋아. 오늘 점심은 너로 정했어! 얼마 전 라따뚜이를 해 먹고 남은 애호박이 처치 곤란한 채로 냉장고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걸 사용하면 되겠다. 원래 계획 대로라면 아침은 아이들에게 갈비탕에 밥을 줬으니, 점심은 마음의 찔림 없이 모닝빵에 잼이나 발라 줄까 했는데, 메뉴가 훨씬 업그레이드되었다는 사실에 요리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뿌듯했다. (아무래도 엄마는 밥도 잘 차려줘야 한다는 환상 속에 살고 있었나 보다)



앞치마를 둘렀으니 이제 시작해 볼까.


마늘 소스는 어떻게 만드느냐. 친절한 윤이 알려준 방법대로 마요네즈 3, 마늘 2, 설탕 1을 섞어 OO바게트에서 사 온 바게트에 골고루 잘 펴 발라 준다. 이때 파슬리 가루가 있다면? 비주얼 상승, 기분 업 되는 효과는 덤! 요리하는 걸 싫어한다는 우리 집에 그런 게 있을까 싶겠지만 우리 집엔 파슬리 가루가 있다. 덕분에 뿌듯함이 한 계단 상승했다. 마늘 소스를 바르고 보니, 이게 바로 마늘 바게트?!?! 지금까지 사 먹을 줄만 알았지 만들어 볼 생각은 전혀 못 했었는데, 이렇게 초간단으로 만들 수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남들은 다 아는 사실, 요알못 나에게는 꿀팁이다.




다음으로는 얇게 썬 애호박을 겹겹이 바게트 위에 올렸다. 윤의 사진에는 빵이 넓어 여러 개가 올라가던데, 애기 손바닥 만한 바게트에는 몇 조각 올라가질 않았다. 이거 왠지 좀 불안한데? 이번엔 슈레드 치즈를 뿌릴 차례. 애호박을 치즈로 가득 덮어야 하는데, 이상하다. 치즈마저도 몇 개 올리기가 어렵네. 젠가에서 나무토막을 조심스럽게 빼내는 심정으로 치즈를 한 가닥씩 조심스레 애호박 위에 얹었다. 아슬아슬 떨어질 것만 같다. 이대로 구우면 왠지 싱거울 것 같은데, 애호박 위에 소금이라도 좀 뿌려야 되나? 이런 생각이 많아져 윤의 블로그에 가서 상세 과정을 살펴봤다. 아하하하. 사진만 비교해 봐도 역시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윤의 블로그에 올라온 중간 모습
내가 만든 모습


내가 놓친 혹은 놓칠뻔 했던 아차차들!


아차차 1. 애호박은 소금을 살짝 뿌려 미리 절여둔다는 것 (숨이 죽어 치즈가 더 잘 올라갈 것 같다)

아차차 2. 애호박과 치즈를 올리고 그 위에 갈릭 딥핑 소스를 뿌려준다는 것

(다행히 냉장고에 피자 시키고 받은 갈릭 딥핑 소스가 남아있었다는 사실)

최종적으로 굽기 전의 모습


이쯤 되니 뭔가 망한 것 같기도 해서 남은 바게트에는 아무렇게나 조합해서 올렸다. 치즈만 올린 것, 애호박 대신 가지를 올린 것, 치즈부터 깔고 대강 애호박을 올린 것. 등등


에어프라이어 온도를 180도로 맞추고, 10분 정도 구웠다. 드디어 애호박 브레드를 만나는 시간.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에어프라이어를 열었다. 와우! 보기엔 상당히 괜찮았다. 이걸 내가 한 거라니. 이럴 땐 뭐다? 이쁘게 장식하고 인증샷으로 남겨야지!!! 좋아하는 덴비 접시를 꺼내고 그 위에 따끈따끈 갓 구운 애호박 브레드를 보기 좋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좀 그럴싸해 보이는 구도로 이리저리 돌려가며 사진을 찍는다. 찍은 사진을 남편에게 보내며 오늘 내가 이런 것도 만들었다며 자랑을 했다. '맨날 시켜먹는 사람 아니야. 이런 것도 만들어'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래 찍으나 저래 찍으나 똑같은데, 뭐 하나라도 좀 더 잘나온 사진을 찍어 보겠다며 애쓴다.

인증용 사진으로 남기는 건 끝냈으니, 드디어 먹어볼 시간!


"윤아, 솔아~ 점심 먹자! 엄마가 엄청 맛있는 빵 만들었어!"


인증용 사진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의 식탁을 차린 걸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럴싸한 모습은 인증을 위한 과정이었던 것뿐인가. 아이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기왕 만든 거 아이들 입맛에 맞기를 바라며. 얼른 와서 제발 먹어 줄래.

실제 먹을 때는 인증용과는 참 많이 달랐다.


애호박 브레드! 쾌락적인 맛이라더니!!!!

한 입 베어 물고는 감탄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들어간 게 뭐 대단한 게 있다고 이렇게 맛있을 일이야?

애호박이라고 처음엔 눈살을 찌푸리던 아이도 먹어보고는 엄지척을 했다. 대성공이다. 맛있는 걸 먹고 기분이 너무 좋아진 나머지 나는 리듬에 맞춰 춤이라도 추듯 몸을 흔들고 있었다. 진심 기분 좋음의 표현이다.


어찌보면 대단하지도 않은 간단한 요리를 하면서도 거사를 치루는 것 같은 나에게 요리하는 행위가 일상이 되는 날이 오기는 할까?매일을 이렇게 거사치루듯 살 수는 없잖아.

순삭했다. 뿌듯한 빈접시




이 글을 읽은 분들도 꼭 한번 애호박 브레드를 만들어 보세요. 밥하기 싫은 저도 손쉽게 해냈습니다.

함께 쾌락적인 맛의 세계로 빠져 보아요. 저절로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몰라요. 가장 중요한 사실은, 맛있어요!!


( + 애호박브레드의 레시피는 '능력있는녀자'의 블로그를 보고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