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발녀의 일상
“얘들아, 엄마 뭐해?”
“음, 엄마 자고 있는데?”
“그래? 집이 너무 조용하길래”
‘아… 나 깜박 잠들었었네. 맞다!! 저녁 해야 하는데’
아이와 남편의 대화 소리에 잠이 깬 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 누워 허리 좀 펴고 있으려던 것뿐인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 시계를 보니 7시 30분. 늦었네. 아, 빨리 저녁 차려야지. 평소 같았으면 준비하지 않은 채로 맞은 저녁에 당황하며, 뭘 먹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괴로워하고도 남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은 할 새도 없이 바로 주방으로 튀어갔다. 우리 집에 내가 밥을 줘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얼른 밥을 넣어줘야 한다고.
때는 지난 일요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이라 늦잠을 자고 있는데 남편 핸드폰이 울렸다.
“부장님, 저 아무래도 코로나 증상인 것 같습니다. 열이 나고 온몸이 아프네요. 부장님도 검사하셔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래요? 알겠어요. 몸조심하세요.”
‘뭐???!!!! 코로나라고??’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지난주 남편 회사에서 코로나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잠잠해졌나 싶었는데, 이번엔 남편 아래 직원이 코로나 증상이 있다고 연락을 해 온 것이다. 남편은 지난 금요일 함께 식사한 상황이라 그가 확진된다면 여지없이 밀접접촉자가 된다.
“어떡해. 당신도 얼른 가서 검사받고 와. 빨리”
코로나라는 소리에 잔뜩 겁먹은 나는 남편을 서둘러 검사소로 보냈다. 하루 뒤 나온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지만, 회사 직원의 확진으로 남편의 자가격리도 확정. 밀접접촉자인 남편과 한집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지? 만약 아이가 그런 상황이라면, 내가 걸리는 것쯤은 각오하고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고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음.. 남편의 경우라면 좀 다른데? 미안하긴 하지만 솔직히 아이들과 나를 지켜야 할 것 같아.
“자기는 지금부터 안방에서만 지내. 문도 열지 말고. 밥은 내가 시간 되면 넣어줄게. 필요한 거 있음 얘기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어도 좀 이해해 줘. 애들은 내가 지켜야 하잖아.”
남편은 한집에서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썩 내키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가족을 위한 일이라니 수긍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남편의 안방 격리 생활이 시작되었고 동시에 나는 ‘수발녀’(수발들다: 신변 가까이에서 여러 가지 시중을 듦)가 되었다.
자가 격리의 가장 큰 난관은 역시나 밥이었다. 꼼짝없이 아이들까지 총 네 명의 삼시 세끼를 챙겨야 한다.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앞이 깜깜한데, 할 수 있을까? 하루 한 번은 배달 앱을 이용하고, 아침은 시리얼, 나머지 한 끼는 간단한 한 그릇 음식으로.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일단 되는 대로 해봐야지 별수 있나.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식사 때마다 메뉴 고민으로 안절부절못하던 내가 별다른 동요 없이 식사 준비를 척척 해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규칙적인 시간에 맞춰. 아침은 9시, 점심 1시, 저녁은 7시, 오후 4시쯤엔 간식까지. 게다가 남편 식사는 쟁반에 따로 챙겨야 하니 최대한 영양가 있고 정갈하게 차리려는 노력까지 더했다. 자두, 복숭아, 귤 등 매 끼니 다른 과일도 번갈아 가며 말이다. 구색이 맞게 차려진 쟁반 한 상을 보니 뿌듯했다.
'어머, 나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
남편의 간식으로 커피 한잔을 내리고, 같이 먹을 쿠키를 사각 접시에 담았다. 근데 이거 왠지 익숙한 느낌? 아!! 산후 조리원에 있었을 때 받았던 밥상! 내가 있던 조리원에서는 식사 때마다 방 앞으로 쟁반 한 상을 배달해 주었다. 신생아의 감염 예방을 이유로 외부인의 면회가 철저히 통제되던 상황이 외롭고 답답하게 느껴지던 내게 영양소 골고루 잘 차려진 밥상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 담아준 마음 같아 늘 기다려진 시간이었다. (물론, 수유하는 산모이니 배고픈 이유가 더 컸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몇 년 전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 중에 기억하고 있던 마음이 발동했었나 보다. 그 시절 밥상을 기다렸던 마음으로 남편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니.
'답답해도 내가 당신을 챙기고 있으니 힘내!!'
브런치에 밥하기 싫은 여자라는 매거진을 발행할 정도로 밥 차리기에 저항을 느끼는 내가 세 끼를 거뜬히 차려낸 힘은 다름 아닌 세상에서 받은 따뜻함을 되갚는 행위였다. 좋은 대접을 받았던 기억은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처럼, 조리원 밥상의 따뜻했던 기억은, 홀로 격리 중인 남편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름의 정성을 담은 한 끼가 되어 새로 태어났다. 정작 남편은 혼자만의 안방 세상에서 무한 자유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혹시 또 아나? 지금의 밥상이 남편 무의식 중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누군가에게 또 다른 형태로 전달될지. 갑자기 남편 밥상에 주술을 걸고 싶어졌다. 그의 몸속에 들어가 좋은 기억으로 뼈와 살이 되거라.
요즘 앞치마를 벗어 놀 틈도 없이 안 하던 밥을 계속했더니, 좋아하는 글쓰기, 독서도 다 뒷전이고, 틈만 나면 소파 위에 눕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오늘은 저녁 시간을 넘어서까지 잠을 자고야 말았다. 남편은 저녁 줄 시간이 지났는데, 안방 너머 조용한 집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닫힌 문 앞에 붙어 아이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하고 있는 남편을 상상하니 좀 딱하면서 우습기도 했다. 앞치마는 이미 두르고 있으니, 얼른 또 쟁반 한 상을 차려보자.